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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Jun 18. 2024

그 남자의 방

서진은 아예 메시지창 배경사진을 바꿔버렸다. 해인과 함께 경포대에서 찍은 사진을 지워버린걸 보고 그녀는 비로소 이 관계가 끝났음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킨다.


거래처 지인으로 만나 3년동안 연애를 하면서 둘이 잠자리를 같이 한건 연애초기 몇번이 다였다. 

그 얘기를 친한 친구들에게 털어놓으면 '너한테 끌리지 않는거야. 끝내라'라는 충고 일색이었다.  '남자는 끌리면 달려들지 그렇게 두고 보지 못한다'라고 얘기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해인은 남녀간에 꼭 '섹스'가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그래서 번번이  동침을 거부하는 서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해인자체도 그리 섹스에 연연하지 않아 어쩌다 하게 되면 하지 하고는 가볍게 넘기려고 해왔다.


그러다 해인의 세가 만료돼 이제는 서진과 합칠때가 됐다고 생각해 외곽에 방 세칸짜리 빌라를 융자끼고 얻었다. 

"내가 좀 보태줘야 하는데"

서진은 돈 한푼 보태지 못하는 걸 미안해하면서 그렇게 내뱉았다.

'어차피 같이 살거, 누구 집이면 어때'라고 해인이 말하면

'그래, 니 집이다. 그말인즉 난 언제라도 니 맘에 안들면 쫓겨날수 있다는 얘기지'라며 불퉁하게 받곤 하였다.

작은 집이어도 어떻게든 서진의 방을 따로 내주고 싶어 그녀는 이런저런 궁리끝에 자그만 침대와 역시 자그만  책상을 놔주기로 하였다.

"침대는 철제로 하자. 그게 깔끔해"

"침대 놓으려고? 공간이 돼?"

"낵가 알아서 할게"

연애초기 몇번의 잠자리를 하고나서도 서진은 잠만은 홀로 편하게 자고 싶어했다. 마그걸 알기에 해인은 이번에 단단히 각오를 하고 이사를 한것이다. 

물론 제일 안방엔 큰 침대를 놔서 둘이 같이 잘수도 있었지만 '알뜰한' 서진만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둘이 연애를 한 지 반년 후에 해인의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을 해서 그녀는 서진과 멀리 떨어진다는게 내키지 않고 지방살이에 자신도 없고 해서 사직을 하였다. 그리고는 퇴직금으로 작게 까페를 차렸다. 동네장사여서 크게 남는건 없어도 그렇다고 밑지는 것도 아니어서 그럭저럭 할만 했다...

그러다, 서진의 동생이 교통사고를 냈고 그 합의금이 없어 쩔쩔매는 서진에게  해인은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주고는 잠시 아득했지만 어차피 같이 살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래선지 서진도 처음에 '갚을게' 한마디 하고는 그 얘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그 부분이 조금 아쉽긴 했어도 일부러 또 거론하기도 뭐한 일이라 돈 이야기는 그냥저냥 묻혔다.

그후로도 서진의 집에 악재가 겹쳤고 그러자 서진은 이젠 당연하다는 듯이 해인에게 손을 빌렸고 해인은 대출을 받아서까지 그 돈을 해주었다. 해인에게 서진은 이미 '남편'이었다.


이삿날 서진은 월차를 내고 와서 짐이 다 들어온 다음 쓸고닦고를 반복해서 해인은 '팁'이라며 돈 100을 서진에게 쥐어주자 '니가 무슨 돈이있어'라면서도 그는 마다하지 않고 그 돈을 반지갑에 쑤셔넣었다. 그리고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던 그 모습을 보면서 해인은 조금은 착잡했지만, 그 정도의 대가는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삿날 같이 꼬박 밤을 새고 서진은 다음날 지친 몸으로 출근했고 그런 그가 걱정돼서 점심무렵 해인이 그의 회사 앞으로 가서 또 점심을 냈다.

"이럴필요없어 . 우리가 남이니"

"자기 정말 고마웠어. 이번 이사때 저가 없었으면..."

"별소릴"하면서 그는 만두전골을 주문했다.


이제 아사도 왔고 서진의 방을 꾸미다보니 해인은 이미 그와 결혼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쯤 결혼이야기가 나올만도 한데 여태 없는게 내심 서운했지만, 언제해도 하는 결혼이려니 하고 좀더 기다리기로 하였다. 아니면 해인이 먼저 청혼을 하는 방법도 있었다.


"이게 내 방이야? 뭐할러 침대는 또...안방에서 같이 자면 되는데"

"자기 자는건 편하게 자고 싶어하잖아"

"건 그래" 하면서 서진은 정성스레 베딩된 침대위에 앉아보았다.

"내일 책상도 와. 그리고 회전소파도"

"돈쓰지 마라. 안그래도 이사하는데 내가 보탠것도 없는데"

"자고 갈래 오늘?"

"다음에...기획안 써야 할게 있어.밤 새야 돼 오늘"

"그래..."

그렇게 서진은 갔고 이후 삼사일에 한번씩 해인을 찾아 '자기 방'에서 자고 갔다.

한번은 해인이 새벽녂 슬그머니 그의 방에 들어가 침대옆에 걸터 앉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가 벽을 보고 모로 돌아누웠다. 해인은 살며시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고 그러자 "가서 자 얼른"하며 은근히 그녀를 밀어내는 시늉을 하였다. 해인은 당연히 서운하였지만 내색을 않고 안방으로 와서 그 넓은 침대에서 혼자 잤다. 그리고는 꿈을 꿨다....

