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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Jun 12. 2022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 <하이힐>

모녀의 애증과 공모

        

 스페인 영화 <하이힐>은 모녀간의 애증을 통속적인 내러티브를 빌어 표현한다. 거기에 포스트모던적 현란함, 도착, 음울, 그로테스크 미학이 곁들여진다. 굳이 정신분석이나 페미니즘이라는 현학적 차원의 분석을 도입하지 않아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이야기다. 자신의 성공과 애정행각을 위해 딸을 내팽개친 엄마, 그 엄마에게 원망과 그리움을 동시에 지니고 마침내 엄마의 옛애인과 결혼한 딸, 그리고는 둘 사이의 장벽인 그 남자(긴장된 관계)를 견뎌내지 못하고 살해하는 딸. 죽음 직전에 딸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는 엄마. 하지만 끝내 고해성사하면서 자신은 무죄임을 밝히려는 엄마의 인간적 ? 이기심, 이 모든 것이 알모도바르 특유의 냉소적이며 서글픈 화법으로 펼쳐진다.     

 인간은 살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뒤뚱거리며 여기저기를 서성인다. 그렇게 하루종일 서성이고 돌아오던 엄마 베키의 하이힐 소리를 들어야만 잠을 잘 수 있었던 베키는 이제 현실적으로 다가온 엄마 베키 (딸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는)의 죽음을 마주하고 비로소 엄마와 화해한다. 비로소 레베카는 베키에게서 벗어나는것 같다. 그리고는 뱃속의 아이와 에두아르도 (레딸, 도밍게스 판사)와 새 삶을 꾸려나갈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죽음은 또다른 자신의 죽음이므로, 베키가 과연 그 새 삶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살아낼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런 외피들 속에 숨어있음직한 고착, 피가학증, 전이의 문제들을 살펴보기 전에 감독인 페드로 알모도바르에 대해 약서한다.


     

  스페인은 수십년전까지만 해도 프랑코 치하에서 보수적 카톨리시즘의 수호자로서 폐쇄적 노선을 택한 나라였다. 그만큼 스페인의 ‘유럽성’은 회의적인 부분이었다. 프랑코 사후 스페인은 짧은 시간내에 놀라운 변화를 이루어냈다.          

 알모도바르의 영화 역시 이런 관점에서 자주 논의되곤 한다. 그의 영화는 화려한 색채와 기발한 유머, 모정의 양가적 서사를 즐겨 다룬다. 그만큼 욕망, 모성, 젠더에 대한 사회적, 정신분석적 접근이 빈번히 등장한다. 알모도바르는 80년대말 이후 한국에 소개되어 많은 매니아를 두고 있다. 언더그라운드 영화감독으로 일하다 1980년대부터 부상한 알모도바르는 스페인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인물로 여겨진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과거 (프랑코 통치)와 무관하다고 했으나 그는 1949년 보수적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청소년기 대부분을 프랑코 치하에서 보낸다.    


 

 알모도바르를 이해하기 위해선 ‘모비다’를 이해해야 한다.

 프랑코 사후 첫 시기를 휩쓴 무절제와 방종의 분위기가 가라앉은후, 스페인 대도시에서 의식적으로 유행한 현상을 ‘모비다 La Movida' 라고 한다. 일종의 문화운동으로 ’흥청거림‘으로 번역될수 있는데 젊은 예술가들이 벌인 언더그라운드 문화에서 유래해 대도시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번져나갔다. 새롭고 발랄한 감수성을 가진 젊은 화가들, 조각가들, 대중음악가들, 작가들, 영화인들, 사진작가들은 보수적이고 근엄한 도시 마드리드를 세계문화의 중심지로 바꾸어놓았다. 유럽에서 일어난 1960년대 말 청년문화에서 소외되었던 스페인의 젊은 세대는 프랑코의 죽음으로 야기된 정치적 해방을 기점으로 펑크락, 히피문화, 마약, 여성과 게이의 해방운동이 뒤섞인 그들 나름의 표현양식을 찾으려 하였다. 그래서 이 ’모비다‘는 늦게나마 스페인의 젊은 세대가 세계적 조류에 합류한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비다’의 주역들은 연령적으로 프랑코시대 문화주역들보다 어렸기 때문에 프랑코이즘에 덜 오염된 세대이며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경제적으로도 중산층 이하 가정 출신들이 많았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전세대 엘리트 예술가들과 미학적 단절을 시도해야했고 알모도바르가 그중 하나였다.     

