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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Jun 13. 2022

에세이  <소영이>

"언니 너무 힘들어요..."


                             


 소영아,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네

 “언니 너무 힘들어요 ”했던 너.

 그래서 이젠 좀 편안해졌니?


 잠시 야간 대학원 문학과에 적을 둔 적이 있다. 그때 한 기 후배로 들어왔던 소영이. 학부에서 무용을 전공했다는 이유만으로 ‘글을 못쓸거야’라는 편견을 불러일으켰지만, 소영은 보란 듯이 세련되고 트렌디한 개성적인 자기만을 글을 써내곤 했다. 난 그런 소영의 글을 읽고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실연에서 헤어나 새삶을 희구하는 심정으로 향초를 사러 나간다는 결말에서, 이렇게 명민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는 애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학과의 평은 대부분 좋지 않았다. 대부분이 과장된 전개에 불확실한 분위기가  짙다고들 했다. 하지만 난 그 일을 계기로, 강소영에게 운명적 끌림을 느꼈고 바로 그날 저녁 학교앞 술집에서 함께 맥주를 마셨다. 그날 소영의 입에서 나온 이름, 로맹가리.


 솔직히 난 그때까지 그가 누군지 모르고 있었다. 한두번 들어봤을수는 있지만. 아무튼 그렇게 소영은 나에게 로맹가리를 알려주었고 바로 다음날 난 그의 대표작을 읽었다. 파도가 밀려올 때 자길 죽게 내버려뒀어야 한다는 헛헛한 절규. 아, 이런 작가구나, 그때 알았다. 물론 이후로도 로맹가리 책을 많이 읽었지만 처음 접한 그 순간의 짜릿함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찾아낸 또다른 명작, “벽-크리스마스 이야기”...     

  소영인 그렇게 내 글쓰기의 지침이 될만한 단서를 알려준 셈이었다. 서로 풀이 죽어있을 땐, 특히 작가로서의 앞날이 모호하게 느껴질땐,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하지만 난 이른바 ‘인터넷 필화’를 일으켜 논문학기를 남기고 다른 대학원으로 옮겨야 했고 그렇게 소영이와는 물리적으로 멀어지게  됐다. 하지만 우린 틈틈이 만나 서로의 ‘잘있음’을 확인했고 웃음을 나누고 격려하고 함께 누군가의 흉을 보며 같이 웃었다.



 “언니, 졸업작품 하나가 안풀려요. 두 개는 썼는데, 하나가 안 떠올라”

 소영인 총 단편 셋을 내야 하는 졸업과제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 달리 해줄 말도 없고, 난 더 이상 글쓰기를 하고 있지도 않은 상태여서 그냥 생각 나는대로 그즈음 읽었던 일본소설 하나를 얘기해주었다. 그러자 그말에 힌트를 얻은 듯, 소영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고 당장 그책을 사러 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나중에 받은 소영의 졸업논문을 보며, 아, 이런 각도로 읽힐수도 있는 작품이었구나, 하는 인상을 받고 소영의 뛰어난 재능에 감탄했다.

 그렇게 소영인 그 학교를 졸업하고 프리랜서가 돼서 여행잡지에 기고를 시작했다.     

 나는 나대로 옮겨온 대학원에서 나름 열심히 책을 팠고, 그러면서 소영의 존재는 차츰 멀어졌다. 그렇게 서로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가끔 둘중 하나라도 취기가 오르면 연인에게 하듯 문자며 전화를 해댔다.


 그러는 동안 나도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소영이보다 한학기 늦게 졸업을 했고 타학교 박사과정에 지원해서 합격했다. 그러나 옮겨온 대학원에서 또다시 학교라는 공간의 부조리에 치를 떨었고 결국, 박사과정에 합격했음에도 진학을 포기했다. 그러니 나의 심사도 자연스레 편지 못했고 그 무렵 소영이 다시 연락을 해왔다.     

 “언니 너무 힘들어요. 돈벌기도 힘들고 연애하기도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렇게 소영은 하소연을 했고 우린 대학로에서 맥줏잔을 기울였다 “세상사가 다 그렇지 뭐” 내가 해줄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소영은 자기가 못났다고 자책했다. 계속 한눈 파는 남자친구에게 과감히 절연을 선언하지 못하는 것도 다 자신이 못나 그런거라고...

 난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렇게 그날 우린 헤어지고 난 또다시 불투명해진 내 앞날에 대한 불안과 혼란으로 막막한 상태였다. 노모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공부를 계속 하지 않은 것에 적잖이 실망한 눈치였다. 막내가 교수되는걸 그렇게 보고싶어 하셨는데...


 그런식으로 시간은 흘러갔고 언젠가부터 소영은 “힘들다”는 문자를 계속 보내왔다. 난 슬슬 그 문자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고 답변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답이 없는 문자를 보내오던 소영이 어느날은 “언니 아픈거 아니죠? 건강해요” 라는 문자를 끝으로 더 이상은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우린 멀어졌고 난 소영일 거짓말처럼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한 5년쯤 흘렀을까,  TV에 나오는 유명 발레리나를 보며 소영일 떠올렸고 그애가 미친 듯이 그리웠다. 하지만 소영의 연락처는 이미 오래전에 삭제된 터라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언니”하고 부르는 저음의 허스키한 소영의 목소리, 그게 너무나 듣고 싶었다. 그러다, 그 야간대학원 교우수첩을 간신히 찾아내 소영의 전화번호를 돌렸지만 들려온건, 결번 안내뿐이었다. 그학교 누구와도 친분을 나누지 않은터라 물어볼 데도 없었다.


 나에게 건강하란 말을 남기고 이후로 전화번호를 바꾼거였니 소영아. 그랬구나, 그게 마지막인지도 모른채 난 끝까지 널 외면했구나...얼마나 힘들었음 나한테 그렇게 하소연을 했을까. 소영아 넌 지금 어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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