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남자

by 박순영

진서는 벌써 일곱번째 수정을 하고 있다. 초고를 보고는 환하게 웃어서 이번엔 한번쯤 수정하고 곧바로 촬영에 들어가나보다 하던게 벌써 일곱번째다...자꾸 수정을 요구하는 민우가 얄밉고 'pd도 권력이라고'라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pd가 요구하는 바에야 안할 도리가 없어 진서는 진서가 보기에는 더이상 바꿀 필요도 없는 원고를 또다시 들여다보며 소소한 대사 정도를 다시 쓰고 있다.



그러다보니 새벽이 다 되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민우가 죽어버렸으면 하는...

작가가 , 수정 몇번 시킨다는 이유로 연출자의 죽음을 바란다는게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왜 이번만은 그리도 까탈을 부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들리는 말로는 이번 작품의 결과 여부에 따라 시리즈물로 옮겨갈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민우와 진서가 처음 만난건 정말 '바위에 계란 던지기'식으로 데모 원고를 외부투고한걸 드라마국 cp가 잘 봐서 둘을 매치시켜주었을 때였다.

"단막극 우습게 보지 말아요. 이거 하다 마는 작가지망생들이 80%가 넘어요"라며 민우는 거드름을 피웠다.

진서는 이미 오랫동안 습작이니 드라마 공모에서 미끄러진 경험이 있어 이번에 안되면 포기하겠다는 심정이었고 해서 그닥 아쉬울것도 없었다. 전처럼 아이들 과외를 하면서 살아가면 된다,는 계산이 있어 민우가 요구한 이야기를 담담히 써나갔다.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런데 며칠후 민우의 전화를 받고 다시 찾은 드라마국엔 자신의 원고가 이미 대본이 돼서 책상마다 놓여있는게 눈에 띄었다. 이렇게 얼결에 '등단'이란걸 하고 2년이 흘렀다. 그동안 몇번의 미니 시리즈니 연속극 제안이 들어왔지만 결과는 번번이 낙방이었다.

담당 pd들은 이미 자기들이 생각하는 작가들이 있었지만 윗선의 추천으로 마지못해 진서를 만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는 '요즘 쓸만한 작가 누구 없나요'라는 질문까지 서슴없이 해대는 작자도 있었다.



일곱번째 수정을 마치고 진서는 원고를 송고한다. 그리고는 엘튼존의 '다니엘'을 연속재생으로 틀어놓고 쓰다만 소설을 끄적인다.

민우에게서는 더이상 연락이 없다. ok가 난 걸까...아니면 이번에도 마음에 들지 않아 아예 포기하고 다른 작가를 찾는 걸까...

그러다 그녀는 스르르 잠이 든다.

꿈에서 민우는 진서와 널따란 설원에서 토닥토닥 장난을 친다. 그는 환한 미소를 내보이며 눈빛은 밝기만 하다. 마치 이세상 사람이 아닌것 같다. 아니고서야 저렇게 맑고 투명할수가 없다.

그러다 진서는 화다닥 꿈에서 깨고 무슨 뜻일까 이꿈은...괜히 불안한 마음이 든다. 수정을 여러번 시켜서 그렇지 처음 자기와 호흡을 맞췄던 어떻게 보면 '첫사랑'같은 pd가 아닌가 민우는..

그러자, 자기를 고생시킨다고 '그가 죽었으면'하고 바랐던 자신이 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조연출 현욱의 전화다.

"저 감독님이..."

순간 진서의 머릿속에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전복된채 그안에서 절명한 민우의 모습이 스쳐간다. 너무나 또렷하게 , 예견된 죽음처럼..

"어딘가요 , 어느 병원인가요?"

그 물음에 현욱은 뜸을 들이더니

"감독님이 지금 방송국으로 오시랍니다. 캐스팅좀 같이 하자고"

그말에 진서의 온몸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간다. 그가 살아있구나..안죽었구나...



진서는 초보운전임에도 과감하게 가속 페달을 밟아댄다.

민우가 보고싶다. 조금 있으면 만나게 될 그인데도 너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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