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그럼 그 여자랑 결혼했어야지"라는 아내 정요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뭐 어쨌다구..."하면서 툴툴대며 그 자리를 피하곤 했다.
경욱과 승희는 대학 동문이다. 정요가 짐작하기로는, 경욱이 내심 승희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거 같은데 어느날 재학중에 승희가 홀라랑 미국교포와 결혼을 해버린 것 같다. 그래서 경욱은 슬을 퍼먹으면서 무너진 가슴을 달랬고 그러다 첫 직장에서 입사 동기 정요를 만나 그렇고 그런 남녀의 여정을 거쳐 혼전임신을 시켜 빠른 결혼을 하였다
요즘 경단녀니 뭐니 하면서 결혼을 미루거나 아이 낳기를 미루거나 아예 안낳는 사례가 느는데도 정요는 둘의 결혼일이 정해지자 곧바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야, 나 혼자 벌어서 어떻게 집을 사냐"
"몰라. 난 회사 생활 안맞아. 물론 그렇다고 나한테 현모양처 강요하면 죽인다? 나 얘만 낳으면 요가에 수영에 해외 여행에 싸돌아다닐거야"라며 정요는 애교섞인 협박을 일삼았다.
결혼은 소설이나 이상이 아니고 현실이라는 사실을 정요는 그렇게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정말 아들 현을 낳고는 바로 옆단지 시부모에게 맡기고는 자기는 '여가활동'에 전념하며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정요에게도 걸림돌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승희라는 여자의 존재였다. 언젠가 경욱으로부터 흘려들은 바에 의하면 승희는 서둘러 한 결혼이 파경을 맞았고 그뒤로 복학해서 남은 학기를 마친뒤 조부모가 창업한 a그룹에 들어갔다고 한다.
경욱과 승희의 회사가 도보로도 가능한 거리라는게 정요는 은근 신경이 쓰였지만 설마 애까지 낳은 유부남이 뭔 짓을 벌리랴 싶어 "니 좋을대로 해라... 바람을 피려면 피든가"라며 떵떵거렸다. 물론 차마 그럴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친구들과의 늦은 점심모임을 마치고 경욱의 퇴근시간에 맞춰 그의 회사로 찾아간 정요는 그 승희라는 여자와 맞닥뜨리고 말았다. 저쪽은 정요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정요는 경욱의 폰에서 봤던 동문들 사진에서의 승희를 역력히 기억했다.
"네, 제가 경욱씨 와이프예요. 시내 나왔다가 퇴근하고 같이 들어가려구요"라며 뭐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늘어놓았다.
"아 네...근데 저는 어떻게 알아보시구?"
"아...남편 폰 앨범에서 몇번 뵀어요"
"아 그렇군요...반가워요"
두 여자는 당연히 반갑다는 인사를 나눴지만 딱히 뭐가 반가운지는 알수 없었다. 그러고 있는데 저만치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퇴근하는 한무리의 사람들을 튕겨져나왔다. 그중엔 물론 경욱도 끼어있었다 . 그는 아내 정요가 자신의 첫사랑 승희와 나란히 서서 자기쪽을 보고 있다는게 현실로 받아 들여지지 않아 한참을 제자리에 못박힌듯 서 있었다. 그러자 정요가 쪼르륵 달려와 보란듯이 팔짱을 끼며 "나 오늘 친구들 근처에서 만나서 자기랑 퇴근 같이 할려구"라며 종알댔다. "어 그래"라고 대답하면서도 경욱은 저만치서 자기를 응시하는 승희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회사가 가까운 건 알고 있었고 언제 한번 밥이나 같이 먹을까 하고..."라며 승희는 스테이크를 썰며 단아하게 말했다. 그런 승희의 곱디고운 손을 보며 정요는 은근 부아가 치밀었다. 남편 경욱이 저런 '고급진'여자 취향이라는게 여간 못마땅한게 아니었다.
