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순영 Jun 14. 2022

에세이 <웃는 남자>

하마터면 난 그를 다시 잃을뻔 했다.

                               


 요즘 자주 지면에 오르내리는게 아파트  경비원과 주민의 마찰인 듯싶다. 과한 경우는 한쪽의 지나친 언사와 폭력으로 상대가 생을 마감하는 일까지 생긴다.

 우리 아파트는 올해로 20년이 된 오랜 노후한 단지다. 경비원은 총 열명쯤? 대강 그런거 같다. 그중 폐기물 담당하는 경비원과 나는 어쩜 조금은 각별한 사일지도 모른다.     

 한 10여년전,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개인 사정으로 학업을 그만 둔 뒤 내가 주로 한 짓은 가구를 사들이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 당시엔 내 유일한 기쁨이자 낙이었다.

 주로 싸구려 엔틱을 샀는데, 엔틱에 입문한 사람들의 과정을 그대로 거쳐 초기엔 콘솔이나 작은 장식장, 이후엔 다수의 뷰로를 샀다. 일명 ‘뚜껑책상’ 또는 ‘피아노책상’ 이라 불리는 여닫이 상판이 있는 뷰로에 난 거의 열광하다시피 했다. 

 좁은 아파트가 꽉 차 베란다에 내놔야 할 만큼 여러개를, 한 열 개 넘게 산거 같다. 사서 딱히 쓰지 않은 것들도 여럿 되고, 처음 받아 일,이주일, 길게는 한달정도 쓰면 그걸로 끝인게 많았다. 이렇게 가구를 사다보니, 자릴 덜 차지하고 가벼운걸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그 다음엔 패브릭으로 옮겨갔다. 이불을 비롯한 쿠션, 드림캐처, 기타 . 그러더니 이불도 어느 순간부터 차곡차곡 산을 이루었다. 그러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쾨쾨한 솜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아, 이걸 어쩌나 하는 순간, 지난 10여년 내게 찾아왔던 지름신이 원망스러웠다. 도저히 동선을 낼 수 없는 내 집 꼴을 확인한 다음 비로소 난 결심했다. 이제 버리자, 하고.     

 그리고는 우선 부피가 큰 1인용 소파며 장식장들을 내다 버렸다. 돈이 될만한 것들은 중고시장에 내놨다.

 1인용 소파라고 해도 보통 30kg이상이 돼서 카트나 그밖에 이동수단이 없는 나로서는 50미터이상 거리에 잇는 폐기물장소로 옮기는 게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처음 1인 소파를 버리던 날 , 저만치서 카트를 끌고 허둥지둥 달려오는 경비원이 있었다.

 “아휴, 이걸 혼자 어떻게 ” 하며 그는 내 손에서 소파를 받아 자기 카트에 얹었다. “인증번호 받았죠?” 하는 말에, 난, 어리둥절했다. 폐기물을 버린 지 10여년이 훌쩍 넘어 시스템이 달라진 걸 몰랐기 때문이다. 아직도 동사무소에서 스티커를 사 붙이는줄만 알던 터라...

“한 6000원 내요 인증 안 받았음 ”하는 그.     

 그렇게 그와의 인연은 시작됐고 그 후로도 난 계속 ‘버림의 미학’에 빠져 수시로 폐기물을 내놓았으며 그때마다 그는 “에구 이게 다 얼마야 ”하며 혀를 차는 시늉을 했다.

 그러다 침대를 바꾸는  날이 되면서 매트리스도 새로 들여, 헌 것을 버리러 가는데, 그가 대뜸 “ 폐기물이 너무 나와” 하며 고개를 저었다. 당시엔 그냥 흘려 들었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은근 화가 났다.

 ‘이제 그만 내놓으란 얘기지? 내 돈 내고 내 물건도 맘대로 못버려?“ 하는 오기같은게 생겨났고 난 관리실에 전화를 해 그를 ’꼰질렀다‘. 나도 모르게 갑질을 했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내가 제법 부피가 나가는 서랍장을 버리러 나오는데, 저만치서 그는 본 척도 않고 자기 초소로 들어가버렸다. 

 ‘그래 뭐 까짓거, 나 혼자 하면 되지’하고 난 애써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마음 한구석은 오랜 친구를 잃어버린 듯 허전하고 쓸쓸했다.     

 그렇게 한 3주 흘렀을까, 단지를 오가다 그와 마주쳤다. 난 눈인사만 건네고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그가 말을 건네왔다. “ 다 버렸어?” 그 말에 난 “ 어? 말이 짧네?” 하고 웃었다.그렇게 우린 화해 비슷한걸 하게 됐고 이후로 그는 예전의 그로 돌아가, 내가 뭐라도 들고 나오면 카트를 끌고 달려왔다. 

 그러다  얼마전에 새로 산 선풍기를 받고 보니 미조립 상태였다. 설명서가 부실해서 아무리 머릴 써봐도 답이 나오질 않아 그에게 전화를 했고, 동, 홋수를 말하자, 대뜸 ‘갈게요’ 하곤 쏜살같이 그가 왔다. 그리고는 5분쯤 걸렸을까? 뚝딱 조립을 해냈다. 앞으로도 이런 게 있음 언제든 부르라고 하면서 그가 돌아서는 순간, 난 그의 옷주머니에 만원짜리 한 장을 찔러넣었다.

 그는 그돈을 다시 꺼내 내게 건네며 “이럼 다신 안 와 ” 라고 했지만 난 거의 우격다짐으로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다 돈 때문에 온거지 그냥 왔겠어?”라고.그는 나가며 다시 한번 되새기듯 말을 뱉었다. “정말 다신 안 올거야 ”.      

 그가 나간 뒤 내가 느끼건, 이것도 또다른 의미의 갑질이라는 생각. 그 밑엔 ‘돈인데 싫어?라는 묘한 비아냥이 깔려있었다. 그러다, 정말 섭섭했을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면서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삼일 고민하고 후회하다 냉장고에서 캔 커피를 한통 꺼내 그의 초소로 갔다. 점심시간이라 초소는 비어있었고, 난, 잠깐 망설이다 초소 문 앞에 커피를 놓고 왔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그에게 문자를 했다. “지난번 조립해준 선풍기, 넘넘 잘 쓰고 있어요”라고. 그러고 나서 좀 있어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구 고맙습니다.”     

 하마터면 난 그를 다시 잃을 뻔 했다. 활짝 웃고 있을 그를 상상하며 난 속으로 사과를 했고 다음에 또 부탁드릴 땐 돈 대신 커피 타 드릴게요, 하며 다짐했다. 그럼 그는 또 환하게 웃으리라.                    




작가의 이전글 에세이  <소영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