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로 남은 사랑

by 박순영

그에게 모진 메일을 보내고나니 윤희는 기분이 울적하고 개운치가 않다. 해서 그녀는 다시 그 포털에 들어가 메일발송 취소를 클릭하려 하는데 그 순간 그에게 보낸 메일이 '읽음'으로 표시된다. 이제는 어쩔수가 없구나 싶어 그녀는 그 포털을 나오고 컴을 아예 꺼버린다.


진석은 평소에도 자기 돈을 별로 쓰지 않는 타입이었다. 좀더 정확히 하면 어떻게든 얻어먹으려 하고 빌린다는 명목하에 가져가는 그런 식의 유형이었다. 처음에는 그 액수가 크지 않아 윤희는 선뜻 자기 주머니를 털었지만 그가 요구하는, 암묵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액수가 점점 늘어나 신인작가 수입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둘은 작가와 연출로 만났고 비슷한 나잇대에 둘다 혼기가 꽉 찬 터여서 주위에서 죄다 사귀라고 부추겼고 윤희도 진석도 둘다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그리고 드라마 작업이란게 붙어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그러지 말라고 해도 미운정 고운정이 들고 진석은 촬영 현장에도 나와보라고 해서 윤희는 가끔은 현장수정까지도 해야 했다. 그렇게 첫번 작품을 마치고 둘은 강원도로 향했고 나머지 스텝들은 그 다음날 합류하기로 하였다.


그둘이 머문곳은 유명 상조회사에서 운영하는 '콘도'형식의 레지던스였고 둘이 한방을 쓴다는게 알려지면 곤란하다며 ,걸려온 조연출의 전화에 진석은 '작가님은 옆방에 계시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참, 저 칫솔이 없는데"라면서 잠자리에 들 무렵 윤희가 난감해했다. 그때만 해도 1층에 내력가면 24시 편의점이 있다는걸 몰랐기 때문이다. 그말에 진석은 "이거 쓰세요"라며 자기의 새 챗솔을 건넸다. "감독님은.."하자 "됐어요"라며 그는 자기 방에 들어가서 이불을 폈다.

내려오는 길에 윤희는 자신은 침대가 아니면 잠을 못잔다고 했기 때문일까, 그는 알아서 온돌방을 자기 방으로 정했다.



그렇게 진석으로부터 받은 칫솔로 양치를 하고 윤희는 샤워까지 마친후 침대방에 들어가 잠에 골아 떨어졌다.그러고는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나오는데 현관문이 열리면서 칫솔을 사온 진석과 부딪쳤다.

"어머, 여기 가게도 있나봐요?"라는 말에 진석은 씩 웃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윤희는 새삼 이 상황이 조금은 어색하다고 느꼈다. 그래도 일때문에 알게 된 사인데 둘만의 여행을 왔다는게..물론 그 다음날 다른 이들이 오기로 돼있긴 했지만.

해서 윤희는 양치를 마치고 나오는 진석을 기다렸다가 "저는 옆방 쓰는게 좋을거 같아요. 내일 스텝들이 보기라도 하면" 이라고 하자 진석은 "벌써 다들 알고 있어요. 눈치가 백단인데 "라며 별일 아니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칫솔과 함께 사온 캔맥주와 안줏거리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한잔 하죠"라며 술을 먹자고 하였다. 새벽술....조금 과하다 싶었지만 한캔 정도야 어떠랴, 하고 윤희는 그에 응했고그 한캔은 두캔이 되고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는 깨어나니 둘이 서로 부둥켜 안고 누워 있었다. 진석은 코까지 골며 자고 있다. 첫만남부터 서로에게 끌렸다면 끌린 사이라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려니 하고 윤희는 그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그러나 진석은 이후로 이따금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술을 먹은 날은 대리비부터 많게는 오피스텔 월세까지. 방송국 pd정도 되면 돈을 어느정도 번다고 여기고 있던 윤희는 그런 그의 요구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만큼 자신을 가깝게 여긴다는 뜻일까, 아니면 만만하게 본다는걸까, 그 둘 사이에서 그녀는 갈팡거리고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진석은 미니시리즈 파트로 옮겨가고 윤희도 그와 함께 작업을 하기로 돼있었지만 진석은 단막극을 하던때와는 달리 원고 타박이 심해졌고 급기야는 서로 다투고 작가 교체까지 해버렸다. 이번 미니 16부를 써서 받는 돈으로 따로 할일이 있었던 윤희는 난감해졌고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한번 pd와 틀어진 작가는 웬만해서는 쓰지 않는게 제작국내의 불뮨율이어서 선뜻 그녀에게 작품을 제안하는 pd가 없었고 간혹 연락이 와도 막상 나가보면 일종의 '소스'를 얻기 위한 작업일때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생활비조차 빠듯해지고 다른 수가 없다고 생각한 윤희는 진석에게 힘들게 연락을했다.

"내가 좀 급한데요. 빌려간 돈좀..."

"그거 안 떼먹어요. 내가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도 아니고.."라며 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얼마 안가 그가 교양국의 구성작가와 목하 연애중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실연의 쓰라림에 윤희는 더더욱 힘들었다.


그녀는 방송일을 접기로 하고 학원쪽을 알아보기로 하였고 어렵게 한군데 논술강사로 취직이 되었다. 빠듯한 월급으로 근근이 버텨가는 그녀에게 어느날밤 진석이 전화를 걸어왔다. 돈 1000이 필요하다고.

그말에 윤희는 발끈 화가 난다. 연애는 다른 여자와 하고 돈은 내게서 가져간다는 생각에 그녀는 나오는대로 생각나는대로 퍼붓고 전화를 끊는다. 그러자 이번엔 문자로 그가 같은 내용을 보내온다. 꼭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관계는 다시 생각해보자는 유화적인 제스쳐를 취했다.