"두분 정말 행복해보여요"라며 승희각 으레 하는 덕담을 하자 경욱은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해하였다. 그러자 정요는 더 질투가 치밀어 올라 "우리 둘째도 생각중이예요"라며 경욱으로선 처음 듣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언제는 혼전임신이라며 뺨까지 때려대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딱 하나라던 여자가 갑자기 돌변해서 둘째라니...그냥 해보는 소리치고는 너무도 진지한 정요의 태도에 경욱은 목뒤로 넘어가던 고기가 턱 걸려버려 물을 두컵이나 마셔대야 했다.
"너는 그럼 애없이 이혼한거고?"
디저트가 세틩되고 나자 경욱이 승희에게 물었다.
"아니..애는 남편...그러니까 전남편이 키우고 있어"
"그렇구나..."
하지만 정요의 눈에 가녀린 승희의 몸매와 작은 가슴은 전혀 애를 낳지 않은 여자의 그것이어서 그마저도 정요를 안달나게 만들었다.
"언제 집에 와라. 이 사람이 그래도 부대찌개 하나는 째지게 끓여"
세상에 '째지게'라니. 경욱의 구린 말투에 정요는 하마터면 마시던 커피를 뿜을뻔 했다.
그날 그렇게 승희와 헤어져 들어오며 정요는 차안에서 계속 비아냥댔다.
"이쁘긴한데, 속을 알수 없는 얼굴이야. 남자들 홀리긴 딱 좋겠드라"
"야 치사하게...다 지난 얘기다. 내가 바람이라도 피울까봐 겁나녀?"
"그럴 주제나 되면"하고 그녀가 조수석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기다렸다는듯이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뭐 그리 급해서 결혼을 했대?"
"응...그 집안이 명문가야...아기용품으로 유명한 "
그제서야 승희의 빨랐던 결혼의 전말이 밝혀지는 듯했다. 최대한 어리고 남자손을 타기 전에 같은 명문가 며느니로 보내고자 했던 승희부모의 결정이었다는 것을.
"그럼 잘 살았어야지 왜"
"그거까지야 내가 아냐..."
그날밤 정요는 자고 있는 경욱의 머리맡에 놓여진 그의 폰에서 다시 한번 예전 해맑던 시절의 승희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희고 조그만 얼굴, 가녀린 팔다리...누가 봐도 전형적인 미인의 형상이었다. 그에 반해 정요자신은 자라다만듯한 키에 남자같은 두둠하고 살찐 손....그녀는 심술이 나서 그 사진을 삭제해버리고는 경욱에게 등을 보이고 잠을 청했다.
승희를 본 뒤로 정요는 심술을 자주 부리는가 하면 아들 현이 잠도 채 들지 않았는데 부부관계를 하자며 경욱을 못살게 굴기도 하였다.
"당신 왜 이래 , 왜 이렇게 밝혀?"
"부부가 관계하는게 밝히는거니?"라며 그녀는 뵤루퉁해하더니 어느날 경욱이 퇴근하고 들어와보니 퀸침대가 싱글침대 두개로 바뀌어있었다.
"침대 바꿨네?"
"우리 이제 남이잖아. 당신 안엔 승희 걔밖에 없잖아. "라며 그녀는 늘 그렇듯 홀딱 벗고 자기 침대로 쏙 들어가 먼저 잠을 청했다.
"정말 유치짬뽕이다"라면서도 경욱은 그런 정요가 귀여웠다. 가끔 새벽에 발기가 돼서 그녀에게 치근대다 발길질을 당해도 그것마저도 귀여웠다.
"나야 승희.."
한참 바쁜 오전 시간에 승희로부터 난데 없이 점심을 같이 하자는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 정요의 발칙한 변화에 한동안 승희를 잊고 지낸터라 경욱은 이 제안의 의미가 뭘까 궁금했다.
"그래서, 둘째는 가졌구?"
회사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승희가 슬쩍 던진 이 말을 경욱은 알아듣지 못하다 뒤늦게야 '아 그거, 집사람이 농담한거야. 곁에도 못오게 한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말에 승희가 생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대학때나 지금이나 승희의 볼우물은 너무나 사랑스럽기만 했,다.
