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그리고 여행의 기록
극P의 여행
오늘로 여행 20일 차. 열흘 전에 필름 카메라를 해먹었다. 서핑을 마치고 나와 화산과 사막을 배경으로 필름 사진을 남겨보겠다고 차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타이머로 한 장 남겼다가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출발하면서 거기에 올려둔 것을 까맣게 잊은 것.(어째서 ‘이것저것’보다 먼저 내려두지 않았느냐고 묻지 말아 달라) 나름 열흘 동안 좋은 장면들을 양껏 담았는데 모조리 다 날려먹은 게 너무 아깝고, 좋은 카메라를 아빠에게 깔끔하게 물려받았기 때문에 나도 누군가에게 물려줘서 유서 깊은 카메라로 만들고 싶었던 마음이 무색하고, 아빠에게 미안하고, 이 여행의 기록을 남기려던 방식에 차질이 생긴 것에 좌절했다. 그렇지만 뭐. 여행이란 원래 이런 것이었음을. 무슨 일이 언제 어떻게 벌어질지 모른다. 크고 작은 사고들이 계속해서 잇따른다. 여행자 보험에 들지 않았다는 걸 비행기가 뜨는 동시에 떠올렸고(출국장 게이트 앞에서 들어야지 하고 계획한 것 자체가 틀려먹었다는 걸 안다), 따라서 ‘이번 여행은 정신 똑바로 차리자, 침착하자, 어떤 사고도 치지 않으리라!’ 꽤나 반복해서 결심하는 비행이었는데, 그 결심이 또 무색하게 경유지인 헬싱키에 착륙하면서 유심을 갈아 끼우다가 거짓말처럼 바로 한국 유심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기내 바닥이 하필 유심과 색깔이 같을 일은 또 뭐람…) 어떤 중요한 연락을 몇 개 기다리고 있었는데 초장부터 아예 단념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업무 모드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좋아.”
이전까지만 해도 여행 중 가장 크게 아찔했던 사고는 마라케시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카사블랑카로 가는 기차를 놓쳐서 150유로를 내고 영어가 1도 안 통하는 현지 기사를 구해 두 시간 남짓 사막을 달린 그 일 같은데….라고 쓰고 보니 떠오르는 사건들이 많군. 그래도 대부분이 그에 거진 준하는 수준이었다면, 이번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저지른 것은 그 모든 충동과 실수, 사고를 뛰어넘어 가장 충동적이고 타격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계획을 하도 직전에 짜다 보니 가일정이라는 게 없이, 생각이 드는 대로 일단 예약했다가 뒤엎게 되는 과정에서 취소와 재예약을 거듭했고, 그러다 결국에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두 개를 끊어버린 것이다. 수수료 등등에 최소 백만 원은 쓴 것 같지만 정확히 따져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결정은 여행 일주일 차가 되던 시점에 내렸기 때문에 그 정도의 추가 비용은 필연이었다. 앞으로도 정확한 금액 따위 계속 모를 예정이다.
이에 가장 크게 작용한 요소는 포르투갈 남부를 가려고 했던 기간에 그보다 더 남쪽에 있는 스페인령의 한 섬으로 가기를 결심한 것과,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는데도 계속해서 신경 쓰이던 부산영화제에 일말의 미련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그 섬에 가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았고 부산영화제에 가면 참담할 것 같았다. 내 마음의 안위를 가장 우선시하고 싶었다. 에라 모르겠다, 더 있자, 가자, 신경 쓰지 말자! 하게 되었다. 실수일 수도 사고일 수도 사건일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이 가장 중요한 여행이니까.. 그래도 된다 생각해본다. 섣부른 결정들을, 실수하는 나를, 제멋대로의 마음을 미워하지 않아도 괜찮다.
