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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Jun 09. 2024

금지된 사랑

연애기간동안 한번도 자기 집에 부른적 없는 혁민의 집을 은정은 이번엔 꼭 가보리라 마음 먹었다. 혼자 살면 오죽하랴 싶어 밑반찬이며 이것저것 준비해 전화를 하면 꼭 단지 근처  a마트 앞으로 오라고 한 그였다.

"난 자기 집좀 가보면 안돼?"

"허접해서..월세라 쪽팔려"

처음엔  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그가 하라는대로 a마트 앞에서 그를 만나왔다. 

물론 혁민은 은정의 집에 자주 왔고 잠도자고 여러날을 머물다 가기도 하였다.

"그래도 넌 이렇게 집이라도 있잖아 난...."

이라고 그가 자학할땐 은정은 몸둘바를 몰라했다. 집이라고 해봐야 실평 10평이나 될까, 그것도서울끝자락에...

그런 그를 보면서 돈으로 보태주진 못해도 그가 작가이니 책이라도 자주 사주고 고기, 밑반찬은 자기가 맡겠노라 다짐을 했고 여태 그래왔다.


혁민은 한마디로 무명소설가다. 동대문에서 옷을 떼다 파는 은정이 글세계를 충분히 이해하는건 아니었지만 그만큼 그세계 사람들에 대한 경외의 마음 정도는 갖고 있었고 그들이 현세태에서 돈벌기가 얼마나 힘들까 정도는 헤아릴수 있었다.

둘이 처음 만난건 혁민이 은정의 옷가게에서 온라인으로 옷을 주문한게 사이즈가 안맞아 교환요청을 하면서였다. 그는 받자마자 습관처럼 세탁을 해버려 은정은 교환불가라는 답변을 보냈고 그러자 혁민은 그런법이 어딨냐고 항의를 하였다. 은정은 그나름 차근차근 설명을 해줬지만 혁민은 불퉁하게 그녀의 전화를 끊어버렸고 이후 포기했는지 그로부터는 연락이 없었지만 은정은 4900원짜리 티셔츠 하나로 둘이 다퉜다는게 마음이 편치 않아 혁민이 요구한 한 사이즈 위 옷으로 다시 보내주었다. 그러자 그걸 받은 혁민이 전화를 걸어왔고 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무능하다면 무능한 혁민이었지만 은정으로서는 그가 작가라는게 은근 뿌듯하고 자랑하고 싶은 포인트였다. 

"야, 하필 거렁뱅이를 만나냐"

여고동창 희숙이 그렇게 이죽거렸지만 은정은 기다렸다는듯이 제일 잘 나온 혁민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은근 자랑을 해댔다.

"야, 이러다 인물값 하면 어쩔라고"

라며 희숙은 그 사진마저 트집을 잡았지만 은정은 개의치 않았다.

그런 은정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혁민은 곧잘 이렇게 묻기도 하였다.

"너정도면 돈많은놈도 충분히 만날텐데 왜 나같은 놈을..."

"자긴 특별해. 아주 특별한 남자야"라며 그녀는 그의 품으로 파고들곤 하였다.


하지만 연애기간이 한참 돼도 여태 혁민이 자신의 집을 보여주지 않는다는게 언제부턴가 은정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야, 그놈, 혹시 딴여자 있는거 아냐?"

희숙은 그런말까지 해댔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딱히 '허접'한것이 이유인것만은 아닐거 같아 안그래도 은정 역시 이번엔 기필코 그의 집에, 그의 방에 들어가보리라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는 사전 연락도 없이 고기와 밑반찬을 싸서 혁민의 동네로 차를 몰았다. 그날따라 차가 막히지 않아 평소 1시간 거리의 그 동네에 40여분만에 도착하고나자 그 다음이 막막했다. 대충 어느 빌라라는것까지만 알지, 정확한 동홋수를 모르니 쳐들어갈수도 없었다.여하튼 왔다는 전화는 해야 하는 것이고 해서 그녀는 좁은 주차 공간에 간신히 차를 대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마침 통화중으로 나왔고 이후 두번이나 더 전화를 했지만 그는 여전히 통화중이었다. 도대체 누구와 통화하길래...하다가 그녀는 문득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희숙의 말대로 그에게 다른 여자라도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자 손발이 저릿해왔다. 아니겠지 설마...하면서 그녀는 다시 전화를 하자 이번엔 곧바로 혁민이 전화를 받았다.

"왜..."

"내 전화 안찍혀있어? 콜백도 안하고"

"그랬어? 못봤어...아,그랬구나"

"나, 자기 집 앞"

"어디라구?"

하더니 한동은 혁민은 아무말이 없다. 왜 쳐들어왔냐, 내 집은 보여주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냐,따위의 말도 않은채 한참을 침묵하더니 "내려갈게"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렇게 순순히 보여줄걸 왜 여태, 라는 생각을 하며 은정은 차에서 내려 뒷자리의 음식꾸러미를 꺼냈다.