그래서 내가 너를 얼마나....하고는 겨욱이 예전을 회상하는데
"너 혹시 창훈이 소식 아니?"라며 승희가 슬며시 물어왔다.
"창훈...이창훈?"
"응..."
"니 둘 친했잖아"
그러고보니 창훈과 대학시절 한동안 붙어다닌 기억이 떠올랐다.
"글쎄...안그래도 언제 한번 연락해봐야지 했는데..."라고 하다 그 창훈도 지난해 아이 하나 낳고 이혼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기억이 났다.
"니 둘, 그때 사겼냐?"
"아니...그냥..먼발치에서...좋드라구 걔가 . 이혼하고 비행기 타고 날아오는데 문득 생각이 나잖아...결혼, 했겠지?"
그 물음에 경욱은 창욱이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아니 하기가 싫었다.
자기보다 한참 키도 작고 대학때 이미 머리가 벗겨지고 있던 이 창훈. 그 자식이 곱디고운 승희의 마음을 훔쳤다는게 믿기지 않았고 부아가 치밀었다.
그리고는 집에 오는 길에 함박눈이 내려 도로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하면서 승욱은 '일진 한번 더러운날'이라고 투덜대야 했다.
"야, 우리 둘째 갖자 오늘"하며 경욱이 파자마 단추를 거칠게 풀며 아내 정요의 침대로 다가가자 정요가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왜 그래 갑자기 . 안하던 짓을. 안해 오늘. 피곤해 "하며 그녀가 등을 보이며 돌아눕는걸 경욱이 거세게 돌려놓았다.
이후 창훈과 승희가 서로 연락이 닿았는지 만났는지 아니면 결혼까지 갔는지 경욱은 애써 생각하고 싶지도 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아내 정요의 배가 두둥실 보름달만 해졌을때 동문회에서 나란히 팔짱을 끼고 돌아다니는 창훈과 승희를 목격하였다. 원래 부부나 파트너 동반모임이었는데 잔뜩 배가 부른 정요를 대동하고 나오기가 뭐해 아예 동문회라는 얘기를 하지 않고 나온 경욱은 자기 앞에서 헤실헤실 웃고 다니는 창훈과 승희를 보는 순간 갑자기 아랫배가 뒤틀리며 금방이라도 똥이 쏟아져나올 것만 같았다. 엉덩이를 잔뜩 뒤로 빼고 화장실쪽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그의 위에 대고 창훈이 내뱉었다.
"경욱아, 우리 결혼식에 와라 꼭!"
그말에 결국 경욱의 괄약근은 열렸고 연회색바지는 노랗게 물이 들어버렸다. 계속 나오는 방귀를 뀌어대며 호텔 지하 주차장에 주차시킨 자기 차에 오르자 밑은 축축하고 온몸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최대한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그가 서둘러 시동버튼을 누르는데 똑똑 누군가 운전석 창을 두드렸다. 설마....하고 쳐다본 경욱에게 유리창을 내리라고 손짓하는 승희가 보였다. 그가 유리창을 내리자 승희는 한눈에 봐도 알수 있는 청첩장을 내밀었다.
"다음엔 짙은색 바지 입고 와라"라며 그녀가 예의 곱고 이쁜 볼우물을 파며 놀려댔다.
그뒤로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도 모른채 경욱은 차를 몰어 아파트에 도착했다.
"자기 똥쌌어?"
"장염이래...좀 샜지 뭐"하고는 서둘러 욕실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게 뭐라고...그게 언젯적 일이라고...하는데 부풀어오른 배를 안고 뒤뚱거리며 정요가 경욱의 갈아입을 속옷을 가져다주었다.
"자기야...병원에서 쌍둥이래. 아들, 딸"
그말에 경욱의 두눈이 휘둥그레졌다...그리고는 다음순간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바지에 똥까지 싸가며 좋아한 첫사랑의 여자와 영이별 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