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통해 오래전 인연들이 만나진다는 얘긴 들었지만 막상 민혁이 자기에게 dm을 보내온걸 보고 이슬은 한참을 망설였다. 답을 해야 할까 말까를 놓고..
그와 헤어질 즈음 그의 옆을 지키던 새 여자, 그 기억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이슬의 마음을 찢어놓았다. 민혁은 한사코 일 때문에 연락을 주고받는다지만 이슬의 촉은 달랐다.
두꺼운 안경테에 가지런히 두손을 모으고 겨울외투를 입고 있는 프로필속 그녀의 모습, 민혁과 너무도 잘 어울리던....
물론 그녀의 존재가 둘이 헤어진 전부는 아니었다.
이슬의 돈을 자기 돈인양 마구 써대던 민혁, 그래놓고도 '내가 쓰면 얼마나 쓴다고 바가지야?'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결정적인건 민혁때문에 살던 아파트를 처분해 1.5룸 외곽으로 옮길때도 '내 집 아니니 혼자 보러 다녀라'라고 하던 매몰찼던 그를 이슬은 더이상 봐줄 이유도 그럴 여력도 없었다. 이 남자와는 안되겠구나 싶었고 그렇게 서서히 이별은 다가왔고 어느날 드디어 끊어진 둘을 sns가 이어주었다는게 이슬로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결심이 서질 않아 일주일을 침묵한 다음 짧게 답을 보냈다.
'나, 잘 지내. 민혁씨도 그러길 바라고 '라고.
그리고는 한동안 혹시나 그가 댓글이라도 달까봐 이슬은 sns에 게시물을 올리지 않았다. 학교강의
때문에라도 올려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어서 그녀는 블로그를 개설해서 학생들의 발제 차례며 과제문을 내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도 내내 민혁이 마음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니가 좋아하는 그 노래, 그거 반려견 죽고 만든 노래야"라던 그....
그당시 이슬은 민혁과의 결혼을 의심치 않았고 그런 감성에 어필하던 여가수 s가 부른 애틋한 멜러디의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반려견? 몰랐네...그게 뭐 어때서"
"감정과잉 아니냐? 겨우 개새끼 한마리 죽은걸로 노래 만들고. 그걸로 돈 벌고"
그의 말이 다 틀렸다고는 할수 없어도 이슬의 감성과는 너무도 판이한 그가 그때처럼 낯설게 느껴진적도 없었다...
민혁과 사귈 당시 친구나 지인들은 한결같이 이슬에게 헤어지라고 강도높은 충고를 해대곤 했다.
민혁이 원하는건 이슬이 아니라 이슬의 돈이라고..
그렇다고 이슬이 풍족한 집안의 여식도 아니고 돈을 잘 버는 그런 타입도 아니었다. 소설 두어권이 히트치면서 어느정도의 인세를 받는 가난한 대학강사일 뿐이었다. 그런 이슬의 돈을 민혁은 시도 때도 없이 요구하곤 했다. 학과 선배였던 그는 모 변호사의 딸과 약혼했다가 이유도 알수없는 파혼을 하고 한량생활을 하고 있던 때였다. 평소 말도 잘 걸지 않던 그가 어느날 이슬에게 돈 10만원을 빌렸고 일주일후 그걸 갚는다는 명목으로 그녀를 불러냈고 돈은 갚지 않고 진탕 술을 먹여 모텔로 가서 거의 강제로 동침을 했다. 그 이후로 그는 '이슬의 남자'가 되었고 그는 딱히 미래를 약속하지도 않은채 이슬의 돈을 써댔다.
강의에도 충실하지 않아 결국 시강에서도 잘린 민혁은 자칭 '재야의 문인'을 자청하며 한량짓을 하고 다녔다.
민혁의 돈을 대느라 유산으로 받은 집까지 날리고 외곽으로 밀려난 이슬은 그에게 주소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슬이 강의하는 대학을 아는 한 민혁이 그녀를 찾아내는건 그야말로 식은죽 먹기여서 헤어져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몇번이 결별과 재회를 반복하면서 둘다 지쳐갔고 민혁은 점점 더 큰 액수의 돈을 요구했다. 그러자 이슬은 될대로 되라 식이 돼서 하마터면 이사 간 집까지 잡힐뻔 했다....그러다 어느날 그의 sns에 '좋아요'를 누른 '그녀'를 보게 되었고 이제 민혁과는 끝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굳게 자리잡혀, 그에게 주었던 신용카드의 교체발급 요청 화면을 캡처해 보내곤 관계를 정리했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발목잡혀 살수는 없어 주위에서 권하는 소개팅도 몇번 해보고 동료강사 c와 짧은 연애도 해보았지만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민혁이 자리하고 있어 제대로 되지를 않았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낸 소설이 100권도 채 팔리지 않아 그녀를 신임해온 출판사와도 결별하게 되면서 그녀는 그저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에나 몰두하기로 다짐하고는 그럭저럭 없는 돈을 쪼개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볼까?"
오랜만에 들어간 sns에는 역시 오래전에 보내온 민혁의 dm이 들어와 있었다.
