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기한은 정하지 않고 한두달 정도라고 하는데"
그말에 민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피스텔에 단기 임대를 들어온다는 여자가 기한을 특정하지 못한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왜 그런대요?"
"그게...얘기를 안해요. 그냥, 한두달, 아니면 좀 더라고만"
"내가 한번 볼수 있을까요?"
그렇게 민수는 세입자가 기다리고 있는 중개업소로 향했다.
사실, 그 오피스텔은 아내의 소유물이었다. 화가였던 아내는 강이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 숲도 보이는 그곳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해준건데, 그녀와 헤어지면서 , 둘이 살던 아파트는 아내 명의로 돌려주었고 대신 자신이 오피스텔에 살까 하다 외곽 소형 아파트를 따로 얻어나갔다.
그 오피스텔은 비록 실 10평도 안되는 아담한 복층이지만, 그랟도 수요자가 매번 있어 그럭저럭 푼돈이나마 매월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요즘들어 사업도 잘 안되는 판에 그거라도 붙들고 있다는게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처음 뵙습니다"라고 민수가 인사하자 세를 들려는 여자가 소파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중개업자가 '주인''이라고 알려주자 그제서야 여자는 "네"라며 인사를 했다.
"기한을 정하지 못하신다면서요"라고 민수는 여자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그게..제가 사정이 좀 있어서"라며 여자가 답답한 어조로 답을 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연장 일주일 전에 알려주시는 걸로"
"그럴게요"하고 그녀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계약서를 썼고 보증금과 한달치 월세를 선납했다.
"입주청소 원하면"이라고 중개업자가 운을 뗐지만
"그건 제가 해드릴게요"라며 민수가 막아섰다.
그리고는 일주일후, 중개업자로부터 그녀 재희가 입주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녀에겐 무슨 사정이 있어 기한도 정하지 못하는지 그걸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었다.
그녀와 민수는 주인과 세입자라는 연결점 외엔 그 어떤 것도 이어주는 끈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한달이 채 안돼, 중개업소에서 민수에게 연락이 왔다. 세입자가 한달 더 연장을 희망한다고.
그리고는 한달치 월세가 민수의 통장에 들어왔다.
민수로서는 짧은 기간에 세입자가 바뀌는게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중개료를 매번 내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밤 민수는 난데없는 문자를 받았다.
발신인이 '이재희'로 돼있어 그는 누구지? 하고는 한참 기억을 더듬다 '아 세입자 '하며 그 문자를 찬찬이 읽었다.
"제가 아예 6개월치를 선불로 내면 어떨까요?"
이 문장을 한참 들여다보다 민수는 답을 보냈다.
"중간에 나가셔야 할수도 있는데 괜찮겠어요? "
"그렇게 되더라도 돌려달라고 하지 않을게요"라며 재희는 답을 보내왔고 곧바로 6개월치 월세를 보내왔다. 그러자 민수는 슬슬 그녀가, 그녀의 사연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이는 자기와 엇비슷해 보였고 뭔가 어두운 구석이 있는 얼굴이 눈을 끌던 여자, 이재희.
그러다 그는 고개를 젓고 집으로 가져온 일거를 계속 했다.
민수가 도심 어느 까페에서 재희를 보게 된 건 그로부터 보름여가 흘렀을때였다.
민수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았지만 재희는 모르는 눈치였다.
그는 밖이 하도 더워 그저 생과일 쥬스나 한잔 먹겠다는 마음으로 들어섰기에 입구 가까이 2인 테이블에 앉아 쥬스를 홀짝였다.
그러고 있는데 건장한 체구의 한 남자가 들어서더니 재희 앞으로 저벅저벅 다가가는게 보였다.
남편인가 하는 생각이 불쑥 민수의 머릴 스쳤지만 남편있는 여자가 따로 단기임대로 나와 살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거까지 추측을 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그래서 서둘러 쥬스를 마시고 일어나는데 재희의 테이블에서 남자의 소리가 크게 들려옸다.
"왜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해! 시간을 달라고 했잖아 시간을!"
그말에 까페안의 몇 안되는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재희의 테이블로 향했고 민수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민수와 재희의 눈이 마주쳤고 이번엔 그녀도 알아보는 눈치였다.
민수는 얼른 자리를 피해주는게 도리라고 생각돼 허겁저겁 까페를 나왔지만 재희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있는데 까페 문이 열리며 그 남자가 화가 난듯 튕겨져 나왔다. 그리고는 시차를 두고 재희가 축 저진 어깨로 문을 밀고 나왔다.
"저..."
"안녕하세요"하는 재희는 울고 있었다.
그런 재희의 뫃습에 민수는 괜히 아는 척을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그렇다고 재희를 그냥 보낼수는 없었다.
"무슨...일이신지"
"담에 뵐게요"하고 재희는 여름햇살이 뜨거운 거리를 힘없이 걸어갔다...
민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이리도 이재희라는 여자 생각이 계속 나는지...
그래서 궁리끝에 그는 재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한참의 연결음 뒤에 이루어졌다.
"그냥 한달씩 그때마다 주심 될거 같아서요.. 그래서 미리 주신 건 돌려드리려고요"
그러자 재희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제가 부담을 드렸네요. 그럼 좋으실대로"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민수는 재희의 계좌를 받아 미리 받은 금액의 월세를 되돌려주었다.
