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배달된 택배꾸러미를 보면 수경은 이걸 어쩌나 고민에 빠진다. 요즘은 택배를 잘못받으면 그냥 문앞에 놔두는게 상책이라는 글을 어느 기사에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자칫, 원래 수신인에게 갖다주거나 오배송된 택배를 치우거나 하면 절도범으로 몰릴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잘못 배달된 물품을 원래 주인에게 갖다주어도 절도범으로 몰릴수 있는 현실이 개탄스러웠지만 그럴수도 있다는 데야...
해서 그녀는 자신의 택배도 곧잘 배달해주는 a 택배 그 기사에게 전화를 걸까 망설이다 그냥 문앞에 놓고 들어갔다. 철문은 둔탁하게 쾅 소리를 내며 닫힌다. 닫힘세기조절 장치를 손봐야 하는데 일단 그녀의 키가 닿지를 않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작년 이맘때, 상우가 손 봐준 이후 한동안 살살 닫히던 문이 언제부턴가 다시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닫힌다.
"야, 남자 없는 티를 이렇게 내냐"며 상우는 구시렁거리며 십자 드라이버를 찾았다.
"할수 있어?"라며 그녀는 드라이버를 건네고 곧바로 주방으로 가서 저녁을 준비했다. 상우 옆에서 가까이 보기라도 했으면 흉내라도 낼텐데...구축 아파트라 이런걸로 관리실에 전화라도 하면 그들은 대뜸 짜증부터 낸다. 주민이 각자 알아서 하셔야죠, 라며 가르치듯 내뱉는 여직원의 말이 여간 거슬리는게 아니다..
다음날 오후 늦게 그녀가 혹시나,하는 마음에 문을 열었을때 택배는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있다. 원래 주인은 얼마나 기다릴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괜한 친절을 베풀고도 의심을 살수있는 상황이라 그녀는 하루 더 두고 보기로 한다.
그날밤, 수경은 상우의 꿈을꾼다. 그가 부산에서 독립예술영화 강연을 하고 서울로 오던 길에 졸음운전으로 사고사 했다는게 수경은 여태 믿기지가 않는다. 하지만 상우는 서른넷의 나이에 분명 생을 마감했고 수경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던 상우의 아이도 아빠를 따라가고 말았다. 상우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그 아이...
태어나지도 못한 그 아이가 어느덧 꿈에서는 이미 너댓살이 돼서 저만치 들녘에서 바람개비를 돌린다. 상우는 수경에게 무언가 귓속말을 남기고 아이에게로 달려간다. 달려오는 상우를 보고 아이는 바람개비를 든채 상우에게 덥썩 안긴다. 마치 영화의 한장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경이 눈을 떴을땐 이미 다음날 새벽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tv를 켜놓은채 소파에서 잠이 들었던걸 알고 그녀가 부스스 일어나는 순간 문밖에서 인기척이 난다. 뭐지? 그녀는 조금은 경계하면서 도어스코프로 바깥을 내다본다. 현관 센서등이 켜지면서 바깥은 환하게 내다보인다. 그순간, 그녀는 하마트면 비명을 지를뻔한다...아니, 질렀는지도 모른다...상우였다. 분명 그가 문앞의 택배를 집어들고 복도 저멀리로 뚜벅뚜벅 걸어가는게 보였다. 그는 죽은게 아니었어....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어....그런데 왜...왜...
그녀가 슬리퍼 한짝을 떨구면서까지 상우로 보이는 그 남자를 따라잡을 즈음, 남자가 기척을 느꼈는지 멈칫한다.
"상우씨..상우씨!"
그 소리에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상우였다. 그가 웃고 있다...예의 그 가지런한 치열을 내보이며 그가 웃어보인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한다. 수경은 그리움에 , 반가움에 목이 메어 단숨에 그에게 달려간다.
이수경, 서른 두살, 영상번역가.
형사 민우는 수경이란 여자가 딱히 살해 당할 원인을 찾지 못하고 실족사한것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녀가 떨어지면서까지 꼭 껴안고 있는 저 택배 상자를 열어본후에 결론 내리기로 한다. 하지만 이미 사후경직이 일어나 그녀와 택배상자를 분리하는건 결코 쉽지가 않았다. 겨우겨우 죽은 그녀의 품에서 택배상자를 떼어내 그 안을 보자, 남자 구두 한켤레가 가지런히 들어있다. 불에 그을린 브라운색 옥스퍼드화였다.
상우의 차는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그대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고 경찰은 알려주었다 . 차는 금방 화염에 휩싸여 상우의 신원을 파악하는데만도 애를 먹었는데 이상하게도 그가 신고 있던 신발만은 약간 그을렸을뿐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며 신기해하기까지 하였다..
상우의 데뷔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된 독립영화 '나비의 집'이 의외의 성공을 거둔 기념으로 수경이 사준 그 신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