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찐따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 찐따가 뭘까? 사회에서 도태되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 아니면 남들은 다 있다는 코인도 없고 번듯한 직장도 없는 이 자본주의에 허덕이는 사람? 다 좋다. 어쨌든 나는 찐따였다. 그래 과거형이다. 그런데 지금도 나는 나 스스로 찐따라고 부른다.
지금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왜 찐따인지 모른다.
이유는 내 과거의 삶이 나를 찐따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 교과서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은 부모 국가 인종이다. 그러므로 화가 나더라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아라. 그렇다. 열심히 암기를 했고 시험도 쳤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남자이고 부모님은 금수저 은수저도 아닌 흙수저이고 덕분에 나도 흙수저로 태어나서 열심히 아르바이트와 일을 했다. 여기에 합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7년 반이 걸렸고 나에게는 수많은 아르바이트 역사가 있다. 그 역사에 대해서 언급하기 전에 내가 찐따라는 이유를 쓴 건 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는 계급전쟁을 펼쳐야 했고 그 속에서 정말 몸을 쓰며 열심히 흙수저에서 은수저로 가기 위해 열심히 움직였지만 인생은 한방에 풀리지 않는다는 아주 고운 어조로 알려준 내 아르바이트들에게 감사해하며 살았었다.
자 이즘이면 내 찐따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한다. 내 이름은 김민철. 상당히 정확한 딕션이다. 민철하면 뭔가 철저하고 완벽할 것 같지 않나? 그런데 내 별명은 민철에서 제철로 바뀌었다. 이 제철은 초등학교 때 붙여진 별명이다. 그때가 아마 초등학교 4학년때였는데 옆짝인 여자 아이가 "야 너 제철로 해"라고 했는데 이유는 묻지 않고 그냥 나도 모르게 "응"이라고 했다가 나도 모르게 "야 김제철"로 되어 버렸다. 그 이후 수많은 별명이 붙고 국어 시간에 제철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고서 나는 다시 내 이름을 돌리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지만 어려웠다. 예를 들면 없는 형편에 사탕을 사준다던가 아니면 떡볶이를 사준다던가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약간의 불량식품을 돌린다던가, 나에게 그런 모종의 뭔가를 받을 때 친구들은 "야 우리가 널 배신하겠니?라고 하며 민철이라고 불렀지만 그다음 날은 다시 "제철아~"라고 불러서 포기했다.
그래 , 내 찐따의 역사는 여기서부터다.
나는 결국 처음으로 제철이라는 별명을 붙여 준 그 여자 아이와 한 판 붙어야 했다. 나는 내기를 신청했고 여자 아이는 코웃음을 치며 "야 촌스럽게 무슨 내기냐?"
갑자기 이렇게 훅 들어오니 겁을 먹고 나는 말을 더듬으며 "그그그럼 뭐"라고 했더니 여자 아이는 "그냥 싸우자"라고 당차게 이야기하는데 되려 겁을 먹는 나는 "그 그 그러자"라고 했다.
그날이었다. 과학시간을 마지막으로 청소를 마치자 여자 아이는 일대일 승부를 신청했고 친구들은 집에 가지 않고 우리 둘의 상황을 지켜봤다. 생각보다 관중이 너무 많았다. 아이들은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
나는 질 수 없어서 주먹을 꽉 쥐고 있는데 여자 아이가 갑자기 책상을 들어서 나에게 던졌다.
본능이다, 살려고 몸을 피했다. 그때 여자 아이가 "야 치사하게 그렇게 피하냐?"라고 웃음을 날렸고 나는 "그럼 맞고 있냐?"라고 한방을 날렸는데 그때였다. "얍...!!" "퍽" 그렇다. 여자 아이가 내게 옆 발차기를 해서 내 옆구리에 자신의 발을 찍어 내렸다. 나는 순간 멍하게 엎드려 있게 되었고 여자 아이는 잊지 않고 의자를 들어서 내게 다가왔다. "어때 그냥 진 걸로 하지?"
나는 무심결에 "어.. 어" 그렇게 순식간에 마무리되는 순간, 여자 아이들은 "제철이 끝났다" 하면서 각자 흩어졌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 아직도 옆구리가 아팠다. 모욕적인 순간을 선생님께 일러서 처리를 할까도 싶었지만 그건 최악이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 말을 하고 태권도 학원을 수강했다.
그리고 다음날 태권도 학원에 상담을 갔다.
이런 그 여자 아이가 있다.
아 그 여자 아이 이름은 성미다. 성깔 있는 도끼 어린 눈빛으로 나를 노려 보는 시선이 싫다.
