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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의 사랑

by 박순영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할때 연경은 어느정도 그의 품성이나 취향을 알수 있었다.

도미니크.

그가 말한 자신의 이름이 그러했다.

"카톨릭?"

"응.."하고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무교...근데, 이상하게 천주교에 마음이 끌려"라는 연경의 말에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는가 싶더니 그것은 미소로 이어졌다 입가의 잔잔한 미소로...

종교는 누구나 가질수 있고 연경은 현수를 따라 성당에 다닐 생각까지 할거 같았다.

그의 첫인상은 그만큼 단아하고 정갈하고 아름다웠다.


둘은 보통의 연애가 그렇듯 일주일에 하루 이틀 만나 차를 마시고 짧은 여행을 다녀오고 그리고는 헤어질때는 짧지만 부드러운 포옹으로 아쉬움을 나타냈다.

"집에서 한번 보자고 하셔 "

"나?"

대학 3학년이 끝날갈 무렵, 연경은 집안에 현수의 이야기를 했고 부모는 좀 보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쳣다.

"좀 나중으로 미루면 안될까?"

현수는 난감해했지만 연경은 그럴수록 밀어부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를 놓치기 싫어서였다.

"그냥 인사만...나도 니 본가 내려가서 인사드리고..."

"그래...한다면, 결혼한다면 어차피 너랑 할거니까"라며 현수는 고개르 끄덕였다.

하지만 약속한 날이 다가오자 현수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웠다, 연경은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현수는 약속한 그 주말, 연경의 부모를 찾았고 연경의 부모는 흡족해하는 거 같았다. 무엇보다 현수의 부친이 의사고 형이 공대 교수라는 사실이 어필한듯했다.

"넌 취직? 아님 형님처럼 대학원?"

어느날 대학로를 함께 걷다 연경이 현수에게 물었다. 그러자 현수는 당황을 하였다.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구나"라고 연경은 말을 돌렸다...이제 곧 결정하겠지,하는 마음으로....



"나 아무래도 자퇴를 해야할거 같아"

어느날 함께 점심을 먹던 현수의 이말에 연경은 목으로 넘어가던 음식이 걸려버렸다. 켁켁거리는 연경에게 물을 먹이고 등을 두드려 준 현수는 연경에게 너무도 미안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간신히 음식을 넘긴 연경은 한번 더 물었다.

"왜 ? 이제 좀 있으면 졸업인데. 그럼 우리 약혼하기로 하지 않았니?"

"나....사제가 되려고."

그말에 연경은 정말? 하고 음소거로 되물었다. 자신의 귀를 의심할수밖에 없었다.

"사실, 대학 들어올때도 신학대학을 놓고 갈등 많이 했고 부모님한테 야단도 많이 맞았어. 그래서 들어오긴 했는데...물론 공대도 적성에 맞아. 그런데....미련이 남아.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어색함? 회한? 그런거..."

"나는...나는 어떡하라구?"

라는 연경의 말에 현수는 대답대신 시선을 허공에 던졌다. 우리사랑은...우리사랑은 안되는거야,라는 대답을 하는 듯이...


그리고는 아무리 연경이 설득을 해도 결국 현수는 자퇴를 했고 결국 신학대에 입학을 하였다.

"그래도 친구는 할수 있잖아"

"물론"이라는 그의 대답에 연경은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돌려놓으리라 마음먹고, 크게 부담주지 않는 선에서 그를 바라보기로 하였다.

부모의 유산상속 포기 각서까지 쓰고 들어간 신학과에서 그는 두각을 나타내는 듯했다. 그럴수록, 그와는 점점 더 멀어진다는 생각에 연경은 조급함이 일었다.

"신부님은 술 마시면 안되지?"

어느날 둘은 호프집에서 마주앉았다.

"가끔 맥주 한잔 정도는 마실때도 있어"라며 그가 먼저 잔을 비웠다. 그러자 언제나처럼 하얀 얼굴에 홍조가 어리는게 보였다.

"다시 생각하면 안돼? 난...너랑 결혼하고 싶어"

이 말을 하는데 연경의 눈에서 뚝뚝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안...난 성모님과 이미 결혼했어"

"그런 말좀 하지 마...예전의 너로 돌아가면 안되니?...그래, 결혼해도 너 성당일 하는거 내가 말리지 않을게. 나도 성당 다닐게. 같이 신앙생활하고 봉사하고 그렇게 살아 우리"라는 말끝에 결국 연경은 테이블에 고개를 떨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날밤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모르게 연경은 자신의 방 침대에 눕혀졌고 다음날 새벽, 손목을 그었다.



그래도 현수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다신 이런 바보같은 짓은 하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병실을 나가던 현수의 뒷모습을 보며 연경은 이제 모든게 끝났다는 생각을 할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연경의 부모는 현수를 불러 실컷 나무라고 다시는 얼씬도 말라는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는 연경은 마음에도 없는, 부모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연경의 눈에는 어쩐지 그 아이가 남편이 아닌 현수를 닮은 느낌이었다. 그를 너무 좋아해서일까,라고 자신에게 되물었다. 너무도 그리운 나머지 그렇게 보이는 것이려니 하였다.

물론 겉으로는 화목한 가정이고 남편과도 사이가 좋아보였지만 연경은, 서서히 자신에게서 빠져나가던 현수처럼 그렇게 남편과 아이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있었다.

"나, 놔주면 안될까?"

그말에 남편은 놀라지 않았다. 한참을 연경을 바라보더니 "니가 원한다면...대신 은인 내가 키운다"라며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부부관계를 할때도 되도록이면 빨리 끝내고 싶어하는 그녀에게서 그는 이별을 감지해던 걸까?