불운들, 그에 힘입은 행운들
운이 따르는 여행은 처음부터 그걸 알아차리게 되어있다. 이를테면 이코노미 좌석 오버부킹으로 인해 공항에서 비즈니스 좌석으로 업그레이드를 받는다던지, 도착지에서 원래는 국경일 휴무인데 때마침 가게에 정리를 하러 나온 셰프가 무작정 찾아온 손님에게 마음이 움직여 일대일 레스토랑을 열어준다던지, 가족 친지 모임에 초대받기도 하고, 현지인에게 길을 물어봤을 뿐인데 통하지 않는 영어 때문에 그의 이 친구 저 친구가 동원되다가 다 함께 불꽃놀이를 보러 가게 된다던지… 여행하면서 만난 크고 작은 행운들이 끝없이 떠오르는 건 충만하게 생을 살아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이번 여행은 운이 딱히 좋지는 않다는 걸 처음부터 알았다. 나의 실수로 인한 불운들도 있었지만, 경유지에서부터 비가 내렸다거나 파도가 내내 좋다가 내가 바다에 가는 일정에만 너무 크거나 너무 작다던가, 결정적으로는 일 년에 비가 사흘 오는 사막 지역에 십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태풍을 정확히 맞는다거나, 이 모든 기상의 불운이 이번 여행에 다 함께 있었다. 날씨만 그랬을까, 아니다. 예약하려고 했던 티켓들을 간발의 차이로 거의 대부분 놓쳤고, 찾아간 각종 장소에서 급작스러운 휴무, 공지되지 않은 영업시간 변경, 공사 중, 담당자의 휴가 등의 상황을 맞이했다. 어제 일몰을 보기 위해 영업시간을 확인하고 찾아간 한 정원 입구에서 10월부터는 일곱 시에 문을 닫는다고 안내를 들었을 때는 그게 아주 당연한 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지만 진짜 세상이 이제 나를 아예 등지고 돌아가는구나 싶을 정도로 상황은 연속적이고 또 연쇄적이었다. 정원으로 걸어가던 중에 일전에 공석을 문의해둔 요가원에서 이제야 문의를 확인했다며 수련을 하러 오라고 했는데 (그리고 뛰어가면 시간도 얼추 맞출 수도 있었는데) 나는 정원으로 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그 결과 정원도 요가도 다 놓친 격이 됐으므로. 불운에 이미 익숙해져 아무렇지 않았지만, 만약 크게 낙담해버렸다면 어땠을까. 그게 정말 최선이었느냐의 여부에 대해 자문하게 됐을 거다. 나의 선택과 결과가 필연이 아닌 경우, 어느 쪽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판단은 의미가 없는데도 말이다. 우연과 필연이 반반으로 뒤섞여있는 세상을 굳이 더 힘들게, 혹은 억지로 편한 척 살 필요가 없다. 이건 필연이었구나, 이건 우연이었구나 정도를 가르면 된다.
스트레스는 다른 곳에서 왔다. 나의 즉흥에 내가 고통받았다. 나란 애는 뭐가 그리 중하길래 어째서 그렇게 일정을 계속해서 뒤엎었나. 동선이 엉망이 된 와중에 그래도 어쨌든 해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도 있고… 그래 그렇지. 그 결과로 좋았던 것들은 역시 사람들이다. 어떤 불운 혹은 나의 즉흥 때문에 변동된 일정의 결과 그 만남들이 있을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마음이 맞거나 마음이 가거나 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대화가 잘 되지 않으면 않는대로 사람의 매력을 느끼는 순간들을 많이 누렸다. 여행길에서는 특히나 더 막힌 데 없이 호감을 표시하고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앞으로 무슨 일로도 엮일 것이 없으며 그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의도가 가장 분명한 그 편안함 속에서 서로가 완전한 호의로 잠시 머물러주는 것. 용써서 설명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모국어가 아닌데도 더 편하게 말을 풀고 섞고 했다. 엄청나게 재미있는 사건 혹은 짜릿한 순간 같은 게 늘 있지는 않았지만, 하나하나의 만남마다 상기하면 미소가 나온다.
애초에 나는 불운도 행운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계획하지 않은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어떤 것은 불운으로 어떤 것은 행운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일상에서는 행운에 기뻐하고 불운에 슬퍼하게 된다. 그 과정을 찬찬히 관찰하지 않았으므로, 갑작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니까. 여행은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들여다볼 수 있는 재미있는 체험이다.
오만과 편견
헬싱키행 핀에어에서는 한국 아주머니 두 분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는데, 그들의 여행에 대한 설렘과 살아온 인생에 대한 긍정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제공받은 레드와인 하프바틀을 내가 옆자리에 앉아 너무 빨리 비우자, 자신의 와인을 나보고 대신 마저 마셔달라며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골프를 함께 치는 동네 친구 모임에서 북유럽 2주일 패키지여행을 떠나는 중이었는데 직전까지 여행 취소를 고민할 정도로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서 술이 안 들어간다고 하더니 이런저런 인생 얘기, 여행 얘기, 자식들 얘기를 나누다가 비행기가 착륙할 즈음에는 막상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었다며 신기해하셨다. 그분의 세련된 취향에 맞을 것 같은 여행 팁을 몇 개 드렸는데 꼭 기억해야겠다며 기뻐해주셔서 나 역시도 기분이 좋아졌고, 나 역시도 이 여행에 긴가민가해하고 있는 와중이었는데 슬슬 흥을 내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또 한 분은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아주머니셨는데, 무심결에 앞에 걸어가던 환승객들을 따라가다가 길을 잃은 와중에 마주쳐서 얼떨결에 입국 수속까지 챙겨드리게 됐다. 딸이 스웨덴에서 결혼해서 애까지 낳고 살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3년 가까이 못 보다가 이번에 제대로 여행을 하러 왔다고. 딸과의 세 달간의 여정이 너무 기대된다며, 예순이 넘은 여자가 영어도 못하는데 이렇게 혼자서 한국을 훌쩍 떠나오다니 이런 자신이 좀 대단하지 않냐며 묻는 귀여운 분이었다.
