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門

by 박순영

수인은 오늘을 마지막 날로 정했다. 우진을 기다리는 마지막 날로.

그에게 그녀 나름의 확실한 이별을 통보한뒤 그래도 끊어지지 않는 마음에 하루만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한게 한달째다. 그동안 우진에게서는 그 어떤 연락도 없었다. 전화도 문자도, 심지어는 가끔 보내오던 이메일도.

그렇다면 우린 완전히 끝난걸까...



우진은 '기다리라'는 말만 하였다. 어떻게든 재기해서 수인에게 진 채무를 모두 변제하고 정식으로 청혼하겠다고. 그러나 정작 수인이 우진을 본것은 한참되었고 둘은 그렇게 장거리 연애라도 하듯이 문자며 전화통화만 하면서 세월을 흘려보냈다.


"너도 참 한심하다.. 그런 작자를 여태 기다려? 그것도 헤어지자고 해놓고?"

대학동창 해인이 끌끌 혀를 찬다.

"나도 몰랐는데 너 술집 한다는게 뭔줄 알긴 알아?" 라는 말에 수인은 대학시절, 학교앞 그 호프집들을 떠올렸다.

"남편이 그러는데 남자들 회식자리 가면 여직원들 먼저 보내고 별짓 다 한다드라..."하면서 지금 우진이 지방에서 술집을 하고 있다면 더 이상 환상같은거 갖지 말라고 하였다. 다시말해, 그 주위에 널린게 여자라는 얘기였다.

"우진씨 그런 사람 아냐. 물론 아는 여자들이야 있겠지만.."하면서도 그런 해인의 언급에 수인도 어지간히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연애중인 남자도 아닌 이미 자신이 이별을 통보한 남자에게 미련이 남아 이리도 애면글면 하는 자신이 너무나 못났다. 그러나 마음이 끊어지질 않는걸 어쩌랴....그래서 기다려보기로 한것이다. 한달만.



우진은 의류사업을 꽤나 크게 하다 부도를 맞았고 이후 대학가에서 노래방을 한 2년하다 그것도 날려버렸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한참 힘들때 지인의 소개로 수인을 알게 되었고 둘은 연애라는걸 하였지만 우진의 불안정한 상황때문에 둘은 자주 다투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하였다. 그러다 우진이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지방에 친구와 술집을 낼거라는 소리를 듣고 수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돈을 자기가 대야 한다는게 너무나 명확했고 무엇보다 '술집'이라는게 싫었다. 물론 그때는 특정직업에 대한 편견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뭘 하면 어때. 먹고 살면 되지"라며 우진은 기어코 수인의 돈을 가져갔고 6개월만 쓴다는 약속을 어기고 이른바 '잠수'를 탔다. 돈도 돈이지만 그에 대한 배반감에 수인은 앓아누웠다. 그렇게 그녀의 네일샵은 결국 문을 닫게 되었고 이제는 생계마저 막막해졌다. 그래서 수인은 우진에게 가져간 돈의 일부만이라도 돌려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하였지만 어렵게 연락이 닿으면 우진은 '기다리라'고만 했다.



동창 해인으로부터 '술집'을 운영할때의 잡다한 인간관계, 특히 여자문제를 전해듣고 수인은 우진이 자신과 사귈 때도 다른 여자들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되었다.

당장의 생활비가 없다해서 돈을 건네주면 이삼일 뒤에는 또 돈이 없다는 죽는 소리를 하는게 이상해서 '뭐에 그 돈을 다 썼어?'라면 '묻지 마. 알면 다쳐'라고 그는 슬쩍 그 상황을 얼버무렸다.

그말이 그녀의 뒷통수를 잡아 끌었지만 그래도 설마 다른여자가 우진에게 있을거라는 상상은 하지도 못하였다. 그가 그런 일 없다고 했으니. 이 처지에 무슨 계집질이야,라고 했으니...그말을 오롯이 믿은 자신이 한심하다못해 죽이고 싶도록 미워졌다. 나이 마흔이 다 돼도록 남자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남자의 세계...그게 뭘까, 특히 술과 여자가 있는 남자의 세계란....



결국 그날밤까지 우진에게서는 연락이 없고 그녀는 더이상 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접기로 한다. 도대체 몇번을 이별해야 하는가...

그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그녀는 깜짝 놀라 단번에 받지를 못한다. 우진이었다. 그는 거짓말처럼 그녀 스스로 정한 데드라인 마지막 순간에 전화를 걸어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녀는 통화버튼을 누른다.

그는 각설하고 또 돈이야기를 꺼냈다. 어쩐지 다급하게 자정이 임박해 전화를 걸때는 뭔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그녀는 그간 우진에 대해 가졌던 호의적 감정들이 순식간에 냉소로 바뀜을 느낀다.

"한가지만 얘기해줘...당신, 나 하나였어?"

수인의 그 물음에 저쪽은 한참 침묵한다. 그러더니,

"여자가 몇이었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너만 바라봤으면 그걸로 된거지"라며 그는 에둘러 다른 여자들의 존재를 인정했다. 아니,이제 정말 관계가 끝났다 생각한건지 더이상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그거였어...다른 여자들이 있었어. 굶어죽는다고 해서 자기 수입의 반을 떼서 주었더니 그걸로 다른 여자들과 놀아났다는 걸 알게 된 그녀는 그가 언젠가 '남해로 낚시가자'고 했다가 바로 다음날 철회하고 친구와 가기로 했다던 그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여비를 요구했다. 그때 다른여자를 데리고 갔구나...



우진과 어떻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는지도 모르게 통화는 이미 끝나버렸고 수인은 침대위에 털퍼덕 쓰러진다. 이젠 더이상 나올 눈물도 없다. 지독히 당했다는 생각뿐이다. 눈을 깜박일 힘마저 없다....

그러는데 미장원사장이 전화를 걸어왔다.미장원 공간을 나눠 쓰자고 얼마전 수인이 제안한것에 좋다는 답을 했고 할애공간만큼의 월세는 반드시 내라고 하였다.

그말에 수인은 자신에게 생존이 남아있음을 깨닫는다. 비록 사랑의 문은 닫혔어도 삶의 문은 닫히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그녀는 당장 다음날부터 일할거라고 답한다.

그리고는어둠이 내린 창밖을 물끄러미 보다가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그러자 비를 품은 바람이 기다렸다는듯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제 더이상 환상따위는 없다. 그러니 다칠일도 그만큼 줄었다는 생각에 그녀는 한편 홀가분해진다 .어차피 썩은 사과였던 사랑이니 더이상 애면글면 할 필요도 없다, 이제는 털자, 하고 그녀는 텁텁한 밤공기를 최대한 흡입한다.




대문사진 포함 모든사진, google에서 빌려옴.

그리고 특정직업군이나 젠더등에 대한 의도적 비하나 편견조장이 아님을 명시함. 소설의 맥락에 필요했을뿐입니다.



(12월부터 강화되는 브런치규정이 이런것들에 신경쓰게 만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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