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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는 무기력한 말

by 몽접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은 힘내라는 말이다. 나도 힘이 들면 스스로에게 힘을 내야지라고 생각하고 "몽접아 힘내자"라고 한다. 그래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힘내라는 말을 많이 할까.

엄마는 일찍이 말씀하셨다.

"엄마 엄마는 살면서 힘들 때 어떻게 이겨내셔?"

엄마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거지, 매일 하루가 새로운 하루인데 엄마인들 무슨 비결이 있겠니?"

그렇다.

나는 그때의 나는 엄마도 별수 없으시구나 생각을 했다. 단편적인 말이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이가 차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할 때 "힘내"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이가 30이 넘으면서 알았다. 힘내라는 말이 폭력이 될 수 있고 무기력한 말이 될 수 있음을.

그래서 나는 아무 말 없이 들어주고 안아준다.

그리고 내가 너의 말을 다 알아줄 수 없으니 그냥 그저 바로 옆에 있어주겠다고 그렇게 있어준다.

들어주는 게 최고의 위로가 아닐까 해서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르고부터는 말의 힘에 다름을 알기에 더는 이야기 하는 게 무기력하다는 판단을 하고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는다.


나이가 있다 보니 이제는 즐거운 일보다는 슬픈 일에 갈 때가 더 많다. 그래서 나는 그 슬픈 일에도 예전 같았으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하겠지만 이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겠지 한다.

삶의 이야기가 다르고 궤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죽은 자를 앞에 두고 육개장 한 그릇을 먹으며 또 살다와 죽는다를 마주한다는 게 뻐근하게 느껴지면 국물보다 진하게 눈물이 날 뿐이다.


인생은 정답이 없다. 그래서 그런가, 이제는 어떤 말을 해도 그게 답이 될 수 없음을 알기에 나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혹여 누군가가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으면 나는 "글쎄.. 네가 알아서 해"라고 한다.

내가 답을 안다고 할 수 없고 혹여 안다고 해도 정답이 될 수 없음을 알기에 나는 말을 아끼는 것이다.

며칠 전 친구가 나에게 자신의 삶이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유는 명확했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답이다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고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듣는 친구에게 너무 무기력한 말이 될 것 같고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라는 표현이 그 시간은 너무 막막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 조여 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해서 말을 아끼고 그냥 들어주었다.

평범하게 사는 게 소원이라는 친구의 말에 눈물이 났지만 그냥 먹먹하게 들어주며 나는 안녕이라는 단어를 끝으로 전화를 마쳤다.


우리는 위로의 방식이 힘내라는 말이 많다. 그런데 그 힘내라는 말이 얼마나 무기력했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결국은 인생은 혼자 살고 혼자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내라는 말은 타인의 시선에서는 결국은 내일이 아니므로 너무 남발하는 소리가 될 수 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정말 줄일 게 많다. 말, 특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줄이고 줄여 쓴다.

힘내라는 말은 때론 무기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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