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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Jun 09. 2022

 양영제 이야포 대학살 르포소설  <두소년>서평

한국의 드엉, 안도 이야포에 가면...

              

                    

   바다낚시로 유명한 안도 이야포를 소설 <두소년>의 작가 양영제는 "수면을 바라보는 눈이 어리어리할 정도로 몽환에 빠져들게 만드는"(p.291)공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오동도 너머 봉긋봉긋 솟아있는 작은 섬들은 그나름의 신화를 갖고 있기도 하다.  강태공들에게 인기 낚시장소인 이야포에 가면 바깥세상 따윈 어찌되든 상관없다.                 

   

전남 안도 이야포



  그러나 이곳엔  묻혀진 역사 하나가 있다. 바로, 충북 노근리 학살사건과 함께  재발굴된 한국전 당시 미군에 의한 피난민 학살 사건이  그것이다. 이사건은 1950년 8월, 안도 이야포해상에서 피난민을 태운 피난선을  미군기가 총탄을 퍼부어 150여명의 사상자를 낸 것이다.  소설 <두소년>은 이 묻혀진 역사적 비극을 철저히 추적하는 내용이다.     

 그것을 평론가 신기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시 미군은 민간인들이 인민군 보급품을 수송한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하니 이는 적과 민간인을 구분해야 할 수고로움을 덜어내주는 것”(p.285-286)이라고.  즉 미공군은 아군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고 포격한 것이다.

 이런 것을 가해자들은" 부수적 죽음 collateral death이라 부른다. 즉.‘악의 축을 공격하다보니 피할수없이 발생한 죽음이므로 내 책임은 아니야'라는 논리"  (p.288)라고 신기철은 덧붙인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전쟁범죄다. 그런데 문제는 피해자들 조차 이 사건에 대해 70년간 침묵해왔다. 왜 그럴까?

  그것은 분명 역대 반공정권이 심어놓은 레드 콤플렉스에 기인할 것이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으로 안도에 상륙한 이승만 진압군은 안도주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했다. 피해자들은 그런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려야했고 그 여파로 이야포 사건까지 침묵속에 묻혀온 것으로 추측할수 있다.그들에게 이것은 트라우마trauma이자 잊고싶은 기억memory이 되었다.



양영제 <두소년> 아르테,2022




  작가 양영제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어, 원통한 죽음과 나쁜죽음을 재 규정한다. 전자는 정치적 행위가 없었음에도 맞게 된 죽음이고 후자는 원통한 죽음이 사후에도 국가차원에서 묻어버려 그에 합당한  보상없이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라고. 이런 영혼이 떠도는 곳을 베트남에선 ‘드엉’이라고 한다. 즉 작가의 눈엔 안도 이야포가 한국의 드엉인 것이다.     


  이제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과연 이 정부는 한국인의 이런 억울한 죽음에 대한 미국측의 유감 regret아닌 사과apology를 끌어낼수 있을까.    

  

  소설속 비극의 묘사는 차라리 아름답다고 할수 있을 정도로 처절한 서정성을 띈다.

 “...그런데 산등성 너머  뻘건 불꽃이 훤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동지섣달 불꽃놀이처럼 솟구치는 불은 이야포 먼바다까지 비출 정도로 피어오르고 있었다...활활 피어오르는 불꽃은 실없이 떠있는 달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었다. 불덩어리가 된 피난 화물선 불꽃이 피난민을 태우고 가는 배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림같은 풍경이었다...솟구치는 불꽃은 피난 화물선 솟대 꼭대기에 매달려있는 태극기마저 널름널름 집어삼키며 키를 높이고 있었다. 안도 소년은 입을 헤 벌린채 이야포 바다가 온통 붉디붉은 빛으로 물들어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대한 불새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것 같아 신비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본문 p.147~149)

  이것이 바로 단순한 르포차원의 문학을 뛰어넘는 작가 양영제의 기량을 보여준다 할수 있다.     

     

  작가의 전작 <여수역>은 이미 분단문학 대표선으로 등재돼있다. <두소년>역시 그에 합당한 문학적 위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양영제는 학살을 포함한 전쟁이라는 인류 최악의 범죄를 이렇게 규정한다.  “바다에 선을 그으면 그게 전선이었다. 전선 위쪽에 있으면 적이 되는것이니 어느 섬에 있어야 전선 아래쪽인지 피난민들은 알수 없었다. 오로지 선을 긋는 미군이나 국경만 알수 있는 선이었다” (본문 p.167)      

  서구 열강들이 아프리카를 분할할 때 자를 대서 나눠 가졌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어떻게 타인의   삶의 터전을 한낱 이데올로기나 권력에 의해 파괴하고 짓밟는 일이 가능할까? 점점 역사라는 프레임에서 멀어져가는 이 시대에 우리가 분명 되짚어봐야 할 명제고 그런 의미에서라도 소설 <두소년>은 필독서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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