나는 엄마 손을 끌고 나가자고 했더니 엄마는 더 나에게 하라고 하셨다.
그때였다.
"저기 우리 애 최대한 많이 움직여 주세요. 매일 맞고 와요"
관장은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저희 잘 가르칩니다"
그렇다. 이제 찐따의 역사는 여기서 시작이 된다.
나는 정말 찐다가 뭔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알 수밖에 없는 찐따의 역사를 이곳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태권도 차량에 올라탔다. 아이들이 "야 너도 다녀?"라고 인사를 했다. 나는 거의 일그러진 표정으로 "응"이라고 하고 그렇게 시작했다.
관은 컸다. 사범님들은 매우 엄하셨다.
첫 동작부터가 매우 힘들었다. 일대일로 겨루기를 하는 형들이 부러웠다.
수업은 2시간이지만 내 몸을 움직이는 일이라 너무 길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성미가 다가왔다.
"야 너 여기 다닌다고 나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나 여기 3년 다녔거든. 너 아직 멀었다"
아래위로 올려 다 보며 괜히 텃세를 부리는 성미가 싫어서 멀리 하려고 하는데 그것도 모르는 관장님은 "아 그래 같은 학교이지? "하면서 괜히 묶어서 친하게 지내라는 지옥 같은 말을 하셨다.
같은 조가 되어서 무술을 연마하고 나니 제법 뭔가 된 듯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다음날 학교에서도 성미는 옆에서 계속 내게 옆발차기 공격을 했다. 번번이 지고 나니 남자애들은 나에게 남자 얼굴 다 깎아 먹는다고 뭐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은 친구 없이 살아야 했다. 어쩌다 말을 걸어오는 친구들은 나에게 동냥을 하듯이 물었고 6학년 졸업식에서는 같이 스냅사진을 찍어 줄 친구가 없어서 유일하게 혼자서 찍어야 했다. 그래 그렇다. 내 찐따의 기록이자 시작이다.
중학교는 집 근처로 갔다. 이미 얼굴을 아는 친구들이 제법 있었다. 나는 절대로 혼자 살 수 없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지지 않겠닫고 생각해서 어깨를 괜히 피고 주먹을 쥐고 다녔다. 반이 배정이 되고 나서 반장을 뽑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있으셨다.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나가기로 했다. 누군가 피식하고 웃었다. 나는 째려보며 반장에 지원을 했다. 아이들은 모두 내게는 표가 1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치밀하게 표를 짜서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사주었다. 허허허 하면서 먹는 아이들은 내게 한 표를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결전의 날, 날이 밝았다. 나는 너무 떨렸다. 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담임 선생님은 아침 조례시간을 지키시며 반장을 뽑겠다고 하셨다.
"자 우리 반도 이제 반장을 뽑지, 혹시 누구 추천할 사람 있는가?"
눈치를 봤다.
이런 아무도 대답이 없다.
예상되지 못한 시나리오이다.
무거운 공기를 뚫고서 누군가 손을 들었다.
"철민이요"
속으로 '앗싸'를 외쳤다.
그리고 뒤이어 다른 사람도 호명이 되었다.
그렇게 3명이 경쟁이 붙었다.
비밀투표가 시작되고 30여분이 흐른 뒤 투표용지가 열렸다. 바를 정자를 그리며 한표 한 표를 그리는데 얼마나 떨리는지 이렇게 떨려 보는 건 처음이었다.
"민철"
'민석"
"경운"
"민철"
"민철"
........
대단원의 막이 내려졌다. 나는 떨어졌다. 그것도 표는 3표밖에 나오지 않았다. 치욕이다. 그렇게 마무리된 반장은 첫 번째 치욕의 역사를 그렸다.
아이들은 나를 보면서 세표를 외쳤고 나는 그럴 때마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세표는 삼을 그리게 해서 남자애들은 중지 손가락을 올려 보이며, 모욕감을 주었다. 화장실에 가서 몰래 눈물을 훔치며 이 상황을 버티겠다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중학교 1년을 보내고 나의 정점은 중3이었다. 다들 일반계 인문계를 간다고 공부를 했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학교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나서 더욱 그렇게 생각을 했다. 내가 가진 기술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내가 뭔가를 하겠다는 의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은 남들과 다르지 않은 길을 가는 거다.
집 근처 고등학교는 남녀 공학을 가야 한다. 평판이 그리 좋지 않지만 그래도 가고 싶었다. 같이 가기로 한 친구와 이야기를 한 결과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고등학교의 삶은 좀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생각을 했다. 내 찐따의 삶은 본격적으로 고등학교에 가서 일어났다. 그때의 그 삶은 내게 아주 강력한 파워로 다가왔다.