그의 진심을 알수 없던 그녀는 일단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도 보지 않고, 그것도 헤어진 뒤에 다시 돈을 요구하는 입장이면 최소한 얼굴은 보여줘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다시 만난 진석은 윤희와 마주 앉아 있다는게 여간 불편해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불편한 사람한테 돈 빌리면 더 불편하지 않아요?"라며 윤희가 볼멘 소리를 하자 그가 뜻모를 한숨을 길게 내쉰다. 그리고는 빤히 윤희를 보더니 "우리, 다시 봅시다"라고 하였다.


그렇게 둘은 재회를, 재결합을 한것같았고 윤희는 어렵게 돈 1000을 마련해 진석에게 건넸다. 하지만 그는 돈을 받아간뒤 태도가 돌변해 그녀의 연락을 받지 않았고 자신도 연락해오지 않았다. 우린 뭔가...나는 또 당한건가, 하는 자괴감이 그녀 안에 깊숙이 박힐때쯤 평소 눈인사정도만 하고 지내던 다른 pd가 연락을 해와서 그녀는 뜻하지 않게 다시 방송국을 드나들게 되었다.

엘리베이터안에서 마주친 진석의 옆에는 한참 어려보이는 어떤 여자가 밀착해서 서있다. 순간 윤희는 그가 자신을 '농락'했다는 생각이 들어 두 주먹을 움켜쥐지만 진석은 그녀를 아예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 일이 잘 풀릴리가 없어 결국 다른 pd와 하기로 했던 4부작 특집극도 틀어져버리고 이제 더는 기회가 없음을 깨닫고 그녀는 방송일을 완전히 청산했다. 하지만 돈은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진석에게 연락을 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는 그녀를 피하기만 하였다.

해서 그녀는 그와 작업할때 원고를 보내던 그 이메일주소로 메일을 보내 자기 돈을 돌려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사흘만에야 열어본 진석은 '갚아요. 안 떼먹어요'라고 써보낸다.

그렇게 한달여를 기다려도 그녀의 통장엔 진석의 1원도 입금되지 않았다.. 해서 그녀는 다시 이메일을 보내서 '나도 급하니 빨리좀 넣어달라'고 애원조로 말하자 '구질스럽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거 몇푼된다고'라며 진석은 이번엔 그녀를 모욕하기까지 하였다.

해서 그녀는 '모월모시까지 입금이 안되면 소를 걸겠다'고 으름장을 놔야 했고 그걸 보내놓고 발송취소를 해야 하나 망설이는 찰나 그가 메일을 열어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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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의 메일은 의식적으로 더디 열던 진석이 그날은 빨리열었고 결국 그도 '소송'을 언급한 내용을 다 읽고 만다. 윤희는 어차피 이리 된거 악착같이 자기 돈을 받아내리라 마음먹는다. 사랑은 잃었어도 돈만은, 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러는데 진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지금좀 보자고 한다. 시간을 보니 한밤중이다. 자정이 가까운...

진석은 윤희가 세들어사는 연립 앞으로 오겠다고 한다.

"돈 주는 건가요?"

윤희는 또다시 바보가 되기 싫어 노골적으로 물어본다

"일단 보죠. 만나서 얘기합시다"라며 그가 애매하게 대답을 해온다.


그러나 그날밤 진석은 오지 않았고 윤희는 한시간 이상을 밖에서 덜덜 떨며 기다려야 했다. 그가 안온다는 확신이 들자 그녀는 자기 방으로 돌아왔고 일단 씻어야겠다는 생각에 보일러 온수버튼을 누르고 물이 덥혀지길 기다린다...

그때 전화가 걸려온다. 직감적으로 진석임을 알아차리고 그녀가 통화버튼을 누르려는데 전화가 끊긴다. 그녀는 재빨리 콜백을 하지만 이미 저쪽이 자동응답으로 돌려놓은 뒤였다. '전화기가 꺼져있어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간다'는 내용이다. 이어서 삐, 하고 녹음하라는 신호가 들려온다. 그녀는 그냥 종료버튼을 누르려다 멈칫한다. 그리고는 마지막 용기와 힘을 다해 녹음을 한다. 윤희를 처음 픽업해준cp에게 그간 둘의 일을 다 털어놓겠다고 한다. 녹음을 마치고도 그녀는 저장 버튼을 누르지 못해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누른다. 그리고는 샤워에 들어간다. 알맞게 덥혀진 온수에 진석이 보인 냉담함과 배반, 배신, 갈취의 기억들이 조금은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다. cp에게 평 pd들이 찍히면 어떻게 된다는걸 아는 이상 무답으로 나올수는 없으리라...


욕실에서 나온 그녀가 힐끔 전화기를 일별하자 무언가 빨갛게 알람이 들어와있다. 폰을 집어들어 가까이보자 은행 앱 알람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급히 앱을 열자, 진석이 100만원을 입금한 내역이 뜬다.

그 많은 돈을 가져가놓고 달랑 돈 100만 입금한게 괘씸하지만 , 이거라도 받았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그리고는 한동안 꺼내보지 않은 그 '팔찌'를 꺼내본다. 둘이 처음 강원도로 갔을때 기념품이라며 진석이 만원주고 사준 도금 팔찌였다. "빼지 말아요"라며 그가 직접 팔목에 채워줬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그도 내게 쓴돈이 있었어,라는 생각이 들며 울컥 하는 심정이 된다.. 그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그일까? 그녀가 전화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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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직업이나 이름등은 모두 가공의 것이고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사진은 모두 구글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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