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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Jun 13. 2022

소설 <30일간의 사랑>

너 아냐? 내가 너 좋아한거?...

                         <30일간의 사랑>          


 ”너 강수진이지?“

 현욱이었다. 대학신입생때부터 줄곧 알아온 그 김현욱.

 ”오랜만이다 너, 결혼은 했구?“

 현욱은 대답대신 머릴 긁적였다.

 ”뭐하느라 여태“

 ”넌 근데 학굔 웬일이야?“

 ”졸업증명서 떼려고.“

 ”그런거 요즘 컴으로 할수 있어.“

 ”알어.  근데 프린터 잉크가 똑 떨어져서. 오랜만에 학교도 오구 싶었구.”

 그렇게 둘은 졸업후 거의 5년만에 학교에서 마주쳤다.

 “너 이제 애두 있겠다?”

 현욱이 눈을 찡긋거렸다.

 “내 소식 못들었지? 나 이혼했어.”

 “아...야, 요즘 세상에 이혼은 옵션이야. 나 있잖아 나”

 하면서 현욱은 자길 어필해왔다.

 영원한 강수진 해바라기.

 그랬든가...수진은 간만에 웃어본다.     

 현욱은 수업을 빼먹고 늘 학교운동장에서 농구를 했다. 둘은 지인의 소개로 대학 1학년 초 미팅에서 만났고, 수진은 영어과, 현욱은 무역학과였다. 현욱은 미팅 자리에서도 내내 개구지게 굴었다. 돗수 높은 뿔테 안경 너머의 겁먹은 듯한 눈동자가 수진은 귀엽다고 느꼈다. 하지만 왠지 같은 학교라는 게 맘에 걸려 현욱의 에프터를 거절한 수진.

 하지만 현욱은 수진의 머릿속을 맴돌았고 미팅때 자기 만나려면 농구장으로 오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이 떠올라 어느날 학교 운동장으로 그를 찾으러 갔다. 아니나 다를까 현욱은 웃 옷을 벗어 던지고 농구하기에 바빴다. 그런 현욱을 보며 수진은 어이가 없었지만 수진을 알아본 현욱은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 공을 놓친 현욱. 친구가 타박을 해도 연신 싱글벙글....


 “내가 얘기했나? 나, 벌레라고 해.”

 그날 둘이 나란히 앉아 현욱이 꺼낸 첫마디였다.

 “벌레? 어디가?”

 “친구들이 그냥 그렇게 불러.”

 그런가싶어 보니, 현욱의 조막만한 얼굴이며 뿔테 안경, 비쩍 마른 몸이 갑각류를 연상시켰다.  안경을 고쳐 쓰며 현욱은 물었다.

 “나 진짜 벌레같냐?”

 수진은 웃었다. 이런 애라면 평생 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 현욱인데, 졸업후 5녀만에 교정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이혼은 옵션이라는 애, 역시 이래서 친구가 좋은가보다, 싶었다 수진은.

 “그래도 솔직히 막막해.”

 “야 이젠 서른인데 뭐가...또 좋은 남자 만나겠지, 없음 나두 있구.”

 다시 자신을 어필해 오는 김현욱. 그래 우린 친구였어. 어릴때부터 죽.

 현욱이 농구를 할땐 수진은 도서관에 있었고 밤이 깊어지면 옆자리 현욱을 짐을 싸서  운동장으로 향했다. 종일 농구를 한 현욱은 언제나 웃통을 벗어 젖힌 차림이었고 온몸은 땀에 절어있었다.

 “야 벌레!”

 하고 부르면 현욱은 씩 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늘, 항상 같은 미소로 답하며. 그렇게 한 시간쯤 농구는 계속 되었고 둘은 함께 학교를 나와 나란히 전철에 올랐다. 현욱은 용산, 수진은 영등포. 1호선에 함께 앉아 현욱은 계속 수진에게 장난을 걸었고 수진은 웃지 않겠다고 맹세한게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넌 왜 여태 혼자야?”

 “뭘 자꾸 물어. 근데 졸업 증명선 어따 쓰려구?”

 “응. 취직하려구. 넌, 노니? 평일인데 학굔 어떻게?”

 “월차야. ”

 또 한번 빙긋 웃는 현욱.     

