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삼킨 남자

by 박순영

한번도 세를 밀린적이 없는 그가 이번달은 아무 소식이 없다. 보통 오전중에 따박따박 입금이 되었는데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우영욱, 그는 자그만 출판사에 다닌다고 했고 주인인 혜자의 요구대로 절대 반려동물은 키우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담배도 피우지 않겠노라.


처음 중개업소에서 그를 보았을때 혜자는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그만 얼굴에 커다란 이목구비, 방금 면도를 한듯한 푸른빛 도는 턱과 입가의 희미한 팔자주름까지 기성을 너무나 빼다 닮은 영욱을 보면서 하마트면 그녀는 그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하지만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그와 마주앉았고 중개인이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그의 이름이 한기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우영욱이란걸 알았고 생년월일도 기성보다 한참 아래라는걸 알았다. 그렇다해도 너무나 닮았다는게 내키지를 않아 중개인이 바쁘게 서류를 메꿔가는 동안에도 이 계약을 틀어버릴 생각을 떨치지 못하였지만 결국은 우영욱이라는 남자에게 전용 8평의 복층 오피스텔을 세를 주는데 합의하였다. 월 50씩 세를 받고 두번이상의 연체나 지연시 가차없이 퇴거한다는 특약까지 넣었다.



그렇게 중개업소를 나서는 혜자의 발걸음은 저만치 파킹시켜놓은 자신의 경차가 아닌 애먼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그안에 들어서고 나서야 자신이 엉뚱한 짓을 했음을 깨달았지만 하필 가게안이 텅 비다시피 해서 할수 없이 새우버거와 제로콜라를 포장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차로 가서 운전석에 앉아 포장을 풀어 우걱우걱 먹기시작했다

"물이랑 먹어야지"

금방이라도 옆에서 기성의 목소리가 들릴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혜자곁을 떠났고 둘은 서로를 보지 않은채 한참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나중에 니 돈 내가 다 갚는다. 닦달하지 마"라며 기성은 매몰차게 등을 돌렸고 결국 그의 사업자금으로 들어간 혜자의 억대의 돈은 공중으로 날아가버렸다.



그바람에 그녀는 외곽이어도 공기좋고 교통편했던 서울 아파트를 떠나 이곳까지 밀려왔다. 모진게 목숨이어서 기성에게 당한걸 생각하면 더 살아갈 이유도 명분도 핑계도 없었지만 이제 마흔도 안된 나이에 생을 마감할 용기도 없고 해서 그녀는 적게나마 매달 수익이 보장되는 소형 오피스텔을 하나 얻었다. 그러고나니 수중에 현금은 돈 1000도 안되었고 그녀는 빠듯한 자금으로 온라인 의류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겨우 관리비정도를 낼수 있던 수입이 조금씩 요령과 속도가 생겨나면서 제법 불어났고 오피스텔 수입까지 합치자 근근이 살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월세라는게 계약때 약속한것처럼 따박따박 들어오는게 아니어서 세입자를 기한도 안돼 두번이나 교체했고 그 세번째가 영욱이었다. 그전 세입자가 강아지를 키운 탓에 문지방이며 도배,빌트인된 가구들이 다 흠집이 나 있었고 담배냄새까지 진하게 배어있어 그녀는 방이 비어있는 동안 수시로 환기를 시켜야했고 탈취제니 방향제를 들이붓다시피 했다.

해서 영욱과 계약을 할때는 아예 특약으로 반려동물, 금연이란 문구를 넣은 것이다.



전화를 해보나...혜자는 온라인 주문들어온걸 발주넣고 곰곰 생각에 잠긴다. 1년이 다 돼가도록 한번도 세를 밀린적이 없는 사람이어서 고작 하루 지연된걸 가지고 전화를 하기도 미안했다. 그러다 밤이 내리고 그때까지도 입금이 되지 않아 혜자는 영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감미로운 컬러링이 울려대고 그녀는 자신이 많이 긴장해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컬러링이 다 할때까지 영욱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일부러 피한다는 생각에 그녀는 오기가 나서 두번,세번 연거푸 전화를 런다.



그 다음날 아무리 오피스텔 벨을 눌러도 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다. 혜자는 혹시나 해서 가지고 온 도어락 마스터키를 이용해 문을 열었다. 그러자 컹컹 짖어대는 개소리, 그리고 거실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영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널브러져있는 영욱의 머리맡엔 재떨이 가득 꽁초가 담겨있다. 반려동물과 흡연은 절대 안된다고 못박았건만 이 남자 둘다를 어겼구나....

그리고는 혜자는 자는듯한 영욱을 가만 흔들어본다. 그순간, 그의 얇은 티셔츠를 뚫고 싸늘한 냉기가 그녀의 손에 전해져온다. 설마, 하고는 그의 얼굴을 살펴보니 멍이라도 든양 군데군데 퍼렇게 변해있다...

순간 혜자는 쿵, 나자빠진다.



기성이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여러번이었다. 그만큼 기성이 혜자의 삶에 낸 스크래치는 그 어떤 방법이나 대안으로도 치료나 치유가 불가능한 절대치의 고독과 상실, 배반과 아픔이었다.

그런 기성을 대신해 우영욱, 아직 서른 중반인 이 남자가 대신 죽었다 생각하니 왠지 이 주검이 부조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찰차와 앰불런스가 저만치 멀어질 즈음, 혜자는 다음에 세를 줄때는 최소한 반려동물과 흡연 금지라는 특약은 넣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기성에게서 벗어나 그를 잊을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파킹돼있는 자신의 차에 올라타 부드럽게 페달을 밟는다. 비록 중고이긴 해도 한번도 잔고장을 일으킨적 없는 자신의'애마'를 몰고 그녀는 집으로 향한다. 지나쳐가는 신도시의 불빛에 눈이 멀 지경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