한국이 좋아서, 한국이 싫어서와 같은 것들에 신경 쓰면서 떠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여행의 마음들. 여자 혼자 멀리 떠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유독 어떤 평가를 하고 싶어 한다고 느낀다. 이건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내가 몇 살이 되었건 똑같다는 걸 알았다. 나이 들면 그렇지 않겠지 했던 스무 살의 그 예상은 틀렸다. 스무 살은 스무 살이어서 서른다섯 살은 서른다섯 살이어서 쉰 살은 쉰 살이어서, 남자는 남자여서 여자는 여자여서, 멀리 혼자 떠나는 것은 주목받을 만한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 내가 그 아주머니들의 시선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그들도 나의 대상이 되어 어떤 인상을(편견을) 남겼으니 말이다.
세상의 편견들 중에는 비난받아 마땅한 것들도 있지만, 단순히 나의 오만 때문에 비난을 일삼게 되는 것들도 꽤 많다. 모든 편견이 그 자체로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종종 생각한다. 중요한 건 오만하지 않은 자세라는 것을 반복해서 느낀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이스라엘, 캐나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모로코, 프랑스, 러시아, 폴란드, 오스트리아… 길 위에서 만난 친구들이 이렇게 국적이 다양했는지는 이 문장을 쓰면서 알았네. 각기 자기 나라와 다른 나라에 대한 편견과 감정이 있고, 대륙과 대륙에 대한 편견과 감정이 있으며 이에 따라 서로 조심해하고 재밌어하고 따로 또 같이 앞뒤에서 담화를 벌였다. 내가 글재주가 더 좋다면 이 테마로만 소설을 쓰고 싶을 정도로, 다양한 상황들이 단순한 대화와 장면으로 중첩되었고 각자가 갖고 있는 그 편견들이 대화의 구성원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교란되는 것을 지켜보게 됐다. 이게 무슨 말인지 전하려면 아무래도 그것들을 하나하나 나열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엔 길이가 너무 길어질 것 같다. 라기보단 쓸 엄두가 안 난다. 나중에라도 따로 그 대화들을 복기해서, 그 아이러니를 내가 지금 느끼는 만큼 재밌게 잘 전달되게 남길 수 있다면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한 단계 나아가는 것일 테다. 하지만 항상 이 부근에서 가로막히곤 하지.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카페도 좀 틀려먹었다. 차별적인 매너가 느껴지면 ‘아냐. 아니겠지.’ 하고 반사적으로 부정하고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데, 열 중 아홉은 ‘오, 아니 역시나 또 맞았어.’ 하게 된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면서 특정 지역 출신 관광객들의 어떤 특성에 진절머리 날 수 있음을 이해한다. 감정을 느끼고 편견을 갖는 거야 차별의 대상이 되는 입장에서도 뭐라고 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지만 이렇게 드러내는 것은 좋지 않다. 이건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최소한의 자각을 해주면 좋겠다. 싸울 수도 없이 온 일상에 심어져 있던 인종차별에 힘들어하고 화를 내던 시절이 있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오랜만에 마주치니 이 또한 재밌다. 오우 오랜만이야. 그래 너 여전히 거기 있었구나, 하고.
Goodbye, my Summer
마지막 행선지인 포르토에 와있다. 떠나온 나의 섬, 아프리카에 가까웠던 그 섬 푸에르트벤투라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 포르투갈도 2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완연히 여름이었는데-그래서 가을 옷을 가방 무겁게 가져온 내가 한심했는데!- 반팔과 반바지로는 하루를 온전하게 보낼 수 없다. 나의 준비가 헛되지 않았음에 환호를 해야 하건만, 그게 또 그럴 수는 없지. 섬을 떠나면서도 사실 몰랐는데 포르투 에어비앤비에 체크인하고 나서야 2022년의 여름이 이렇게 끝났구나, 실감이 났다. 라디에이터를 찾으면서 서늘한 쓸쓸함을 느꼈다. 올해는 여름을 유독 길게 보낸 해다. 4월에 한 달을 살았던 제주에서부터 나는 늘 여름이었으니, 떠나지 않는 이 계절에 정든 시간이 거의 반년에 달하는 거다. 약 170일의 썸머-. 이 환절기를 예상했고, 포르투에서 맞이하는 가을이 예쁘고 또 기쁠 줄 알았는데, 이 도시에 여름을 강제로 빼앗기기라도 한 것처럼 이곳이 원망스럽고 그래서 도무지 좋아할 수가 없다니 이런 반전이 다 있나. 그렇게 함께 찾아온 생각이 있다. 나의 일도 이제 막 여름이 지난 것 같다고. 가을을 맞이해야 하는 것 같다고. 여름을 찾아 여행을 떠난 것처럼 비슷하게 살아가도 되고 가을을 완연히 맞이해도 된다. 환절기에는 사람이 보통 감정이 젖기 마련이니까, 지금 그냥 그런 거라고.
가을에 태어난 나는 내가 태어난 계절을 어느 때보다 더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