그렇게 딸 은이를 남편에게 주고 연경은 조그만 오피스텥을 얻어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결혼전 잠시 다니던 회사에 재입사 문의를 했지만 그 자리는 이미 채워져서 곤란하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결국 그녀는 아나운서를 하는 동창 희경의 도움으로 늦은 나이에 라디오 글을 쓰게 되었다.

그렇게 간신히 생계를 해결하면서도 그녀는 한시도 현수를 잊어본적이 없다. 결혼해서 은이를 낳기까지도 그녀의 마음속엔 남편이 아닌 현수가 늘 자리했다.

그가 사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날, 연경의 삶도 막을 내린것 같았다. 이렇게 될걸 괜히 마음을 주었다는 회한이 밀려들었지만, 현수와 보낸 시간을 빼면 기억에 남을 일이 딱이 없는 20대였다.



"너 정현수 아냐?"

연경이 먼저 상대를 알아보았다. 그리고는 그의 복장부터 살펴보았다. 그는 평범한 30대 남자의 옷차림이었다. 검은 사제복 대신에.

"연경이? 서연경?"

둘은 마치 반백년이라도 헤어져있다 상봉한 것처럼 상기돼서 해후를 반겼다 도심 어느 까페에서.

그날따라 원고가 써지지 않아 방송국 작가실에서 나와 도심으로 차를 몬 연경은 처음 보는 프렌치풍 까페에 시선이 갔고 거기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커피 두어잔 하는 동안 원고를 마칠 생각으로 안으로 들어가다 정면에 앉아있는 현수를 본것이다.

"너 옷이 왜..."

라는 연경의 질문에 현수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내가 커피 살게"라고 말을 했다. 자신은 그냥 까페가 이뻐서 들어와봤노라 했다.


현수를 사귀는 동안 연경은 함께 프랑스 유학을 꿈꾼적도 있다. 현수는 건축을 공부하고 싶어했고 프랑스에 좋은 학교가 있다고도 했다. 그 일이 떠올랐다.

"너 설마..."

"응. 그만뒀어 사제"

"왜....왜 그랬어? 나 이꼴 만들어놨으면 신부님이 됐어야지!"

라는 그녀의 말에 현수는 "미안"이라고 짧게 대답햇다.

"이젠 프랑스 가니? 가서 건축 공부할거야?"라고 연경이 비아냥대자 "안그래도 알아보고 있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럴줄 알았으면 서둘러 다른 남자를 만나는게 아니었다는 후회가 연경을 덮쳐왔다.

"내 딸 은이..은이라고 하는데, 걔가 널 닮았어. 니 생각을 너무 해서 그런 애를 낳은거 같아"라는 연경의 말에 현수가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았다.

"사진좀 볼수 있어? 은이 사진?"

이라는 현수의 말에 연경은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기 전 둘이 마지막 밤을 보내던 그날이 떠올랐다.

술이 엉망으로 취해 둘은 근처 모텔로 들어갔고 거기서 동침을 했다.

남편의 아이라고 믿으려 했지만 그러기엔 은이의 눈이며 입매, 이마가 너무도 현수를 빼닮았다.

남편도 가끔 "내 아이 맞아?"라고 농을 하곤 하였다...


연경이 폰에서 은이의 사진을 내밀자 현수는 한참을 응시했다....

"보고 싶다 은이"라는 말에 연경은 더이상 부정할수도 욕을 할수도 말릴수도 없었다. 천륜을 끊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는 거 같았다.

예상보다 일찍 세상에 나온 은이...그저 조산이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충격에 연경은 어지러웠다.

"연락할게"라고 일어서는 연경에게 현수가 급히 냅킨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겨서 넘겼다.



다시 만난 현수는 프랑스에 간다고 했다. 만나자마자 또 헤어져야 한다. 이런 상황에 은이를 현수에게 보여주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연경은 여러날을 고민하다 마음을 정했다. 한번은 봐야 하는걸로.. 그리고는 전남편을 만나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진정 몰랐노라고...



아이는 생부인 현수를 넟설어하지 않았다.

현수가 마치 강아지에게 하듯 '손'하고 자기 손을 내밀자 은이는 그 작은 아기손을 현수의 손에 살짝 얹었다.

부녀의 이런 상봉을 보고 있자니 연경의 마음엔 슬픔의 강이 범람했다..

"여기 머물면 안돼? 꼭 프랑스 가야 돼? 아니 나랑, 은이랑 같이 가자 그럼"이라고 연경이 숨도 쉬지 않고 말을 내뱉자 현수는 "돌아올게 학위마치는 대로"라며 그녀를 다독였다.

현수가 마지막인양 은이를 품에 꼭 안아주는 모습을 연경은 차마 볼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현수의 출국일.

연경은 늦을세라 방송국에서 인천까지 있는대로 가속 페달을 밟았따.

"꼭 돌아오는 거지?"

"그럼...너랑 은이가 있는데..그동안 은이 잘 키워줘"

라는 말에 연경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바보"하며 현수가 연경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거기 생활 자리 잡으면 부를게. 은이랑 와"라는 말을 남기고 그는 출국했다. 그리고 12시간을 날아 파리에 도착했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부르면 꼭 오라는 말을 남기고...



그리고 보름후 연경은 현수의 부모로부터 부고를 전해들었다.

파리 외곽을 달리던 현수의 차가 마주오던 음주차와 정면 충돌해 그자리에서 즉사했노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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