 알모도바르의  <나를 묶어줘> (1990), <하이힐 Tacones Lejanos> (1991), <키카> (1993) < 내 어머니의 모든 것 > (1999)들은 80년대 그의 영화를 규정지었던 외형적 스타일, 즉, 경쾌한 상상력, 포스트모던적 부조리, 화려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 집단적이고 사회적 모습으로 그려졌던 과도한 욕망들이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영역으로 전이되고 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1949-. 스페인)




  <하이힐>이나 <키카>에서 도시는 이제 욕망이 꿈틀대는 역동적 공간이 아니라 살인과 미스터리가 얽힌 데카당스적 공간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프랑코 이후 스페인 사회가 급격하게 변모해서 유럽사회의 일원으로 완전히 편입된 시점에 이르러 더 이상 ‘위선적 공식문화’를 공격하는 것보다는, 유럽의 후기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우처럼 인간 소외, 사랑의 결핍, 가정의 붕괴 등 보다 미시적인것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보다 90년대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다시 말해 80년대 그의 영화가 가부장적이고 종교적 가정의 부작용을 보여주는데 치중했다면 90년대 영화는 사라진 가정의 부작용을 다룬다. 그래서 80년대 주인공들이 주로 가부장적이고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탓에 자유를 갈망한다면 90년대 주인공들은 주로 고아나 무관심한 부모밑에서 자라 부모의 사랑과 가정을 갈망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하이힐>의 주인공 레베카는 유명가수인 어머니와 15년간이나 떨어져 지내야 했고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어머니를 흉내내는 여장남자 가수 레딸의 공연을 보러간다. 레베카의 남편이 살해된 사건을 둘러싸고 어머니와 레베카는 다시 대립하는데 결국은 화해한다. 이처럼 90년대 영화는 고전적 휴머니즘으로 복귀하는 현상을 보인다.     



  요약하면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스페인이 급격하게 탈근대의 사회로 진화하는 과정에서의 모순과 긴장을 담아낸 사회적 기록물의 예증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페미니즘, 다문화주의, 가치의 다양성이 혼재한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지형 안에 젠더, 섹슈얼리티, 테크놀로지 (방송을 비롯한 가상, 거짓현실) 문제들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프랑코 이후의 스페인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그의 사회적 고뇌는 영화속에서 잃어버린, 부재하는 가정, 모성애, 약화되거나 전무하다시피하는 마초이즘으로 드러난다. 이런 의미에서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매우 도발적이며 저항적이고 전복적이라 할 수 있다.     

  알모도바르의 91년작 <하이힐>에 나타난  모녀간의 애증의 문제는 특히 페미적 정신분석에 대응할 때 두드러지는데, 소녀의 어머니에 대한 애증에 대해서는 프로이트를 비롯한 많은 정신분석가들이 언급했고 그만큼 소년-어머니,보다 소녀-어머니의 관계가 외디푸스적 관점에서 훨씬 복잡함이 드러났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딸 레베카는 유명가수인 엄마 베키와 15년만에 상봉하게 되는데 예전 엄마의 애인이었던 마누엘과 결혼한 상태다. 마누엘은 베키를 유혹하려하고  그런 모습에 배반감을 느낀 딸 레베카는 술집에서 여장남자 가수로 엄마(베키)의 흉내를 내는 레딸과 분장실에서 정사를 벌인다.     

 한달후 레베카의 남편 마누엘이 살해당했다는 기사가 나오고 레베카는 뉴스진행도중 자신이 죽였음을 고백한다.


 며칠후 TV에서 엄마 베키가 노래 부르다 쓰러지고 유방암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병원에서 나온 모녀는 라미요광장의 어린 베키가 살았던 그 지하방으로 간다. 임종하기 위해 찾아온 그 집에서 비로소 두 모녀는 진정으로 화해한다. 베키의 청에 따라 레베카는 창문을 열어 거리가 보이게 해주고 거기에 하이힐 신은 여자가 보인다. 그러자, 어릴 때 자신은 엄마가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하이힐 소리를 들을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면서 죽어가는 베키를 안고 흐느낀다.    


