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뒷산을 다녀왔다.
예전엔 주말마다 가곤 해서
주말산행이라고 내 나름으로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다.
지금의 거주지 정릉과 인연을 맺게 된것은
어느날 신문 한장이었다.
그때 나는 일거리며 모든게 영등포쪽에
집중돼있고 엄마와 둘이 그쪽에 살고 있었다.
차가 없던 우리의 유일한 낙이라면
원거리를 한산한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었는데
신문 하단에 크게 미분양 아파트를
중도금없이 분양한다는 광고가 실려있었다.
어릴적 잠깐 좋아한 사람이
이곳에 살았다는 이유와
어딘가 아련한 향수를 일으키는 지명에 끌려
나는 늘 이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고
해서 우리는 1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이곳에 왔다.
그리고는 아직 삽도 안뜬 공터를 우두커니 보다가,
뒷산을 올라가보았다.
알다시피 영등포는 평지위주의 지대라
산악지대에 과연 적응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결국엔 그날로 18평을 계약하고 갔다.
당시엔 펜스가 없이 개방돼있는 뒷산에서
눈 아래 펼쳐지는 강북구 일대를 조망하면서
늦가을이면, 눈오는 겨울이면 얼마나 장관일까를 상상했다.
그리고는 세를 주고 몇년,
그런 다음 이사를 왔고
18평을 다시 세를 주고 옆동 좀 큰 평형으로
이사를 왔다.
물이 없는게 아쉬웠지만 (당시에는 개천이 있는걸 몰랐다는)
산만으로도 뿌듯했고 충분히 운동도 되었다.
여기서 엄마와 나는 단둘이
조금은 외로워도 크게 결핍을 느끼지 않고 살았다.
여기서 나는 석사과정을 마쳤고
엄마 보내드리고 7년째 나홀로 삶을 꾸려왔다.
이제 떠날즈음이 되자
더더욱 처음 이곳과 인연이 되던 순간이
아련하고 그립게 여겨진다.
그렇게 계약을 마치고는 거의 매주
토요일 근무가 끝나면 이곳으로 달려와
어느정도 건물이 올라갔는지 공사진척을 확인하고
예상보다 더디면 툴툴대곤 하였다.
그러면 엄마는 옆에서
"그렇게도 좋니 니 집이?"라는 표정으로
빙긋이 웃곤 하셨다...
내 생애 첫집이니 오죽했으랴..
그리고,
이곳을 떠난들
엄마의 그 미소가 잊히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