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은 경민앞으로 흰봉투를 내민다. 뭐야? 라는 눈으로 그는 봉투를 가져다 열어본다.
돈뭉치가 들어있다.
"미안. 다는 못 넣었어"
수연은 커피를 홀짝이며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정말, 가는거니 시집? 나는 정 안되겠니?"
"우린 안돼. 알잖아."
"연애하다보면 이런저런 갈등있고 싸우고 헤어졌다 다시 보고 하는거지..."
"미안. 나머지는 다음에 또 줄게"라며 그녀는 커피를 남긴채 자리에서 일어난다.
신호에 걸려 경민은 차를 세운다. 그러다 자기 주머니에 쑤셔넣은 수연이 주고간 봉투를 꺼내
금액을 확인한다.수표와 5만원짜리가 뒤엉켜 금방 셈이 되지 않았지만 수연의 노모 장례식이에 자신이 이체해준 금액에 비하면 너무나 모자라는 돈이었다.
그러자, 나중에 마저 주겠노라 했던 그녀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경사도 아닌 애사에 돈을 빌려주고는 빨리 달라고 닦달을 하지 못해 경민은 자신도 힘들지만 그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미 둘은 헤어진 사인데도. 좀더 정확히 말하면 헤어진 뒤 모친상을 당한 수연이 기별을 해와서 고민끝에 건너간 돈이었다. 이미 헤어진 남자에게 돈을 가져갈 정도로 상황이 나쁘다는 것만 생각하고 건네주고 설마 받으랴 싶었지만 수연은 일부나마 돌려준것이다. 그런데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라 경민은 은근 짜증이 난다.
둘은 3년의 만남동안 자주 틀어지고 재회하고를 반복했다. 수연은 자신의 글이 어느정도 인정을 받기전까지는 결혼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무명작가였고 과민하고 지나치게 까탈스러운 그녀의 성정을 참아낸다는게 경민으로서는 쉽지가 않았다. 급기야, 그녀는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공모에서까지 떨어지자 마치 경민의 탓인양 이별을 통보하였다. 경민도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던터라 굳이 그녀를 잡지않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모친이 죽은 것이다. 거의 무연고이다시피 한 그녀는 혼자서 장례라는 버거운 짐을 져야했고 그래서, 헤어졌지만 이해하리라 여겨지는 경민에게 돈을 요구했으리라.
장례를 다 치른 그녀는 "조만간 빚 갚을게"라는 짤막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는 한달후 그녀의 sns에 우연히 들어가본 경민은 그녀에게 새남자가 생긴걸 알게되었다.
자신에게도 잘 보이지 않던 함박웃음을 수연은 남자를 마주보며 짓고 있다.
헤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미련이 없을수 없어 은근 재회를 기대한 경민의 마음은 그 한컷의 사진에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그리고는 그날밤, 잔뜩 술에 취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한참만에 '왜?'라며 잠긴 목소리로 그녀가 응대를 했다.
그렇게 그녀의 원룸 근처에서 잠깐 본 둘사이에는 냉랭하고 어색한 기류만 흘렀다.
"너 결혼하냐"
"어떻게..아...사진봤어?"
"누구야?"
"편집장"
그말에 경민은 그 결혼이 다분히 계산적이라는 생각이들어 말리고 싶었지만 경민의 말을 자르다시피 하며"나 임신"이라는 그녀의 통보에 그는 할말을 잃었다. 자신과 3년동안 관계를 가질때마다 그녀는 그리도 임신을 두려워했고 그때마다 피임약을 먹었다. 그런 그녀가 덜컥...헤어져있던 기간을 생각해도 얼마 되지도 않는 텀에 임신을 했다는 말에 그는 싸늘한 배신감을 느끼고 이제 정말 끝났다는 생각에 "잘 살아라. 그리고 남자는 다 똑같아. 내 얘기 하지 말고"라며 서둘러 까페를 나왔다.
아마도 무명의 시기가 길다보니 동앗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편집장이라는 그 남자를 택했으리라 , 경민은 그리 생각하고는 더이상 수연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3년의 시간이란게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녀 그는 거의 매일 폭음과 구토를 반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는 이제 좀 가라앉나 싶은 시기에 그녀는 장례비를 돌려준것이다. 그것도 몇푼 안되는 금액을.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그는 곰곰 생각하다 그냥 덮기로 한다. 수연의 모친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중풍을 앓아온 그 어르신의 마지막길에 자신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거라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며칠 흐르자 그의 전화 메시지 알람이 울린다. 뭐지?하고 액정을 들여다본 그는 수연이 보낸 모바일 청첩장을 보게 된다. 하....어이가 없었다. 이런것까지 알려줄 필요가...라며 그가 메시지를 지우려는데 수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저기..부탁이 좀 있어서"
"뭔데..니 청첩장은 받았는데 갈거 같진 않다"
"그건 맘대로 해...근데..한꺼번에 나중에 갚을게 조금만 더 빌려주라"
그말에 경민의 입이 자동으로 벌어진다.
"뭐라고? 돈을 더 달라고?"
"결혼도 은근 돈이 드네..그냥 몸만 오라고 하지만 그럴순 없잖아. 예단이며..그냥 축의금 많이 낸다 생각하고"
수연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경민은 전화를 끊어버린다. 살아서 이여자를 다신 볼일이 없을것이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어 찬바람이 불때쯤 그의 회사로 수연이 사전연락도 없이 불쑥 들이닥쳤다. 이혼했노라며 자기를 다시 받아달라고 했다. 그즈음 경민은 대학 선배의 소개로 병원 레지던트과정 중인 여의사를 조심스레 만나던 중이어서 당황스럽기만 했다.
"넌 내가 뭐라고 생각하니? 니 딱가리야?"
"아이가...아이가 잘못됐어 그래서.."
"너 그럼 맘에도 없다는 남자, 임신으로 발목 잡은거야?"
"잘할게..당신한테..."
그렇게 매달리는 수연을 매몰차게 돌려보내고 경민은 오랜만에 외곽으로 차를 몬다. 예전에 옆에 수연을 태우고 자주 오던 그 강가에 다다라 차를 세우고 그는 물수제비를 뜬다...
작은 돌 하나가 일으키는 파문이 결코 작지가 않다...
그리고는 그는 결심을 굳힌듯 어금니를 꽉 깨물고 차에 다시 오른다. 강에는 밤안개가 뽀얗게 피어나고 있다. 운전을 하면서 그는 그 여의사에게 전화를 건다. 같이 저녁을 먹자고. 마지막이 될 저녁을 그는 근사하게 사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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