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가리<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세상과 잠시 타협한 고독
로맹가리의 이 소설집은 여러번을 읽었어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것 투성이다. 물론 나의 문해력의 문제겠지만, 몇몇 단편을 제외하고는 여러번 연거푸 읽어야 그나마 '작은문'이 열리는 만만찮은 작품들로 이루어져있다.
그중에서 표제작인 <새들은 페루에...>는 페루의 외딴섬에 까페를 차리고 세상과 단절한채 살아가는 한 남자와 그의 운명속에 불쑥 들어와버린 한 여자의 짧고도 강렬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많은 상징과 혼선으로 가득차, 그녀가 과연 실제인물인지 그의 고독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인지조차 헷갈리게 한다.
그토록 그는 외부로부터 철저히 고립돼 새들의 시체에 둘러싸여 철저히 혼자만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의 눈앞에 '윤간당한 것'으로 추측되는 한 여자가 나타나고 그녀는 왜 자기를 구했냐며 그를 원망한다.
'날 내버려둬야 했어요. '라는 말은 이 작품에서 여러번 되풀이된다.
'파도가 밀려오면 다 끝낼수 있었는데'라며 그녀는 계속 흐느낀다.
그만큼 그의, 작가 로맹가리의 삶에 대한 염오가 짙게 배어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녀가 당한 처참한 일은 우연한 사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인간사가 얼마나 더럽고 조작적인 것인가가 밝혀진다.
그의 품에 안겨 잠시나마 평온을 찾았던 여자는 결국 자신이 원래 속한 세계로 돌아가게 되고 그는 다시 혼자가 된다. 다시, 새들의 주검외에는 세상 그 어떤 존재도 그를 찾지 않을것이다..그렇다면 그의 품속에서 한마리 작은새처럼 웅크리고 있던 그녀는 진심이었을까? 그는 그 순간만은 세상과 화해한 것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그마저도 세상의 교활한 농간이며 가공할 조작은 아니었을까,라는 의문을 남기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페루의 외딴 섬과 바다를 묘사해내는 로맹가리의 내공만으로도 높이 평가받아야 하는 수작이다.
"그는 테라스로 나와 다시 고독에 잠겼다. 물가로 밀려온 고래의 잔해, 사람의 발자국, 조분석으로 이루어진 섬들이 하늘과 흰빛을 다투고 있는 먼바다에 고깃배 같은것들이 이따금 새롭게 눈에 띌뿐, 모래언덕, 바다, 모래 위에 죽어있는 수많은 새들, 배 한척, 녹슨 그물은 언제나 똑같았다"
황량하고 버려진 폐허를 예상케하는 바다의 묘사는 혹시 우리 삶을 에둘러 그린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잔악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꿈들이 전쟁과 감옥을 만드는 데 이미 쓰이지 않았던가"라고.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 인간 최후의 미덕은 '죽음'뿐일까,하는 조금은 형이상학적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어볼것은 그녀가 그토록 여러번 되뇌인 '왜 날 구했냐'는 질문이다. 그녀는 정말로 파도를 맞아 죽고 싶었을까? 그렇다면 그녀의 남편인 '영국인''으로 대변되는 부와 명성속으로 되돌아가지 말았어야 하는게 아닌가,싶다.
"때때로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겹다구요. 더이상 이렇게 살순 없어..."라면서도 그녀는 남편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는 다시 페루의 외딴 섬에 혼자 남겨져, 남은 생은 아마도 그녀를 추억하며 살아갈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밀려왔다 물러가는 파도처럼 그의 삶을 뒤흔들어놓고 다시 그를 고독속으로 되돌려놓았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존재의 본질은 '불치의 고독'임을 로맹가리는 말하고 싶은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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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e북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문학동네, 김남주 옮김.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