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서점 a의 문자를 보고 경애는 적잖이 당황을 한다. 같은 문자를 동혁에게도 보냈을것 같아서다. 6개월전, 그러니까 동혁과 경애가 별탈 없이 만나던 때 경애는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전자책을 동혁에게 선물로 보낸것을 여태 다운받지 않아 유효기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얼핏 보면 근래 와서 경애가 선물한것처럼 보일수도 있으니 그렇게 되면 동혁은 경애가 둘의 끈을 잇겠다고 애면글면하는 것으로 여길수 있다. 아니 그럴것이다.
둘이 지독히도 맞지 않는 서로의 차이때문에 이별한 후에 그래도 동혁은 재결합을 위해 몇번 문자니 전화를 해왔다. 하지만 헤어짐이 처음이 아니었고 다시 만나봐야 이미 상채기로 가득한 둘의 관계가 수습되지도 않을걸 알기에 경애는 싸늘하게 거절하였다.
그러고 있는데 온라인서점a는 눈치도 없이 6개월전 일을 갖고 사달을 낸것이다. 그렇다고 동혁에게 지금 시점의 일이 아니라고 하기도 뭐하고 해서 경애는 애써 무시하고 잊으려 하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동혁이 실은 괜찮은 남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하면 결혼해도 좋은 사람임이 새삼 느껴진다. 처음부터 동혁은 진지했다. '나 결혼까지 생각하고 너 만나는거야'라고 그는 못을 박았다. 그래선지 그는 어린애들식의 '연애놀음'은 좋아하지 않았다. 식사를 해도 돈이 좀 들어도 격식이 있는 곳에 가서 먹으려 했고 어쩌다 친구 결혼식에라도 동반할라치면 자신은 물론 경애의 옷차림이며 들고갈 가방까지 조목조목 이래라 저래라 요구하였다.
처음엔 그런 동혁의 성격이 진중하고 꼼꼼하게 여겨지고 자신을 가지고놀다 버릴 그런 여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음이 든든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경애는 답답함을 느꼈고 그와의 관계가 어쩌면 수평이 아닌 수직적일수도 생각에 거부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이런 한둘의 해프닝이 모여 갈등을 일으키고 서로를 비난하고 마침내 모진말을 쏟아내고는 돌아서게 하였다.
그래도 모른다, 그에게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생각하니 경애는 가슴이 뛰었다.
동혁은 대학선배와 함께 작은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한때 코로나로 직격탁을 맞아 거의 폐업의 위기까지 갔지만 요즘은 조금씩이나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좋아하는 눈치였다.
"자긴 대학때 뭐가 제일 좋았어?"
언젠가 이런 질문을 그에게 한적이 있다.
"웃통벗고 친구들이랑 학교운동장에서 농구하던거"라며 그가 헤벌쭉 웃었다.
여간해서는 경계를 풀지 않는 그여서 경애는 그런 말을 하는 그가 신기하기까지 했고 늘 단정한 차림의 그가 윗옷을 벗고 농구에 빠져있는 모슴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앙드레 지도 <지상의 양식>읽어봤어?"
경애의 질문에 <좁은문>은 읽었는데...라며 동혁은 말끝을 흐렸다. 해서 그자리에서 경애는 온라인서점 a에 들어가 <지상의 양식>전자책을 동혁에게 선물하였다.
알람이 동혁에게도 가자, 뭐야? 하고는 신기하다는 듯이 문자를 쳐다보았다.
"나 한번도 이북 다운 받아보지 않았는데"
"어렵지 않아. 해봐. 꼭이다?"
둘은 그렇게 약속했건만 동혁은 회사일로 바쁘다, 해외 출장이 잡혀있다 등등의 핑계를 대며 경애가 선물한 그 책을 다운받지 않았다. 그러다 둘은 모종의 사건으로 또다시 헤어지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문자를 보내 서점이 보낸 문자는 무시하라고 할까 망설이는데 띵동 문자 알람이 온다. 혹시하는 심정으로 문자를 확인한 경애는 '박동혁님이 조경애님의 선물 <지상의 양식>을 다운로드 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을 확인한다. 경애는 어리둥절하고 조마조마하다. 우리는 이어지는 걸까...
솔직히 그와 헤어진 뒤 그녀의 삶은 엉망으로 흘러갔다. 여러번 교정을 봤음에도 출간된 책은 오탈자 투성이었고 그일로 편집장에게 싫은 소리를 여러번 들어야했다. 게다가 회사가 휘청거리면서 어쩌면 실업자가 될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알음알음으로 다른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터였다.
동혁이 <지상의 양식>을 다운받았다는 a서점의 문자를 여러번 되풀이 해 읽으면서 그녀는 동혁과 관련된 오만가지 상상에 빠져든다.
그러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온다. 동혁으로부터...
" 나 결혼한다. 다음달에...<지상의 양식>은 니가 보낸 결혼선물이라고 칠게"라며 동혁은 예의 다정하고 온화하면서 진중한 어조로 조심스레 말을 한다.
순간 경애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그러더니 주책맞게 눈물까지 주르룩 흘러내린다.
"축하해...빠르네 나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구..."
"선봤다. 너한테 또 대시하면 폐가 될거 같아서..."
둘 사이에는 긴 침묵이 이어지다 누가 먼저인지 기억도 안나게 전화는 끊긴다.
바깥엔 또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