 사흘전 구인광고에 난 유투브 작가에 수진은 지원했고 그쪽에서 샘플 원고를 보내라고 해서 한글 17포인트 15장을 보냈다. 20분도 안돼 담당자라며 젊은 여자가 전화를 걸어와 면접 일정을 알려주며, 올 때 졸업증명서와 통장 사본을 가져오라고 했다.

 통장 사본 얘기했음 다 된 거네. 유투브라구? 너 글 쓰냐? 하긴 외국어 전공한 애들이 글두 잘 쓰더라.

 수진은 졸업하고 출판사에 들어가 편집 일을 했다. 그러나 3년쯤 지나 수진이 어느 정도 일을 해내게 될 즈음, 출판사는 적자에 허덕이다 문을 닫았고 , 마침 그때 오래 사귄 민석이 청혼을 해 왔다. 일찍 남편과 사별한 수진의 노모는 ‘차이 나는 결혼은 안 된다’를 누차 강조했지만 민석의 끈질긴 구애 끝에 둘은 마침내 결혼에 이르렀다.


 “야, 너 아냐? 내가 너 좋아한 거?”

 ‘야, 징그럽게 왜 그래.“

 ”근데 그 자식도 웃긴다. 그렇게 데려갔음 책임을 져야지...왜 이혼했어?“

 ”그냥. “

 ”그냥 이혼하는 게 어딨냐.“

하며 현욱은 자기앞의 맥줏잔을 비웠다. 그냥 한 이혼은 물론 아니었다.     

 대학 3학년 때 과선배의 소개로 만난 민석. 그는 직장인이었고, 아직 학생 신분인 수진을 깨지기 쉬운 유리라도 되듯 조심스레 대했다. 과 선배로부터 모 백화점 전무의 아들이란 소릴 듣고 수진은 처음엔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불편한 만남이 될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배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잡아 할 수 없이 학교 앞 까페로 나갔고 , 서글서글하고 맑은 눈매에 수진은 끌렸다. 둘은 오랜 연애 끝에 양쪽 집안의 승낙을 얻어 결혼에 성공했지만, 결국 민석은 여자 사고를 치고 말았다. 2개월이래. 정말, 딱 한번 잔 게 전분데. 믿기지가 않아...

 민석의 말대로 딱 한번 잔 사이면 애는 얼마든지 지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민석은 이혼을 요구했다. 그 뒤 둘은 3개월의 별거 끝에 이혼했다.

 현욱에겐 그저 성격차이였다고 둘러댔다 수진은.

 ”야, 성격 똑같은 사람이 어딨냐? “하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서 너 지금 어머니랑 사냐?“

 ”아니, 혼자 살어 “


 ”글 좋던데요?“

 후덕해보이는 40대 중반의 여대표는 쥬스를 내오며 수진이 준비해간 서류를 받아들었다.

 ”근데 좀 약해요. 이런 글 처음 써봐요?“

 출판사에서 가끔 윤문정도의 글을 써본터라 수진으로선 자기만의 글은 처음인 셈이었고, 기존 문학 장르도 아닌 특히 유투브 글은 생경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하라는 사이트를 보고 대강 흉내를 냈달까? 잠깐이지만, 결혼생활을 해본 터라 그런류는 고만고만 써내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당장 돈이 급한 상황이어서 일을 가릴 처지도 아니었다.

 ”조건은요, 건당 5만원, 월 스무건. 그렇게 100맞춰 드려요“

 ’100‘이란 말에 수진은 , 일단 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겸하면 돼,

 ”우리가 녹음을 저녁 8시에 하니까 늦어도 7시까진 보내주세요. “

 하며 뒤에서 젊은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서른 정도의 자기 또래였다.

 ”우리 편집부장“

 대표는 젊은 여잘 그렇게 소개했다. 여자는 목례를 하며 살며시 웃어보였다.

 그렇게 월 100은 확보했다는 안도감에 그날 저녁 수진은 맥주와 안줏거리를 사들고 북한산자락  월셋방으로 향했다.     

 ”정릉. 거기 공기 좋은 데잖아.“

 현욱의 말대로 정릉은 시끄러울 만큼 요란한 새들의 지저귐으로 시작된다. 월셋방을 나가 10여분 걸으면 칼바위로 오르는 능선이 나오고 답답할 때 수진은 그 길을 오르곤 했다. 어이없이 끝나버린 2년의 결혼생활. 미안했던지 민석은 세라도 구하라면서 1억을 줬다. 수진은 가진 돈이 없는 터라 마다할 형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중 5000만원은 오빠 수혁이 사업이 안된다면서 가져갔다. 나머지 중 일부를 지금의 월세 보증금으로 잡혔으니 생활은 빠듯할밖에. 그때 마침 유투브 일이 잡힌 것이다. 죽으란 법은 없구나 싶었다.     

