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의 세레나데

by 박순영

아무래도 자기가 바깥일을 하는 동안 누군가 하나 정도는 사무실을 지키고 전화도 받고 간단한 경리업무도 봐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기현은 구인광고를 냈다. 그러자 띵동 금세 알람이 울렸다. 광고를 본 구직자가 자신의 이력을 간단한 메모한 내용이었다. 4년제 대학을 나온 35세 여자고 싱글이라고 적혀있다. 나이가 마음에 좀 걸린 기현은 좀더 기다려보기로 하지만 월 180이라고 내건 급여조건에 젊은 층은 그닥 흥미를 보이지 않는 느낌이다. 해서 그날 퇴근 무렵이 다 돼서 그는 문자를 보내온 그녀에게 답문을 보낸다. 내일 면접을 보고 싶다고.



그녀는 약속한 바로 그시간에 사무실 문을 똑똑 노크했다. 기현은 ,시간 하나는 정확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얼핏 보기에 나이 마흔도 넘어보이는 초로의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아...속으로 탄식이 흘러나왔지만 기현은 애써 내색을 않고 커피 머신에서 커피를 한잔 뽑아 그녀에게 내민다.

그렇게 정작 마주 앉자 기현은 자신이 뭔가 실수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하루이틀 더 기다려보든가 월 200이라고 다시 내놓을걸. 그러면 젊은층이 어플라이를 할수도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있는데 여자가 육필로 써온 종이 이력서를 슬쩍 내민다. 나이는 35, 경력무, 컴퓨터 활용능력 하, 영어 능력 하, 라고 쓰여있다. 그리고 이름은 김혜경이고 서울에 살고 있었다.

기현은 나이가 많으면 경력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고 요즘 필수인 컴퓨터와 영어능력도 없다는 생각에 어서 빨리 이 면접을 끝내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그러자 혜경은 그런 기현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이 "저, 청소는 잘합니다"라고 하였다. 청소라고 딱히 할것도 없던 기현은 허허, 헛웃음이 새어나온다.

"저희 사무실은 뭐.. 크지도 않고 가끔 환기만 시키고 청소는 하루걸러 해주시면 됩니다. 보이시죠? 저걸로 그냥."하며 무선청소기를 가리켰다. 그러자 혜경은 "어머, 청소기가 다 있네요. "라며 신기해하였다.

나이가 있고 경력이 없고 비록 컴퓨터와 영어가 딸려도 외모라도 괜찮으면 봐줄 정도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겨우 추녀만 면한 정도다. 하지만 요즘 '용모단정한 자'라고 광고를 냈다가는 쇠고랑 차기 딱 좋은데다 그런 시대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려 해도 영 내키지가 않는다.

그리고는 급여를 올려 다시 광고를 내기로 결심하고 혜경에게는 다시 연락하겠노라 하고 그녀를 돌려본다.


그러나 사흘을 더 기다려도 구직자가 나타나지 않자 그는 책상 서랍에 쑤셔박은 혜경의 이력서를 다시 꺼낸다. 바로 전날 거기위에 커피잔을 놓았던지라 그부분이 누렇게 변색돼있다. 그걸 보자 괜히 그녀에게 미안해져, 뭐 어때...청소라도 잘하면 되는거고, 은행 심부름 정도 잘하면 되지 싶다. 해서 그는 일단 한달만 써보자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혜경은 다음날 그나름 신경 쓴 매무새로 회사에 들어선다. 그날은 마침 외부 일정이 늦게 잡혀 기현이 사무실에 일찍 나와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있을때였다.

"안녕하세요"라며 혜경은 쑥스러운지 먼발치에서 꾸벅 인사를 하였다.

"아, 오셨군요"하고 기현은 그녀가 쓸 책상을 가리킨다. 그러자 혜경은 다소곳이 그곳에 가서 앉는다. 그리고는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두리번 거리기 시작한다.

차라리 기현에게 와서 "뭐부터 할까요"라고 물으면 좋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정도의 숫기마저도 없었다. 그러자. 괜히 뽑았다는 생각이 그를 스쳐간다.

