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벨이 울렸다(1)
독일 학폭 피해가 더 높게 나온 이유
한가로운 오후,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인터폰 너머 첫째 아들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 친구가 집으로 놀러 왔겠지 하며 나가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데니스(가명)와 엄마라 밝힌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집 안으로 들어오라 했다. 그들은 다른 곳을 가야 한다며 서서 이야기하겠단다. 놀러 온 게 아닌 게다.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러했다.
데니스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지만 그렇지 못했다. 쉬는 시간에 간식을 먹거나 운동장에서 함께 놀 때 친구들이 끼워주지 않는다 했다. 가끔 아이들 장난 때문에 데니스는 운다고 했다. 데니스는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는 거다.
학교폭력 피해, 독일이 한국보다 더 높아
독일 건강행동연구프로그램(HBSC) 2022에 의하면, 약 14%의 학생이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하는 <2023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의하면, 학교폭력 피해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약 2~3%로 나타났다.
학교 폭력 피해율을 비교해 봤을 때 독일은 약 14%로서 우리나라 학폭 피해율 약 2~3%보다 훨씬 높은 수치이다.
이러한 차이가 나는 원인은 무엇인가? 독일에서 학교피해가 더 많이 발생하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먼저 궁금했다.
첫째, 경미한 폭력도 폭력이다: 폭력에 대한 정의가 포괄적인 독일
한국의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주로 물리적·언어적 폭력, 금품 갈취, 사이버 괴롭힘, 왕따 (집단 따돌림)을 다룬다.
반면 독일의 건강행동연구프로그램(HBSC) 조사는 폭력 기준이 포괄적이고 넓다. 상대적으로 경미한 언어폭력이나 신체적 괴롭힘도 폭력에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독일의 피해율이 더 높게 나타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독일에서도 협소하고 제한적으로 적용하던 정의가 바뀐 지 불과 얼마 안 됐다는 점이다. 온라인 속 괴롭힘에 대한 법적 처벌은 2010년 중반 이후이고 2018년 연방 헌법 재판소에서 학교 내 인권보호와 관련한 판결을 내렸다.
둘째, 폭력은 (묵인 없이) 신고한다: 폭력 문제를 공론화하고 신고하는데 익숙한 독일
독일에서는 폭력이나 괴롭힘에 대해 신고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독일 학교폭력 신고문화를 바뀐 계기가 되는 사건은 2009년 뮌헨시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했다. 한 학생이 동급생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했고,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게 되었다. 교사와 학교 측에 여러 번 문제를 알렸으나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
이 사건 이후 학교폭력 신고 문화는 변했고 학생들은 학교 내 폭력 상황에 대해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학교에서 일어난 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는데 익숙하니까 조사 응답자들은 폭력
경험을 더 솔직하게 응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는 학교폭력 피해가 있어도 숨기거나 신고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학교폭력 신고가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고 신고 후 대처가 즉각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점점 더 나아지고는 있으나) 신고 후 처리, 보상, 처벌 등에서 법. 제도적으로 미흡한 요인도 있다. 이것이 폭력 상황이 공론화되지 않거나 학교폭력이 은밀히 지속되는 경우로 이어지는 것이다.
셋째, 문화차이로 인해 한국은 집단에서 왕따, 독일은 개인 간 언어, 신체 폭력 높아
독일은 한국에 비해 독립적이고 개인주의가 강한 사회이다. 개인 인권과 독립성을 중시하는 사회적 가치는 학교에서도 나타난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 독일은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국에 비해 갈등으로 인한 신체적·언어적 폭력이 더 발생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학교 내 인간관계 형성에도 영향을 준다. 여럿이 특정 학생을 따돌리거나 배제하는 왕따가 나타난다. 은따(은근히 따돌림)처럼 갈등을 감추고 표면화하지 않으며 은밀하게 폭력을 행사한다.
왕따 피해는 한국과 독일 큰 차이 없어
특히 학교 폭력 중 왕따(Mobbing) 피해율은 독일 건강행동연구프로그램(HBSC)에 의하면, 약 7%로 보고한다. 독일 모 대학의 몹빙 연구에 의하면 그보다는 더 높다. 이 연구에서는 학교폭력 피해자 중 31.2%가 최소 한 번은 학교 내에서 무시, 강요와 같은 일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독일에서 왕따가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나이는 8세~14세이며, 80%가 수업시간 외 학교 안, 등하교 길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2~2023년 조사 결과에 의하면, 왕따 피해는 학교폭력경험자의 약 30%를 차지한다. 즉 학교폭력 경험자 10명 중 3명은 왕따 같은 집단 따돌림을 경험한다.
그러니까, 앞서 이야기한 데니스는 몹빙 피해자인 셈이다.
우리 아들도 데니스를 괴롭히냐며 묻자 그들은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다만 데니스를 놀리며 괴롭히는 몇몇 아이들이 있으니 데니스를 도와달라 했다. 괴롭히는 무리에 동조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대답을 듣고 난 후에도 그들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들의 방문 목적은 실은 따로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