 첫 원고를 7시가 다 돼 보낸 후 굳었던 몸을 펴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문을 열자 거짓말처럼 현욱이 서 있었다. 한손엔 케잌을 들고.

 ”집 찾기 어렵지 않았어?“

 ”근처에 모텔 있다고 했잖아.“

 하곤 현욱은 피식 웃는다.

 ”정말 올줄 몰랐어. 들어와 얼른.“

 ”야, 너 이러구 사는구나.“

 ”후지지?“

 ”아니, 그런 말이 아니고. 아담하고 좋네 뭐.  공기좋지, 모텔도 있지. 우리 모텔 갈까?“

 ”너, 죽을래?“

 ”나 배고파. 얼른 이거라도 먹자“ 하면서 현욱은 케잌을 푼다.

 퇴근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농구한다고 허구한날 수업을 빼먹은 현욱은 학사경고를 받아 수진보다 1년 늦게 졸업했고 시력으로 군면제를 받은 뒤 지인의 무역회사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 형 아니었음 나 받아주는 데 없었을거야,“ 하며 첫 출근날, 한 턱을 쏜 기억이 떠올랐다.

 ”나 아직 저녁 전인데 같이 밥 먹자.“

 그렇게 둘은 수진이 갓 끓인 된장찌개에 김, 계란말이, 김치를 놓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일은 재밌구?“

 찌개 김이 서려 뿌옇게 된 현욱의 안경알이 우스워 수진은 대답 대신 티슈를 건넨다.

 ”너 앞은 보이니?“

 ”아니, 보이는거 없어. 그러니까 우리 모텔 가자. 응?“

 하며 현욱은 티슈로 안경알을 쓱쓱 닦는다. 그리고는 이어서,

 그렇게 둘은 저녁을 끝내고 유원지 방향으로 산책을 나섰다.

 ”계곡이 이쁠거야.“

 그랬다. 유원지 계곡은 안식년이어서 들어갈 순 없지만, 비가 세차게 내리고 나면 물이 불어폭포를 이루곤 했다. 너 좋은 데 산다 정말. 연신 현욱은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러나 시간이 늦어 유원지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 계곡은 보지 못하고 대신 근처 식당에서 둘은 맥주를 마셨다.

 ”너 많이 늙었다 저번에 학교에서 봤을 땐 몰랐는데.“

 목이 말랐는지 두 잔을 연거푸 들이킨 현욱이 개구지게 운을 뗐다. 눈가에 주름두 있네? 야, 너 좋은 시절 다 갔다.

 하는 말에 수진은 왠지 발끈한다.

 ”넌 머리 벗겨지고 있어. 몰랐니? “

 이른바 청춘이 저무는 나이.     

 유투브 일은 나름 재미가 쏠쏠했다. 주류 문학위주로 작업을 해온  수진으로선 ‘시모와 아들이 알고 보니 불륜사이’라는 제목부터가  충격적이었다. 물론 내용은 그렇지도 않았다. 별 얘기도 아닌 걸 그럴듯한 제목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조횟수를 올리는 미끼였다. 처음엔, 어떻게 이런 제목에 낚일까 싶기도 했지만, 쓰다 보니 그 재미가 만만치 않았다. 언젠가부터 수진 자신이 보기에도 심하다 싶을 정도의 타이틀과 프롤로그를 달 정도로 이 일에 적응한 수진은,  더 이상 ‘한밤중 욕실에서 뛰어나온 시부와 며느리가 향한 곳은?’ ‘전남편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 내 아내가 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정도엔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비가 몹시 퍼붓던 휴일 낮, 요란하게 초인종이 울렸다. 전날 유투브원고 두 편을 몰아 쓰느라 수진은 녹초가 된 상태였고 그래서 잠깐 졸았을까? 꿈결인 듯, 문을 열어줬다. 현욱이었다.

 ”우리 드라이브 가자, 내 탄신일.“

 다짜고짜 현욱이 손을 잡아 끈다.