"저, 외근 나가야 하는데 혹시 팩스 오면 간단히 답해서 보내심 됩니다"라고 하자

"저, 팩스 다룰줄 모르는데"라며 그녀가 잔뜩 겁을 먹는 눈치다.

아...하고 또 탄식이 흘러나오는걸 기현은 간신히 참고 팩스사용법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녀는 그 간단한 것도 한번에 익히지 못하고 몇번을 물어본다. 그러면서 "요즘 다 온라인으로 하지 누가.."라고까지 한다.

"여보세요!"라고 기현이 언성을 높이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한다.

이 여자 뭐야...하고는 "죄송합니다. 아직 관공서나 회사 업무에는 팩스 많이 씁니다"라고 나직이 다시 말하자 그녀는 눈물을 훔치며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부족해서. 그냥 가겠습니다"하고는 책상에 놓은 자기 가방을 집으려는 시늉을 한다.

그순간 기현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팔을 붙잡고는 무섭게 노려본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맻혀온다.



"실은 한번 결혼했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계속 바람을 펴서 결국 헤어졌어요"라며 그녀가 그 건물 1층 까페에 마주 앉자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기현에게 털어놓는다.

하기사 , 이혼력까지 이력서에 쓸 필요는 없고 요즘 세상에 그런거야..하고 기현은 조금전 자신이 험악하게 그녀를 대한게 은근 미안해진다.

"그래도 생활비는 버셔야죠. 이왕 오늘 출근하셨으니 일주일이라도 근무해보시고 그때까지도 적응이 안되면..."이라고 하자 그녀의 젖은 눈이 반짝 빛을 발한다. 하고는 "일주일만 일해도 월급 주나요?"라는 질문을 한다. 기현은 또다시 뒷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돼서 "드리면 주급이 되겠죠"라고 말한다. "180을 4로 나눈만큼을 드리게 되겠죠? ."했더니 그녀는 다시 시무룩해진다.


외근을 나와 거래처 사람과 미팅을 하는 동안도 기현은 이번 채용이 완전 실패였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장의 대안이 없어 일단은 정말 한 일주일간만 두고보기로 한다. 그리고는 오후 4시무렵,사무실로 전화를 걸자 혜경은 한참 울린 후에야 전화를 받아 "여보세요"라고 말한다.

해서 기현은 "전화받으실때는 <맑음영상>입니다"라고 말하라고 알려주면서 이런거까지 내가 알려줘야 하나 하는 생각에 짜증이 치미는걸 간신히 참고 "첫날이니 그만 퇴근하시죠"라고 한다. 그러자 혜경은 "꼬맙습니다"하더니 먼저 전화를 끊어버린다.


아무리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았다 해도 이건 기본도 안돼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에 기현은 당장 다시 구인광고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날 기현이 외근을 먼저 하고 사무실에 들어섰을땐 혜경이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평소에도 그 소리를 싫어한 기현은 짜증이 치민다.

"청소는 출근하면 곧바로 해주세요"라고 하자" 죄송해요"하며 상대는 금방 울상이 된다.

기현이 더는 자신의 감정을 속일 필요를 느끼지 못해 휴, 하고 한숨을 내쉬자, "커피 드릴까요?"라고 조심스레 물어온다. 지가 그냥 갖다주면 되는걸, 하는 생각에 그는 "제가 할게요" 하고는 커피 머신에서 한잔을 뽑는데 "저도 한잔 부탁드려요"라고 그녀가 바로 뒤에서 말한다. 이건 뭐야? 하고 돌아보자 그녀는 순진무구한 웃음을 지어보이고 있다. 웃는 얼굴에 침뱉기도 뭐하고...


다음날 출근 전 밖에서 회사로 전화를 걸자 "<맑음영상>입니다"라며 혜경은 기현이 가르쳐준 멘트를 날린다. 그는 왠지 피식 웃음이 나오는걸 꾹 참고 "팩스 온거 없나요?"했더니 "잠시만요"하고 확인하는 눈치다. "그런데 사장님...영어로 왔네요"라고 그녀가 잔뜩 겁먹은 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이탈리아 거래처예요. "라고 하자 "이거 제가 답장해야 돼요 영언데...?"라고 물어온다. 그말에 기현은 전화에 대고 냅다 소리를 지른다. "당신, 이러면서 돈벌겠다고 나오는거야?"라고. 그러자 저쪽이 한참 말을 안한다. 그렇게 꽤 긴 침묵이 오고가는데 "저 오늘 그만 둘게요.. 그래도 청소는 해놓고 갈게요. 돈은 안주셔도 됩니다"라고 잔뜩 풀이 죽은 그러나 의미는 분명한 소리로 그녀가 말한다.

