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용서를 구하는 대상이 있어야 가능한데 그들은 세월이 빨리 흘러...'잊혀지기만을 기다린다는 작가의 말이 가슴을 저리게하는 이 작품은 배우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글쓰기를 놓지 않았던 작가 차인표의 대표작이라 불려도 무방할 것이다.
필자가 이 작품을 처음 알게 된것은 모 문학에이전트의 언급에서 비롯되었다. 이 작품을 널리 해외에 알리고 싶다고 하였는데 얼마전 언론에서 이 책이 옥스퍼드대 필독서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내 일인양 좋아하던 생각이 났다. 원제는 <잘가요 언덕>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이번 개정판을 내면서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산뜻하고 미래지향적인 제목으로 바뀐것같다.
백두산에 위치한 '호랑이 마을'과 인근의 '잘가요 언덕' 그리고 '오세요 종'등 이 작품은 위안부문제를 다룬 소설이 아니라는 점만 빼면 한편의 동화라 해도 그닥 틀린 말이 아닐정도로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쓰여져있다. 어린 10대들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들이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의 시간이 배경으로 흐르고 시대사적으로는 중일전쟁이 터질 무렵, 조선에서 14-25세 미만의 미혼여성을 '위안부'로 강제 징집해가는 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소개/알라딘
순이와 용이, 이렇게 둘이 이야기의 핵을 이루는 이 소설에서 용이는 엄마와 갓난 동생을 백호에게 빼앗긴 설음과 고통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아이다. 용이의 아버지 황포수는 그 백호를 잡아 복수하겠다고 아들 용이를 데리고 호랑이 마을로 들어와 기거하게 되면서 어린 순이와 용이는 서로에게 풋사랑을 느끼는데...
결국 백호를 잡는데 실패한 용이에게 나중에 순이가 묻는 대목이 나온다. '이제 백호를 용서하면 안되겠니'라고..
동화에나 나올법한 '용서'라는 주제에 부합하는 또다른 인물로 일본인 '가즈오'가 나오는데 그는 '대일본제국' '대동아공영'같은 전쟁 구호를 그대로 믿고 '미개한 조선인을'빨리 개조시키고 고향 모친에게 돌아가는 것이 소망인 젊은 일본인이다. 그런 그가 계속되는 전쟁에 지치고 회의를 느끼게 될 즈음 순이를 보게 되고 연정을 품게 된다. 하지만 순이에게는 이미 용이가 있고...
이 삼각관계는 소설 후반의 아이러닉한 장면들을 연출해내기도 한다.
잔악한 일본군이 아닌 서서히 조선과 조선인에 동화돼감으로써 그는 개인차원의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수 있다.
위안부로 끌려가는 순이를 구해내기 위해 뛰어든 용이가 호랑이 덫에 걸려 한다리를 잃게 되는 부분에서 비장감은 절정에 달하고 이것은 일본군의 성노예로 전락하는 자국의 여성들을 지키지 못한 조선의 나약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렇게 작가 차인표는 한편의 긴 동화를 써내는 척 하면서 우리 역사의 가장 아프고 쓰라린 치부를 까발려놓는다. 그렇게 끌려가는 순이의 예감대로 용이와의 이별은 결국 '긴이별'이 되고 만다...
원래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나라들은 예로부터 싸움도 갈등도 전쟁도 많다고 한다. 물론 그만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 할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일본'이란 나라는 과연 어떤 곳인가는 여전히 정해지지 않은 해답과도 같다. 애증이란 말로도 다 풀지 못하는. 아무 죄없는 어린 여성들을 이런저런 명목으로 강제로 끌고가 성노리개로 삼은 것에 대해 그들은 그닥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것 같다.
작가 차인표/google
오히려 ' 다 지난 옛날일을 들춰낸다'고 타박을 하기까지 한다. 그런 일본의 태도에 우리의 국론은 분열되고 그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임을 깨닫는다면 쓸데없는 우리끼리의 싸움은 이제 멈추고 통일된 시선과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일본이 얼마나 집요하게 우리를 약탈하고 갈취했는가를 떠올린다면 그리 선선히 타협하고 용서할 차원의 일은 아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렀다 해도...
하지만 홀로 동떨어진 섬이 아닌 이상 우리도 언제까지나 일본을 배척하면서 살아 갈순 없는게 현실이다. 어제의 벗이 내일의 적이 된다면 그 역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서를 구하고 그 용서를 받아주는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별로 미안해하지도 않는데 우리가 성급히 화해와 용서의 손을 내미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를 느끼게 한다.
'용이야 다시 만나 엄마별에서'라는 순이의 말처럼 그렇게 이별한 순이와 용이는 과연 후에 다시 만났을까?
우리와 일본은, 아니, 이젠 그 대상이 일본에 국한되지도 않지만, 언제나 '엄마별'에서 만나질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