 ”비오는데?“

 하지만 수진은 결국 현욱을 따라 나섰고 현욱이 형에게 빌렸다는 소나타를 타고 둘은 양평으로 향했다.

 ”거기 가면 외삼촌 별장이 있어. 걍 쪼끄만...“

 ”너 TV 많이 보는구나. 거기서 니 생일 파티라도 하게?“

 ”그냥 너 머리두 식힐겸 가서 하루 놀다 오자는거지. “

 현욱은 꽤 능숙한 운전솜씨를 보이며 가속 페달을 밟아댔다.

 양평에 도착했을 때 비는 멎어있었고 나뭇잎들은 비가 남긴 영롱한 방울을 얹고 반짝였다.

 별장은 단출하면서도 깔끔해 보이는 전원주택이었다.

 들어와, 하면서 현욱은 마치 자기 집이라도 되는양 들어섰고, 그안에 정말 클리셰한 풍경이 펼쳐졌다. 벽난로부터 목제 흔들의자, 그리고 쇠락한 느낌의 초상화 한점. 그림속의 여자는 잔뜩 우울한지 미간을 모으고 프레임 밖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강. 강의 모습. 비  온 뒤 강은 한층 불어났고 물살은 빨랐다.

 잠깐만, 하고 현욱은 차에서 종이봉투 가득 식재료와 샴페인 한병을 가져왔다. 이런건 언제 준비했어? 그냥 뭐...씩 웃는다 현욱이.

 수진이 창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이 밀려든다. 그 바람이 수진을 꿈결로 인도했다. 그대로 수진은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한시간쯤 그렇게 잠에 빠져있을 때 수진의 얼굴을 톡톡 치는 현욱의 손이 느껴진다. 그러더니 이윽고 수진의 코를 쥐고 흔든다. 뭐야! 하며 수진은 눈을 떴고 어느새 저만치 만찬이 준비돼있다. 벌써 다 했어? 일어나 짜샤, 하며 현욱이 수진을 일으킨다.

 그날 둘은 되도 않는 농담을 해가며 차린 음식을 먹어치웠다.

 ”야, 우리 둘이 이러구 있으니까 옛날 생각난다. 너, 나 농구하는 거 매일 구경했잖아 운동장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랬든가. 현욱이 농구에 미쳤다면 수진은 현욱에 몰두했었나. 하지만 그땐 몰랐다. 둘은 늘 타이밍이 어긋났다. 하지만 각자의 상대로부터 돌아와 보면 늘 그 자리에 서로가 있었다. 그런 엇갈림과 회귀마저 감미롭던 우리들의 청춘.     

 그날 밤 둘은 함께 잤다 양평에서. 누구랄 것도 없이 서둘러 옷을 벗고 침대로 향했다. 손을 마주잡고 입술을 포갰다. 그렇게 둘은 더 이상 ‘그냥 친구’일수 없는 사이가 됐다. 섹스가 끝난 뒤 먼저 입을 연 건 수진이었다. 너무 부담 갖지 마. 그러자 큭큭 하고 현욱이 웃는다. 돌아보면 그날의 일은 모두가 꿈결 같았다.

 다음날 새벽 정릉으로 돌아와 둘은 한 번 더 수진의 방에서 하나가 됐다. 현욱을 배웅하고 돌아오면서, 수진은 저릿저릿한 하복부 통증을 느꼈다. 현욱이 들고 난 자리.


 이후로는 거의 매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둘은 계속 만났다. 만나서 밥을 먹고 섹스를 했다. 그러다보니 현욱의 몸에 너무 익숙해져 다른 누구도 더 이상은 받아들일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수진은.

 ”야, 숲속에 아파트가 다 있네. 대박.“

 언젠가 수진의 방에서 함께 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 조깅에 나선 둘은 맞은편 D아파트 단지를 지나치게 되었고 그때 현욱이 한 말이다.

 ”왜, 신기해?“

 ”저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서울에 이런 덴 없을 거야 아마. 우리두 저기 하나 얻을까? 저거 얼마나 하냐?“

 ”뭐?“

 수진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지금 너 청혼한 거니?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현욱이 싱긋 웃으며 수진의 뺨을 토닥인다. 이제 현욱의 이런 토닥거림이나 속삭임, 농담이 없음 수진은 살 수 없으리란 생각마저 들었다.