"오너한테 싫은 소리좀 들었다고 그렇게 무책임하게 그만두는게 어딨어요"라는데 통화 종료버튼 소리가 들려온다. 이여자 뭐야 도대체...라는 생각에 그날은 바깥일도 제대로 되지를 않는다.



다음날 일찍 기현은 혜경이 정말 그만뒀나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가에 일찍 사무실에 들어선다. 예상대로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순간,그는 찌릿한 무엇이 자신의 가슴을 스치고 가는걸 느낀다..그녀에게 마음 한번 준적도 없는데 ...그리고는 안쪽 자신의 책상으로 향하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혜경은 기현의 책상정리를 깔끔해 해놓은게 보인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그녀는 책상을 정리했고 걸레질까지 했는지 먼지 한톨 없다.순간 기현은 맥없이 털썩 자기의자로 쓰러지듯 앉는다. 아...하고 예의 탄식인지 한숨인지 모를 그 소리가 새어나온다...

그러다 컴퓨터를 켜고는 새로이 구인광고를 작성하는데 저만치 비어있는 그녀의 책상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광고문안을 작성하지 못하고 그녀의 빈 책상으로 간다. 그리고는 무심코 책상 서랍 하나를 열어보자 a4 종이 여러장이 겹쳐져 있는게 보인다. 꺼내서 보니 그녀가 아마도 이탈리아에서 온 팩스 답장을 연습한 내용같다. 그녀는 서툰 영어로 제법 긴 문장을 몇번씩이나 고쳐가면 써두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어 답은 하지 못한듯 하다...그걸 보자, 그는 코끝이 찡해온다. 이혼녀에 서른중반, 외모도 그저그런, 경력없고 외국어 기본도 안돼있는 여자,라는게 더더욱 그의 마음을 시리게 한다.



원룸문을 연 혜경은 바깥에, 것도 다늦은 밤에 기현이 서있는걸 보고는 어쩔줄을 모른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들어오셔서 커피 한잔"하는데 기현이 불쑥 종이 하나를 내민다. 그걸 본 혜경은 회사근처 영어학원 수강증임을 알아차린다. 그리고는 얼굴이 벌게진다.

"그깟일로, 내가 뭐라고 좀 했다고 회사를, 밥줄을 때려치는게 어딨어요? 그렇게 물러서 어떻게 살아요?"라며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말에 혜경은 "죄송...합니다"라며 또 울먹거린다.

"당신 좀 있음 마흔이야. 꺼떡하면 울기나 하고.사회에선 그런거 안먹혀요. 지지리 궁상짓좀 하지 말아요"라고 톤을 조금 낮춰 이야기한다. 그러자 혜경이 눈가를 꾹꾹 누른다.

"내일 정시에 출근해요. 안 나오면 정말 해고야!"라고 말하고 기현은 그대로 돌아서 계단을 내려간다. "저기.."하던 혜경의 웃음에 안도와 근심의 빛이 동시에 어린다.


원룸 건물을 나온 기현은 저만치 파킹 돼있는 자기 차로 가면서 "현서"라고 중얼거린다...늘 흐트러진 머리에 남녀간의 연애심리에도 무지했던, 나이도 자기보다 두살많았던 그녀, 그녀 눈밑에 퍼져있던 기미며 잡티가 떠오른다. 기초화장조차 제대로 못하던..그런걸로 허구한날 지적을 해대고 결국에는 헤어졌던게 이 순간 짠하게 다가온다. 그게 뭐라고...그런게 뭐 대수라고...하면서 그는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그리고 출발전에 그가 4층 혜경의 방을 올려다보자, 그녀가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고 있다...아, 저 여자, 정말 못말린다,라며 혀를 차면서 그는 골목길을 빠르게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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