이제 와서 만난다 한들 무슨 할말이 있다는 걸까? 하면서도 이슬은 그와 함께 한 순간들이 절절하게 그리워졌고 그와 결혼을 꿈꾸던 때의 어리석음이 동시에 떠올랐다. 만약 그동안 민혁이 '그녀'와 결혼이라도 했다면 지금 유부남이 돼있다는 얘긴데...그렇게까지 엮이고 싶지는 않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본 정신적, 물적 손실을 감안한다면 다시 봐서는 안될 사람이었다. 마음을 굳히기 위해 그녀는 답을 하기로 하였다.
"아니. 볼 마음 없어. 지금도, 앞으로도"
그렇게 답을 보내고 이슬은 아예 sns를 접기로 마음 먹었다.
강의가 끝나고 강의실에서 나오는 이슬 앞에 저만치서 자기를 바라보며 창에 기댄채 손을 살짝 들어보이는 민혁을 보는 순간 그녀는 숨이 멎는 느낌이었다. 이런날을 예상하지 않은건 아니었지만 그는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아무일도 없다는듯 미소를 머금고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우리가 볼일이..."
"밥한끼 먹을순 있잖아. 오늘은 내가 쏜다"라며 그가 이슬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뒤따라 나오던 학생들의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그렇게 둘은 복도를 빠져나갔다.
"그여자?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데 니가 괜히 오해해서"라며 그는 순댓국을 게걸스레 먹으며 대답했다.
"나 지금 좀 불편해. 아니 많이"
"남자 생겼냐? 그럼 친구하지 뭐 우리"
그는 자신이 과거에 그녀에게 한 짓 따위는 모두 잊은듯 너스레를 떨었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이제 이렇게 불쑥 오지 않았음 좋겠어"
"결혼은 안했지?"
그러고는 그가 남은 국물을 그릇째 들이키고는 끅 트림을 해댔다. 그러고나면 으레 이쑤시개를 가져오라고 시키던 예전의 그가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이를 쑤시는 모양을 하면서 또 같은 요구를 했다.
이슬은 화가 치밀어 먹다 만 순댓국을 그의 얼굴에라도 부어버리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여전하구나 여자 우습게 보는거..."
"아 미안..."하더니 그는 직접 카운터로 가서 이쑤시개를 가져왔다. 그것도 딱 한개.
전이나 지금이나 그는 달라진게 하나도 없었다.
자기가 낸다던 음식값은 결국 이슬이 내게 했고 그는 '또 보자'라며 유유히 사라져갔다.
저런 남자를 그토록 사랑했던 자신이 한심하기 이를데 없어 이슬은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이 흘러나오기까지 했다.
비가 밤새 내리고 아침 기온이 부쩍 내려간 그날아침, 강의시간에 늦어 종종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오는 이슬 앞을 민혁이 가로막았다.
"나 지금 바빠"하고 그를 지나치려는데
"결혼하자 우리"라며 민혁이 작심한듯 말을 했다.
둘이 사귀면서 한번도 '결혼'이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지 않던 그가 웬일인지, 무슨 속셈으로 그러는지 이슬은 감을 잡을수가 없었다. 해서 "바빠..."하며 그를 지나쳐 도망치듯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 강의를 시작했지만 그날 강의는 온통 엉망이 될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강의가 끝나고 나오던 이슬은 제일 먼저 민혁의 모습을 찾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왜 그로 인해 이제 와서 자기 가슴이 뛰는지, 그는 왜 이 시점에 난데없는 결혼이야기를 꺼낸건지, 이슬로서는 온통 혼란스럽기만 했다.
민혁이 없는 '빈 복도'를 축 처져 걸어나오는데
"할거야 안할거야!"라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가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슬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다시보니 그는 정장을 갖춰입고 있었다.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대로 식장으로 걸어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나, 혼자 살거야 평생"
"되도 않는 말 하지 말고...나 요즘 강사한다 입시학원. 너한테서 돈 타내는거 안할게"
구내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으면서 민혁이 제법 신중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
"돌아보니 예전에 너한테 너무한거 같더라구....바람까지 피고"
이슬은 자신의 촉이 맞았다는 생각에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헤어졌어 그래서?"
"보면 몰라?"
"..."
"이거 두달치 월급 모아서 준비한거야"하며 민혁이 주머니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내보였다.
"이게 뭐야?"
"뭐긴...청혼하는 거지. 너랑 결혼하려고. 하고 말거야.. 누구 있으면 정리해 빨리"하며 그는 케이스에서 반지를 꺼내 이슬의 손에 끼워주려고 하였다.
순간 이슬은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스스로도 궁금하며 자신의 영혼이 어느 블랙홀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손 줘 얼른"
하며 민혁이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이슬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나쁜자식...세상 멋대로 사는 웃긴 자식"하고는 식당을 뛰쳐나갔다.
이슬이 교정을 다 빠져나올때까지 민혁이 뒤따라 오는 느낌은 없었다.
그렇게 말하고 뛰쳐나왔어도 , 그래도 따라올줄 알았는데 민혁은 포기한걸까?
이슬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한번 더 뒤를 돌아보는데 뿌옇게 시야를 흐리는게 있었다. 첫눈이었다...그걸 보자 민혁이 미치도록 그리워 그녀는 오던길을 되돌아 여기저기를 헤맸다. 그러나 민혁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작은 교정 어디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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