그러고 있는데 벌써 내려온 혁민이 뒤에서 "뭘 그렇게 싸와"라는 말을 건네왔다.뒤를 돌아본 은정은 그날따라 혁민이 핼쓱하고 초췌해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기 무슨 일 있어?"

음식을 그의 손으로 넘기며 그녀가 물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말도 없이 앞장을 섰다.

그의 집은 예상한대로 작고 허름했다. 하지만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기엔 그나름 정돈돼있고 주방도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집 좋다..깨끗하고"하면서 은정이 살짝 그에게 눈을 흘기자 은정이 싸온 고기를 냉동실에 넣던 혁민이 어색해 하였다.

"고기 넣지 말고 지금 구워먹자"라며 은정이 말하자 "그럴까?"라며 그가 다시 고기를 꺼냈다.

"왜 나한테 집 안보여줬어 여태? 친구가 뭐라고 한줄 알아? 당신이 다른 여자랑 살림차려서라고 했어"

"그랬어?"하고 혁민이 히죽 웃었다.

"지금 웃음이 나와?"

"다신 오지 마라. 오늘이 마지막이야"

"뭐? 무슨 말이야?"

그녀는 고기 넣은 상추쌈을  목뒤로 넘기다 걸려버려 한참을 케케거렸다. 혁민이 건넨 물을 두컵이나 들이붓고 나서야 고기는 밑으로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오늘 너랑 마지막이라고"

"혁민씨..장난이지? 내가 여기 온게 그렇게 잘못한거야? 그럼 안올게 이제. 이제 마트 앞으로만"

"아니, 이젠 너 안봐"하더니 혁민은 먼저 수저를 내려놓고 저만치 방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책상으로 가서는 노트북을 켰다. 

"어제 밤샜는데도 글이 안나간다. 아까 편집장 여자랑 그 통화한거고"

"자기 글 꼭 쓰지 않아도 돼. 쓰고 싶을때만..."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라. 우린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지금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은정은 지금 이 집에서 자신이 할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는 한참을 , 노트북 자판을 두드려대는 혁민의 등만 쳐다봐야 했다....


한 30여분을 그렇게 은정의 존재를 무시한채 글에만 몰두하던 그가 고개를 돌려 "가줄래? 나좀 피곤한데? 자야겠어"라는 말을 하였다. 

이 남자에게 이렇게 매정한 면이 있었나, 은정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니지? 나 다시 안본다는거?"

"난 한번 질리면 안봐 다시는"이라며 그가 노트북 뚜껑을 닫으며 빨리 가라는 압력을 넣었다.

"내가 여기 온게 그렇게 잘못이야?"

"뭐가 됐든..일단은 나 이렇게 사는 꼬라지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그리고....그리고 너와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야 이 집은"

"무슨 뜻이야? 나랑 어울리지 않다는건?" 하는데 그제야 사방벽을 가득 메운 책들이 그녀의 눈을 사로 잡았다. 그것은 일종의 철옹성이었다. 그누구도 침범할수 없는, 그래서도 안되는 그만의, 혁민과 글만의, 아니 어쩌면 그와 같은 부류들만 출입을 허락하는 지극히 '배타적인 공간'이었다.

"그런 뜻이야? 지금 내가 생각하는?"

"어쩌면 너랑 살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어쩌면, 이라고? 난, 우리가 결혼할거라고.."

"그게 다른거야 너랑 나랑은"

"그거였어...내가 부끄러웠던거야. 자긴 가난해도 작간데 나는 옷이나 파는"

"...꼭 그런 얘긴 아니구"

"알았어. 이젠 안와. 오라고 해도 안와"하고 그녀는 그집을 뛰쳐나와 4층 게단을 뛰어내려오다 발목을 접지르고 말았다. 웅크리고 앉아 한참을 자신의 발목을 주무르다 그녀가 시선을 위로 했을때, 너무나 낯설게, 처음보는 얼굴로 위에서 멀거니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혁민이 눈에 들어왔다. 더는 그에게 매달려도 소용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나머지 계단을 절뚝이며 내려와 자기 차로 향했다. 물론 그녀를 배웅하는 혁민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집을 옮겨야 할거 같아. 너무 좁고 이 동네 공기도 넘 안좋고"라는 혁민의 전화가 걸려온건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어느 저녁이었다.

"우리 헤어지지 않았어?"

"돈은 빌려줄수 있잖아. 갚을게 꼭"

"미친 자식"

"그러니 너랑내가 맞지 않는거야. 너 보면 ,생각나는대로 지껄이잖아. 상대가 상처받는다는 생각은 안하고"

아...저 세계, 저 남자의 방이란게 이런거였구나 하고 은정은 가차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갑자기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랬어. 비 예보, 강풍을 동반한 비가 온다고...

그녀는 발코니로 나가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비가 뿌리기 시작했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모든게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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