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크

by 박순영

선희는 정말 오랜만에 해경을 만나기로 하고는 마치 남자와 데이트라도 잡힌양 가슴이 두근댄다.. 둘은 대학4년 내내 붙어다녔고 해경이 4학년때 인턴으로 먼저 입사한 뒤 아직도 학생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해경에게 용돈까지 주던 사이였다.



선희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지금의 남편 윤수를 만났다. 그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 눈이 맞았고 혼전 임신을 해서 당시 여자가 따로 있던 윤수를 어렵사리 설득해서 결국 결혼에 이르렀다.

결혼전에는 툴툴대던 윤수도 딸 정아가 태어나자 이뻐서 어쩔줄을 몰라하며 선희에게도 점차 마음을 열어갔다.

그런가하면 해경은 직장을 몇번 옮기더니 자신이 직접 회사를 차려 지금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어엿한 ceo가 돼있다.



둘 사이에 사회적 레벨 차이가 난다 해도 둘은 20대 초반, 생의 황금기를 같이 보냈기에 어쩌다 만나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 스스럼없이 농을 하고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그러다 해경이 짧은 결혼생활을 마무리하고 돌싱으로 돌아왔을때 선희는 마치 제 일인냥 안타까워했다.

"너 괜찮아 진짜?"

해경은 이른바 사기결혼을 당했다. 상대는 자칭 사업가였고 연애시절,입이 떡 벌어질만큼의 선물공세를 했고 그런 남자의 경제력을 해경은 의심하지 않고 결혼해서 허니문 베이비를 가졌다.


하지만 그러고 한달도 안돼 집에 빨간딱지가 붙게 되었고 남자의 사채빚이 수억에 달한다는 걸 알고는 아이부터 지우고 그녀는 이혼을 선택했다. 한동안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면서도 선희에게만은 간간이 연락을 하곤 했다.



그런 해경이 오랜만에 연락을 해와 저녁을 같이 하자고 한다. 선희가 설레어하는 걸 본 남편 윤수는 "해경씨 만나러 가는거 맞아? 남자 아니고?"라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하였다.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이었건 20대 초반이 시기는 황금기가 아닐까? 그 시기를 공유했다는 건 대단한 선물같다는 생각을 선희는 한다. 그리고는 해경이 좋아하는 모카케익을 사들고 택시에 오른다. 뒤에서는 아빠에게 안긴 딸 정아가 그 작고 통통하 손으로 '바이바이'를 해보인다.


비록 이혼녀가 되긴 했지만 해경은 당당히 ceo의 자리에 올랐고 선희는 딸을 둔 안정된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 이만하면 둘다 나쁘지 않게 살아낸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는 해경과 만나기로 한 에전 대학근처 레스토랑으로 서둘러 간다.



"이게 얼마만이야"

둘은 누가 먼저랄것없이 호들갑을 떨며 서로를 반겼다. 선희가 모카케익을 해경에게 내밀자 "꼬마워""라며 그녀는 혀를 꼬기까지 하였다.

둘은 보지못한 시간속에 서로에게 일어난 일들을 침을 튀겨가며 털어놓았다. 해경은 현재 홍콩에서 사업차 만난 현지 남자와 목하 열애중이라고 얘기했다.

"국제결혼?"

선희는 두눈을 크게 뜨고 설레발을 쳤고 해경은 "아직 몰라"라면서도 이미 자신의 왼쪽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살짝 문질렀다.

"축하해"라며 선희는 샴페인을 추가로 주문했다.

"근데...할 얘기가 좀 있어" 라는 해경의 말에 선희는 살짝 긴장이 된다.

"저기...한 3개월만 쓰고 돌려줄게. 1억, 안될까? 너희 가게하고 그러니까 그거 담보로 대출 받으면" 이라는 말을 해경은 사전에 연습이라도 한양 술술 내뱉는다.

1억....

둘 사이에 돈 얘기가 오간건 처음이다. 하지만 대학시절, 먼저 취업한 해경이 용돈이라며 선희에게 쥐어주던 몇십만원이 있지 않는가,..그것도 일종의 빚이라면 빚인데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온 선희다. 하지만 1억은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고 남편과 물론 상의해야 할 일이다...

"1억은 좀..."

선희가 난감해하자 해경의 얼굴은 금방 시니컬해지며 "어렵지 뭐...내가 괜한 얘길 했네"라며 뻘쭘하니 놓여있는 샴페인을 마셔댔다.



그말을 전해들은 선희의 남편 윤수는 단번에 "끊어 그 관계"라며 돈을 대출받을 마음이 전혀 없어보였다. 하지만 선희는 몇날며칠 남편을 설득해 결국 1억을 대출받아 설레는 마음으로 해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그녀는 마침 급한 상황이었다며 지금 당장 자기 계좌로 입금을 해달라고 하였다 .그렇게 해서 돈 1억은 해경의 계좌로 이체 되었다.

"3개월 뒤엔 꼭" 이라고 선희가 운을 떼자 "알았어 기집애. 염려마"라며 해경은 전화를 끊는다.


그러나 이후 해경의 전화번호는 결번으로 나오고 애써 찾아낸 그녀의 아파트에 선희가 갔을때 해경은 이미 이사하고 난 뒤였다. 그러다 가까이 지낸 동창들에게 전화를 돌리던 선희는 기함할 소식을 전해듣는다. 동창 중 다른 하나한테도 해경이 몇년전에 1억을 가져가서는 갚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서 '소송'을 언급하자 '너 차용증도 없잖아'라며 상대는 뻔뻔하게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선희는 두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상황을 파악한 남편 윤수가 아무말없이 선희를 부축해 일으켜 소파에 눕힌다. 선희는 과호흡이 와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윤수가 119에 전화를 걸려하자 선희는 그를 제지한다. 그러는데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그렇게 믿었는데...푼돈이나마 월급 받았다고 자기 손에 돈을 쥐어주던 해경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줄이야.....

그러는데 그녀의 다리 밑으로 피가 흘러나온다. 아직 남편에게조차 말하지 않은 둘째 임신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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