하지만 이건 구실이었을 뿐이었다.
"그럼"하고 재희가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민수는 허겁지겁 말을 만들어냈다. "제가 좀 가봐도 될까요?"
"네?"
그리고는 이틀후 민수는 퇴근후 재희가 지내고 있는 자신의 오피스텔로 차를 몰았다.
이게 맞는건가,하면서도 차는 계속 그쪽 방향으로 굴러갔다.
안에서 문을 연 재희는 처음엔 놀라는 눈치더니 길을 터주면서 들어오라고 하였다. 집주인이 중간중간 집 상태를 보는것쯤으로 생각했는지 그녀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 들어와본 재희의 방은 거의 신혼방으로 꾸며져있었다. 순간 민수의 육감은 까페안의 그 덩치 큰 남자에게로 향했다. 아마도 둘은 불륜이거나 무슨 사정이 있는 사이구나, 하는....
"혹시 제가 손봐드릴거라도. 배수는 잘 되는지요. 전등은..."하는데 간 지 오래된 led가 침침하게 느껴졌다.
"온김에 등 갈아드릴게요"하고 민수는 방을 나와 근처 전기상으로 가서 등을 사왔다.
민수가 등을 다 교체하고 의자에서 내려오는데 재희가 만원짜리 몇장을 내밀었다.
"더 드려야 하는데"
"어? 이러려고 온거 아닌데"
그러나 재희는 이미 그의 손에 지폐를 쥐어주었다.
"어어?"하다보니 어느새 그는 방에서 나와있었다. 그리고 도어락이 자동으로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며칠후 전처 윤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야근을 마치고 막 퇴근을 하려는데, 회사 앞에 와있다고 하였다.
둘은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이 헤어져선지 그저 잠시 동거를 한거 같은 느낌이어서 딱히 악의나 적의 따위는 없다 해도 무방했다.
"좋아보이네? 사랑에 빠진거처럼?"
이게 윤서의 첫마디였다.
"사랑...그거 얼마면 사니?"
라고 대답하는데 민수도 그런 자신이 우스워 픽 웃음이 나왔다.
둘이 근처 레스토랑에 들어가 함께 저녁을 먹고 디저트를 기다리는 동안 윤서가 어렵게 운을 뗐다.
"우리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
그말에 민수를 스쳐간건 엉뚱하게도 재희, 그녀였다.
생각해보자며 윤서와 헤어진 민수는 차 운전석에 앉아 한참 방향을 정하지 못하다 오피스텔로 차를 몰았다.
"이번엔 무슨 일이시죠?"
"저....할말이"
"지난번 등 교체 해주신건 제가 사례했는데요"
재희는 냉정하기까지 했다.
"궁금해서요...그때 까페에서 왜"
라는 말에 재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죄송합니다. 괜한걸 물어서"하고 민수가 돌아서는데
"잠시 커피라도?"
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차라리 구원이었다.
" 아내와 오랜 별거를 하고 있어요 상대는. 이혼하는대로 합치기로 했는데 자꾸만 미루는 거예요.."
"저도 이혼했지만, 그게 아이가 있ㅇ면 그리 쉽지가 않을 겁니다 말이 그래도"
"하게 되면 그 사람 귀책, 그러니까 저를 만난것 때문에, 아마 집이며 재산을 거의 주고 나오려는 거 같았어요 해서"
"그래서 여기다 미리 두분이 사실 거처를 마련한 거군요. 그 시점은 알수가 없는거고..."
그말엔 재희가 침묵했다. 그렇게 둘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게 민수는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괜히 물어봤다는 후회와 함께...
그리고는 자기도 생각못한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저...집을 좀 비워주셔야겠어요"
그말에 재희는 놀라는 눈치였다.
"아내와 재결합하거든요....아내가 작업실로 쓰던 곳이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거든요"
마치 무엇엔가 조종당하듯 술술 나오는 이 말에 민수 자신도 놀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렇군요 그럼 다른 데 알아볼때까지 며칠만"
그런 재희의 반응에 민수는 자기 머릴 쥐어뜯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못난 사랑이 있구나. 남자는 마음도 없는데 여자 혼자 남자와 같이 살 공간을 마련하느라 아둥바둥대는.....
민수는 자신의 집으로 차를 몰며 그런 생각을 하였다. 더 못난건, '나가달라'는 엉뚱한 말을 내뱉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사흘후 민수는 중개업자의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또 내놔요?"
"네?"
"그 아가씨 어제 나갔는데"
라는 말에 민수는 대뜸
"어디로 간다고 했나요?"
"네?"
그걸 중개업자가 알 리 없었다.
다른남자를 해바라기 하는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게 두려웠을까? 그걸 본능적으로 차단하려 했던걸까? 민수는 여러날을 혼돈속에 보내다 전처 윤서를 만났다. 편하게 친구로 지내자고. 그말에 윤서는 애매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나서 그는 중개업소로 차를 몰았다.
"팔아주세요 되도록이면 빨리"
라는 말에 중개업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컴퓨터에 매물로 입력을 하였다.
"여기 수요가 꾸준한데 왜"
"그냥 , 처분하고 싶어서요"
하고 돌아서 업소를 나오는데 비를 품은 텁텁한 바람이 훅 끼쳐왔다.
내일쯤 비가 한바탕 내리려니 하며 민수는 차 시동을 걸었다.
google p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