      

 <하이힐> 속의‘고착’은 다음과 같다.          

 이 영화에서 레베카는 어머니 베키에게 병적으로 집착한다. 어릴때부터 그녀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늘 어딘가로 떠나버릴것 같은, 사라져버릴것 같은 존재였고 실제로 또 그러했다. 그만큼 어머니는 늘 무책임하고 불안정한 존재였다. 그럴수록 레베카는 더욱 베키에게 집착하고 그런 집착은 결국 성장해서 결혼하고 난 뒤까지도 계속된다.

  어머니의 애인이었던 마누엘과 결혼했다는 것은 물론 그 자체로 새도매저키즘적 성격을 띄지만 어머니의 대체물로 마누엘을 선택했다는 가정도 가능하다. 이렇듯 레베카는 어릴때부터 줄곧 자기와 엄마 베키가 둘이 아닌 하나의 존재라 여기고 그 다른 한부분이 자기로부터 떨어져나가면 심한 고통을 느꼈다.

 레베카가 엄마의 연인들 (계부와 자기의 남편인 마누엘)을 모두 살해한것만 봐도 그녀의 엄마에 대한 고착은 병적이다.



  다음은' 매저키즘'인데 <하이힐>은 영화 <피아니스트>와 매우 유사한 모녀간을 상정한다. 모녀는 서로 떨어지지 못하고 둘이면서 하나인 존재로 그려진다. 베키의 노래들은 온통 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베키는 겉으로는 딸인 레베카에게 냉정하게 대한다. 그래서 딸이 다가올수록 뒷걸음치는, 마치 이성간의 연애를 암시하는 듯한 관계를 나타낸다.

 이런 엄마에게 늘 상처를 받아온 레베카가 이 영화에서 피가학증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를 취한것은 바로 엄마의 연인이었던 마누엘과의 결혼이었을 것이다. 마누엘은 전혀 모르고 한 결혼이었지만 어찌됐든 레베카로서는 결과적으로 엄마의 옛 애인을 뺏음으로써 누구보다도 엄마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쾌락을 , 그리고 그런 비정상적 관계가 주는 괴로움을 예견했기에 거기서 또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에 적용가능한 이론이 바로 바로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인데, 레베카가 마누엘을 원한것은 그 마누엘을 엄마인 베키가 사랑했기 때문이다. 즉 모방심리가 그런 상황을 부른것이다. 그 마누엘이 다시 베키를 유혹하자 레베카는 자포자기하듯 여장남자 레딸과 정사를 벌인다. 자신이 벌받음으로써 상상속에서 엄마를 벌한 셈이 되는 것이다. 



     

                                                        영화 <하이힐> 포스터



 매저키즘의 특징은 죄의식이 아니라 처벌받고자 하는 욕망이다. 매저키즘의 목적은 죄의식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여 성적 만족을 얻고자 하는데 있다. 따라서 매저키즘은 자신으로 선회하는 과정이라기보다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선회한 공격성이 다시 성화 性化되어야 가능하다. 다음, 처벌이 죄의식을 해소하거나 만족시켜 줄수는 있으나 이는 예비적 쾌감일 뿐이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매저키스트는 자신의 고통과 성적 쾌감 사이에서 미묘한 심리를 경험한다. 

  매저키즘은 수동적 상황을 암시하므로 ‘나는 처벌받고 있다. 나는 매맞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즉 레베카가 마누엘과 결혼한것은 자신을 ‘벌받고 있는 아이’로 상정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통과 쾌락을 동시에 느꼈고 들뢰즈에 의하면 , 매저키즘적 자아가 초자아에 의해 짓밟히는것은 단지 표면적인 것일 뿐이라고 한다. 즉, 연약하다고 주장하는 자아 뒤에는 무례함과 유머, 불굴의 저항과 궁극적 승리가 숨어있다는 것이 그것인데 그러기 위해 매저키스트는 환상속으로의 도피를 선택함으로써 결국 물신숭배의 형태를 취한다.          


 <하이힐>에서의 레베카는 겉으로는 결코 강한 여자가 아니다. 어릴때부터 줄곧 엄마에게 의존적인 삶을 살아온 그녀의 허약함은 남편으로 엄마의 애인(엄마의 대체물로도 해석이 가능한)을 택한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나 그런 그녀가 남자를 둘이나 죽이는 일을 감행한 것은 가히 팜므파탈적이다.

