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폰 지도를 보고 장소를 찾아가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나는 역시 이런데 둔해서 몇번을 '이길이 맞나'하고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결국엔 근처 편의점이며 들러서 해당장소를 물어 도착하긴 했다. 그리고는 약속한 시간에 상대가 나오지 않아 한참을 기다리면서, 사는 일은 이렇게 모르는 길을 물어물어 와서는 또 한동안 기다려야 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였다.
요즘 심사가 많이 복잡한 탓인지 어제는 합정에서 집에 오는 버스를 타고도 밖을 내다 보지 않았다. 내가 그리도 사랑하는 파주길을 그냥 눈감고 지나쳤다...가끔은 그런 날도 있겠지만, 사는게 피곤하고 덧없고 뭐할러 이짓을 하나 할때는 정말 만사가 귀찮고 버겁고 그만둘까 하는 생각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래도 프로스트의 싯구처럼
내게도 '해지기 전에 가야 하는 길'이 있음을 상기하고 어린날처럼 힘들다고 모멸스럽다고 도중에 그 길을 포기하거나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우리에겐 '가지 않은 길'로 유명하지만 나는 프로스트의 '창가의 나무'와 '자작나무'를 더 좋아한다.
누구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마구 흔들리면서 살고, 그래서 지상을 떠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지만 그래도 이곳만큼 좋은 곳도 없다,는 내용인데, 앙드레지드의 <지상의 양식>과 더불어 내 삶의 양대 지침이 되는 글이다...
오늘은 정신과 스케줄이 있다. 매일 나가다보니 몸도 좀 지치고, 신경은 날카롭고..
그덕에 이놈의 대상포진 여파는 좀 수그러든거 같다. 덜 느끼는건지는 몰라도.
현주는 그 나름으로 소은을 챙기려고 한 짓일 게다. 확실히 동현을 끊어냈는지, 이 집만은 지키고 살 수 있는지, 평생 가는 우정을 기대해도 되는지, 남자 따위에 휘둘리지 않게 소은이 확실히 새롭게 태어났는지, 그 모든 걸 확인하고 싶었으리라...
소은이 주방 led 를 켜자 눈이 부셨다. 이 밝음.-<환한 어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