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4호선, 숨을 쉬기 힘들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 비좁은 칸에 내 발을 들이 내밀었다. 백팩을 앞으로 하고 살아보겠다고 숨을 들이쉬고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사람들이 한 번은 우르르 내리고 이제 제법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빡빡한 퇴근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갑자기 몰려오는 졸음에 나는 책을 잡고 있었다.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처음에는 몰랐다. 누군가가 가방을 떨어트려서 나와 스쳤겠지 했다. 하지만 또 두드리는 느낌이 나서 책을 접고 올려다봤다. 이런 전 직장 상사였다.
상사는 환한 웃음을 띠며 "야 아직도 책 읽어?"
나는 "안녕하세요, 아... "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지?..' 하며 웃었다.
상사 s과장님은 "아니 뭘 달라 인마, 똑같지"
나는 "아직도 과장이세요?"
과장님은 "너에게는 평생 과장이지" 웃으셨다.
다음 역 하차 방송이 나왔다.
과장님은 "바쁘냐?"
나는 잠시 빠르게 생각을 하다가 "어.. 아니요.." 하며 같이 내려 통닭집으로 갔다.
어떻게 갔는지 기억도 안 나는 게 다들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허름한 노포에 갔다. 하지만 맛은 좋았다.
과장님은 "자식 대기업인데 뭐? 탈출은 지능순, 인마 그렇게 너 나가고 그다음에 동기 r 나가고 애들 그러고 보니 이제 3명 남았다."
나는 놀라서 "3명요?"
과장님은 "응, 그래도 많이 남은 거야, 여자애들은 육아에 집안일에 많이 치이지, 그러다 보면 그만두고 남자애들은 이직하고 그래도 의리 있게 남은 건 네 동기 e 있잖냐"
맥주를 들이켜시며 "그러니까.. 인생은 모른다, 누가 너 나갈 거라 생각했겠냐? 새벽까지 일해 , 보고서 깨져. 그래도 어떻게든 버티겠다고 나날이 생존해. 자식 나는 너 인마 같이 갈려고 이래저래 기름칠을 해 놨는데 나가고 말이야, 섭섭했다."
나는 "그러셨구나.."
과장님은 "그리고 나 이제 과장 아니야, 올라갔어"
환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아 넵"
하며 술을 마시는데
"야 좋다, 나의 옛 용사를 만나는 기분이야, 요즘 애들이랑 마시는 건 또 달라. 그냥 뭐랄까.. 있어. 그런 게"
나는 "뭔데요?"
과장님은 "그런 게 있어 인마, 일찍 나간 놈이 뭘 그리 알라고 들어"
하시며 웃으셨고 얼추 취기가 올라오자 헤어질 때 과장님은 "야, 이직해라.ㅋㅋㅋ" 하시며 뼈 있는 농담을 던지셨다. 나는 "과장님은 진짜 착하셨어요. 그때 과장님 아니었음 더 빨리 탈출했을 겁니다"라고 말을 했더니 과장님은 "너 없어지고 그 자리 보름은 그래도 지켰다" 하시며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셨다.
정말 오랜만에 뵈었다. 거의 10년이 다되어서 뵙는데 그대로셨다.
보고서 오타는 물론이고 신입이라 마음이 다칠까 봐 직접 커피도 사주시고 이래저래 적응하라고 힌트도 주시고 남들은 지적을 받아서 현타를 받았지만 나는 사랑을 많이 받는다고 동기들이 부러워했다.
그때는 몰랐다.
동기들끼리 한 잔 하면 "야 우리 상사는.. 음.. 착하시긴 하지.."라고 하면 동기들은 "야 진짜 너는 복이 어마무시하다"라고 했다.
나도 나중에 알았다.
원래 사람은 가까우면 잘 모른다.
그래서 나중에 사표를 쓰고 나올 때는 과장님께서 다시 들어오고 싶으면 전화해,라고 하셨고 어깨를 두드리시며 "항상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라고 힘을 주셨던 분이다.
생각해 보면 난 인복이 많다.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쉽지 않다. 내 친구는 회사를 나오고 그쪽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그렇지는 않다. 그냥 다들 잘 있겠지 한다. 그래서 가끔 동기들 이야기를 들으면 각자 알아서 하겠지, 한다.
그리고 후회 없냐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는데 후회는 없다, 다만 그때의 열정은 그대로 여기에 왔기에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자기 하기 나름이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도 과장님의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과장님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감사드릴 겁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