  어릴적, 자신을 상품처럼 취급한 계부에게 수면제가 든 음료를 마시게 해서 결국 차사고로 죽게 하고 남편인 마누엘은 직접 살해(총)하였다. 즉 ‘벌받고 있는 아이’의 내면은 응고된 애증의 감정, 언제든 꼭 복수하겠다는 다짐과 충동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레베카는 레딸이라는 여장남자(역시 엄마의 대체물이라 할수 있는)와 가까이 지내는, 이른바 정신적 페티시즘에 빠진다. 그리고 방송 또한 물신으로 해석가능하다.     


  매저키스트 주체는 한편으로 현실을 인식하면서도 이런 인식을 정지시켜놓으며, 또 한편으로는 이상에 집착한다. 이런 복합심리가 레베카의 결혼생활에서 잘 드러나고, 또한 엄마의 남자와 살면서 자기 남자라고 여기는 자체가 바로 부인negation의 과정인데 정신분석에서 이런 과정은 성적 쾌감과 연결되는 것으로 해석되곤 한다. 

  최대한 연기시킴으로써 오는 쾌락, 쾌락 직전에 그것을 부정하는 데서 오는 쾌락, 이런것들이 피가학증의 전형적인 사례라 하겠다. 마누엘과 결혼한 것이 레베카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었고 그것은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겪어야 했던 고통을 최대한 확장시키고 연기시킨 것의 결과였다 . 그런 마누엘을 죽임으로써 결국은 상상속의 모친살해를 한 셈이니 거기서 피가학적 쾌락은 극에 달한다.     



  다음은 ‘전이’다.

 레딸에게서 엄마를 느끼는 레베카, 수사를 맡은 도밍게스 판사의 레딸 (여장남자)로의 전이, 레베카와 마누엘의 결혼, 레즈비언들, 이 모두가 전이의 현상들이다. 이런것은 들뢰즈의 ‘되기’로 해석되고, 그것은  차이의 적극성에 대한 긍정이며 변형의 복수적이고 항구적 과정을 의미한다. 목적론적 질서나 고정된 정체성들은 복수적인 되기의 흐름flux을 위해서 폐기된다. 과정, 역동적인 상호작용, 유동적인 경계들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생기론 vitalism적 하이테크 유물론이며, 이는 들뢰즈의 사유가 후기 산업주의 가부장 문화분석에 매우 유효한것임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들뢰즈는 본질적으로 남근중심적 사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리좀 , 되기, 탈주선의 개념은 니체에서 연유해 들뢰즈를 거쳐 현대적 사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들뢰즈는 특히 일반적인 소수자-되기, 유목민-되기 혹은 분자적으로-되기를 강조한다. 소수자란 가로지르기 crossing, 혹은 궤적을 표시한다. 들뢰즈에게 있어 중심에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주변, 그 주변들의 이동이다. 이것을 체화한 것이 알모도바르의 걸작 <하이힐>이라고 정의한다면 과장된것일까.




참고자료-

영화 <하이힐> (1991. 비디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정신분석세미나팀.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서울:여이연.2003.

Rosemarie Tong 지음, 이소영 옮김. 페미니즘 사상-종합적 접근. 서울:한신문화사 1997

나지오 지음 , 표원경 옮김. 히스테리의 정신분석. 서울:백의. 2001.

로지 브라이도티 지음,박미선 옮김. 유목적 주체. 서울:여이연. 2004.

서인숙, 씨네 페미니즘의 이론과 비평. 서울:책과 길. 2003.

존힐 외 엮음, 안정효 외 옮김, 세계영화연구. 서울:현암사. 2004.

피종호 외. 유럽영화예술. 서울:한울. 2003.

씨네21엮음. 영화감독사전. 서울:한겨레 신문사. 2002.

라깡과 정신분석학회편. 우리시대의 욕망읽기-정신분석과 문화. 서울:문예출판사. 1999.

이신영.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을 통해 본 ‘몸’양식과 현대 패션의 관계에 대한 연구>. 2001. 성대 대학원 의상학과 석사논문,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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