횡단보도를 같이 건너던 서진과 해인이 중간에 신호가 바뀌면서 서로 갈라지는.

눈을 뜬 해인은 후다닥 서진의 방으로 갔고 그는 코까지 골며 숙면에 빠져있었다.꿈일 뿐이야...


"결혼?"

"응...우리 하자 결혼"

"글쎄..."

글쎄,라는 말에 해인은 가슴이 쿵 하고 내려 앉는다. 자기 혼자 서진을 결혼상대로 생각해왔다는 말인가 싶어 그녀는 조바심이 났다.

"우리 식은 나중에 올리고 그냥 합치자. 지금 자기 집도 좁고"

"뭐가 그렇게 급해...내가 자주 오면 되지"

이야기가 이렇게 꼬여버릴걸 전혀 예상못한 해인은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왜 요즘 안와? 바빠?"

"응...좀 그래...우리 회사 구조조정 들어가서 눈치봐야 돼

"아, 그랬구나.."하고 해인은 주인없는 서진의 방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돌아섰다.

그후로 서진은 거의 일주일, 열흘에 한번, 마지못해 오는 사람처럼 밤 늦게 와서는 해인이 차려주는 밥을 먹고는 그대로 자기 방으로 가서 냅다 자기 시작했다.

해인은 기억을 곱씹어본다. 둘이 함게 잔게 언젠지....

속으로 쌓아만 두다가는 아무래도 사달이 날거 같다. 해인은 다음날 아침 토스트를 구우며 건성으로, 건성처럼 이야기를 더녔다.

"난 이제 기억도 없어. 우리 같이 잔게 언젠지"

"뭐?"

"우리, 부부나 다름없잖아. 그래, 혼인신고야 나중에 해도, 난 자기랑 부부로 살고싶어. 한집에서 같이 밥먹고 자고 눈뜨고"

"..."

"왜, 대답이 없어?"

"넌 머릿속에  섹스뿐이니?"

"뭐?"

"지금 얘기가 그렇잖아"

"솔직히 말할게...친구들이 그러는데, 남자가, 그것도 한창나이의 남자가, 섹스를 기피하는건 나한테 마음이"

"누구야? 누가 그랬어?"

"우리 초기엔 좀 잤잖아"

"바빠서...이런 얘기까진 안하려고 했는데, 나 새벽에도 발기가 안된다. 난 그른거 같아"

그리고는 토스트를 입에 문채 그는 현관문을 나섰다. 지금 나가도 자유로가 막힌다면서...



이후로 서진으로부터는 연락이 없이 일주일, 이주일이 흘러 해인은 그의 텅빈 방을 보다가 아무래도 매듭을 지어야겠다 생각하고 그를 오라고 하였다.

"급하면 니가 오지 왜 바쁜 사람 오라가라야"라며 그는 신경질을 냈고 그의 그런 반응에 해인은 할말을 잃어버린다.

"많이 바빠?"

"왜? 전화로 얘기하면 안돼?"

"난 자기 방까지 꾸며놨는데"

"내가 하라고 했어? 니가 좋아 한거지.."

"그런 말이 어딨어..우리, 같이 살거 아냐?"

"나 바쁘다.."하고 그가 끓으려 해서

"할말있어"

"너한테 빌린돈은 다 갚아. 시간 걸려도."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너 돈때문에 이러는거잖아. 떼먹힐까봐"

"서진씨!"

"내가 내일 들를게"하고 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물론 그 다음날 서진은 오지 않았고 그다음날도 그 다음주에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결론이라도 내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서진의 퇴근시간에 맞춰 그의 회사앞으로 갔다.둘이 자주 보던 그 까페에 들어서려다 저만치 건물 유리 회전물을 나오는 서진의 모습이 보였다. 

"서진!"하고 그녀가 그에게로 가려는 순간, 그의 뒤를 따라 동료인듯한 여직원이 따라나왔고 그녀는 서진에게 팔짱을 끼고둘은 그렇게 저만치로 멀어져갔다..


"우리, 이제 끝난거야?"

"그런말이 어딨어. 내일 갈게"

"안 올거잖아 너."

"너?"

"왜, 난 '너'라고 부름 안되니? 개자식"

"너 미쳤어!"

이번엔 해인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침대에 우두터니 앉아 밤이 가시길 기다리다 동이 터올무렵 결심을 굳히고 '서진의 방'으로 갔다.

데이베드형 철제침대와 모던하고 심플한 데스크, 그리고 회전소파를 보며 해인은 그동안 자신의 어리석음을 개탄하면서도 이걸 중고마켓에 내가 팔면 제법 돈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가구 사진을 여러 각도에서 찍다 문득 서진의 메시지창 배경사진이 궁금해 들어갔다. 경포대에서 다정하게  찍었던 그 사진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다. 하지만 서진은 이미 해인의 흔적을 싹 따 지워버린 뒤였다.


"신부님 웃으세요"

해인은 보조개를 파며 살짝 웃어보인다.

"신랑님은 어디 계세요? 빨리 오시라고"

사진사가 채근을 하는데, 그녀는 눈을 떴다.

마침 그날 친구 경미가 전화를 걸었고 연결이 안되자 불길한 마음에 해인의 집을 찾았다. 아무리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어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가서, 욕조가득 물을 받아놓고 손목을 그은 해인을 발견한 뒤 경미는 119를 불렀다.


That's Why You Go Away  | Michael Learns To Rock | [ Lyrics + Vietsub HD ]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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