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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관이 되다.

by 몽접

어수선한 연말을 넘어가고 있다. 일도 많고 마음이 어수선하기 이를 때 없다. 당장 지난주만 해도 내년도 일을 정리하고 일정을 잡는데 하루를 다 썼다. 너무 힘들어서 요즘 집에 가면 넉 다운이다. 주변 지인들은 볼 때마다 계단에서 "자기 밥 먹어, 우리 오늘 거의 야근" 하면서 서로를 챙겨주고 있다.

그렇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점심을 먹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연구원장님 호출이 있었다.

호출을 할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인가 해서 내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문제라면, 이라는 생각에 혹시 몰라서 프린트를 해서 간단한 정리 보고서를 들고서 들어갔다.


정갈하게 쓰인 한문 액자에 늘 보는 난들은 언제 봐도 가지런하다.

인사를 드리고 앉았다.

"몽접 연구원 우리 인연이 얼마나 되었지?"

나는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손을 꼽으며 "네 족히 15년은 훨씬 넘습니다"

연구원장님은 처음 내가 들어올 때 썼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고 계셨다. 순간 얼음이 되었다.

나는 "이건 제 입사 지원서.."

연구원장님은 웃으시며 "그러게 이게 언제야.. 깜깜하지.. 그런데 말이야. 몽접 연구원이 최종 면접을 봤을 때 눈빛이 좋았어. 뭐랄까 그냥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목적도 있고 뭔가 맞을 것 같아서 좋았거든. 물론 그때를 내가 다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기시감은 있지. 이 사람은 여기서 오래 버틸 수 있겠다 없겠다, 몽접 연구원은 여기서 오래 있겠구나 싶었지. 마지막 질문 기억나?"


순간 멍해서 그냥 있었다. 연구원장님은 " 당신은 잘하는 걸 하고 싶습니까,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습니까?"라고 질문했을 거야.

맞다, 나도 모르게 허벅지를 치며 "네 맞습니다. 전 그때 하고 싶은 걸 잘하고 싶고 못 한다면 배워서 즐기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껄껄 웃으시는 연구원장님은 "해답이지" 하시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셨다.

"그 팀을 이끈 지도 4년이 되었고 이번에 면접관을 해 봐, 많은 사람이 물망에 올랐는데 내가 자네를 적극 추천했어.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어려운 일이나 쉬운 일이나 열심히 했고 무엇보다 자네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으니 다르지 싶어. 최종면접관은 아니고 2차 면접관이니 그나마 부담은 덜하겠지? 어때?"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나는 너무 떨려서 "제가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지 그런 사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을 하니 연구원장님은 "그럼 가능하지, 해마다 들어오는 프로젝트에 자네가 들어가지 않은 적이 없었고 큰 일 작은 일 거의 했잖아. 그럼 자네 정도면 가능하지. 자네의 인품을 믿네. 자네가 처음 이곳을 지원했을 때처럼 자네와 비슷한 사람을 추천해 줘"

나는 아무 말 없이 있었다.

그리고 "저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연구원장님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어. 우리 포트폴리오 기준안도 있고 하니 참고하고, 자네가 만들어 봐. 그리고 내가 제안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자네를 위한 일이기도 하니 좋게 받아들였으면 하네, 아직 시기가 있으니 준비는 충분할 거야. 뭐 내년 상반기이니 충분하지."

나는 "네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나는 방을 나오고 팀원들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솔직히 이야기를 했고 우리 팀은 올래!! 를 외치며 축하한다고 나에게 한턱 쏘라고 했다.

"내가 그럴 자격이 되나 몰라. 그냥 횟수를 채우는 사람인데.."

옆자리 동료는 "무슨 그런 소리!! 해!! 무조건!!"

그렇게 난 일주일을 고민하고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동안 면접을 했던 기록들과 자료들을 참고해서 면접관이 되기로 했다.


평생 면접을 보러 다녔다. 처음은 대학교 아르바이트부터 크게는 이렇게 직장까지. 그래서 누군가에 대해서 내가 판단을 하는 게 나에게는 무척 어려운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해 볼 생각이다.

좋은 인연을 만나 같이 일하면 좋겠다.

그런데 나는 이게 숙제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가, 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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