 ”나 이혼녀야..“

 자기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

 ”그래서 뭐. 내가 뭐 하쟤? 또, 뭐 하면 안돼? “

 ...

” 다음주면 우리 한달이지?“

 ”그런가? 왜?“

 ”인사해야지 이제.“     

 수진의 모친은 예상보다 빨리 딸이 방황을 끝내게 된 게 무엇보다 안심이 됐다. 하지만 현욱의 부친이 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다는 말에, 그런 보수적인 집안에서 널 받아들일까, 하며 걱정을 토로했다.      

 그리고는 둘이 만난 지 딱 한 달 째 되던 날, 현욱은 저녁에 자기 회사 앞으로 오라는 문자를 보낸다. 잘 입고 나오라는 당부와 함께. 분명 가족 중 누구 하나에게 수진을 인사시키는 모양새였다. 수진은 얼마 안되는 정장을 이것저것 대보다, 린넨 소재 단정한 원피스로 결정을 하고 약간의 스모키 메이컵을 했다. 현욱이 그 몽롱함 속으로, 자기 몸으로 들어오는 느낌....

 그리고 수진은 현욱의 회사로 갔다. 마포의 그 건물 앞으로. 건물 5층이 현욱이 일하는 곳이라고 했다. 마침 “X- Trade" 라고 페인팅 된 회사 이름이 눈에 들어와 박힌다. 이제 곧 나오겠지, 하고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이 다 됐다. 그러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린다. 받아보니, 유투브 편집부장 경혜였다.

 ”작가님, 밖인가봐요?“

 ”네, 부장님. 오늘 스무번째 원고 보냈어요. 받았죠?“

 ”그래서요. 수고하셨다구요 그동안.“

 ”네?...그럼  급여는 언제.“

 ”내가 말씀 드렸는데 처음에..채택된 원고수가 스무개가 돼야 100만원 드린다고.작가님원고 15개만 나가서...“

 수진은 아득해진다. 이게 무슨말인가 싶었다.

 ”여보세요?“

 경혜는 ,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봬요, 하곤 전화를 끊는다. 수진의 몸이 휘청인다. 사기, 라는 두 글자가 퍼뜩 떠오른다. 면접 때 다 된 양 통장사본까지 요구한 자체가 . 그때 회전문이 돌면서 말쑥한 정장차림의 현욱이 나온다. 현욱아..하고 간신히 걸음을 떼는데, 뒤따라 나오는 어린 여자가 보인다.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현욱에게 여동생이 있었든가, 하며 수진은 기억을 따라가 보지만 형 외엔 형제나 남매는 없다고 했다 분명.

 ”인사해 수진아. 결혼할 사람이야.“

 그말에 하마터면 수진은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무슨 말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수진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상대 여자는 “ 안재희예요 , 언니 얘기 많이 들었어요“ 하며 웃는다. 언니...수진은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할 수 없어 무조건 대로변을 향해 뛴다. 야, 강수진! 하는 현욱의 부름을 뒤로 하고. 그리고는 그날 밤 현욱에게서 문자가 왔다.     

 5000만 있음 꿔줄래? 형이 도와준다는데 번번이 미안해서. 최소한 전세는 얻어야 장가가지. 딱 5000이 비네. 너 위자료 많이 받았을 거 아냐.

 그러고 있는데 이번엔 전화벨이 울린다. 수진의 몸이 부유한다. 적어도 수진은 그렇게 느낀다.

 ”미안해. 진작 얘기하려고 했는데, 이해하지? 넌 결혼도 해봤잖아. 5000이면 돼. 내가 1년 뒤에 이자까지 쳐서,“ 현욱은 전화너머에서 끈질기게 말을 이어간다.

 ”없어 그 돈.“

 ”수진아 도와주라. 너 아까 그러구 가니까 재희가 의심하잖아.“

 ”뭘?“

 ”우리가 특별한 사인 줄 알더라구“

 수진은 기가차서 반은 농처럼 대꾼한다

  ”너, 랑 잔게 몇 번인줄 알어?“

  ”야, 너도 원한거 아니었어? 서로 즐겼음 그만아냐?“

  ”야, 김현욱!“

  ”강수진 , 너 이혼녀야. 니가 입에 달구 살았잖아“

  수진은 전화 종료 버튼으로 손이 간다. 그때 분명히 들었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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