중3의 겨울, 나는 열심히 태권도를 배웠다. 엄마는 선행학습을 하라고 영수학원으로 등을 밀었지만 나는 태권도를 정말 열심히 배웠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짱을 먹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낮과 밤을 구분하지 않고 열심히 배웠다. 어지간히 근육도 키우고 나름 자세를 잡아갈 때 즈음 전학생이 왔다. 이름은 전기욱 소문이 무성했다. 다른 학교에서 문제가 있어서 왔다는 이야기도 돌았고 갈 곳 없는 학교에서 우리 학교아 받아주었다는 소문도 있고 알 수 없는 소문에 한 달은 그렇게 잠수 타듯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두 달이 조금 지났을까,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나는 친구들과 떡볶이 집에서 분식을 먹고 있었다. 늘 가는 분식집이라 아주머니와 농담을 하면서 시간을 끄는데 전기욱이 왔다. 그리고 말없이 먹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괜히 심심해서 말을 걸었다.
"야 너 혼자 먹냐?"
나는 최대한 말을 걸어 볼 요량이었다.
기욱이는 "그냥 먹던 거 먹지?"
나는 지지 않고 "야 친구가 말하는데 그렇게 받는 건 아니지. 지킬 건 지키자"
기욱이는 "알겠다" 하고는 자신이 먹고 있는 떡볶이를 내게 부어 버리고 떠났다.
순간 얼음이 된 그 장소는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고 어떻게든 그 상황을 부셔야 했다.
틈만 나면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는데 그 고민은 결국 문제가 되어 내가 기욱이게 힘도 하나 못 쓰는 병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되어 애들은 나를 보고 "야 그러게 적당히 해야지"라는 말을 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그날 점시 시간에 기욱이 반에 가서 외쳤다.
"야 전기욱 나 좀 보자"
기욱이는 귀찮아하며 "그냥 가라. 나 잘 거다."
나는 더 크게 "전기욱 나를 좀 보자고!!!'
기욱이는 더 귀를 막으며 보려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야 나오라고"
그때였다.
"야 어차피 넌 안 돼, 그냥 가라"
기욱이 옆에 있는 철용이가 이야기했다.
그래 철용이는 내 중학교 3년 내내 나를 하수로 본 놈이다. 나는 "제삼자는 빠지지?"
철용이는 "어쭈 요즘 운동 좀 한다고 하더니 하려고? 근데 어쩌냐 , 저분께서는 놀아 줄 시간이 없으시데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수업 종이 울렸다.
갑자기 벌떡 일어난 기옥이는 "싸음은 수없 시간에 해야지 제맛이지"
아이들은 다들 "와 아아아 아"를 외쳤고 나는 갑자기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수학 시간을 제치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기옥이는 "어때 내가 왼손을 접을까?"
나는 "뭘 접어. 접기는 종이나 접어"
기옥이는 "그래 그러자"
활극이다.
"퍽 퍽퍽 " 서로 마주하고 하는 싸움은 처음이다.
나는 태권도에서 배운 그대로 써먹었다.
소문이 틀리지 않았다. 기욱이는 예사 놈이 아니었다. 손과 발의 빠르기 매우 민첩하고 빨랐다. 내가 자칫 질 수 있겠다 싶어서 나는 안쪽으로 공격을 이어나갔다.
그때였다. 기옥이가 내 앞면을 공격하기 위해서 양다리를 하늘로 뻗쳐 올리고 나는 그 사이를 빠져 가기 위해 기옥이 뒤로 가서 등을 냅다 옆으로 밀었다.
"쿵" 기욱이가 내려앉았다.
기욱이는 질 수 없다며 왼속으로 어퍼컷을 날렸으며 나 또한 오른 속으로 빈 공간을 이용해 어퍼컷을 날렸다. 이쯤이면 서로 피를 본 셈이다.
우리는 그렇게 1시간 넘게 싸움을 했고 주변에 친구들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야 너희 선생님이 오래"
민찬이다.
우리는 절뚝거리며 교무실을 갔고,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뭐 하는 짓이야!!
"
나와 기욱이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복도에서 두 손을 들고 벌을 섰다.
오며 가며 친구들은 누가 이겼는지 궁금해했지만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있었을까 다들 집으로 가는 길, 교무실에서 다시 우리를 불렀다.
"앞으로 한 번 만도 이런 일이 발생하면 너희들 끝이다"
수학선생님은 얼굴을 씰룩이며 말씀을 하셨고 우리는 "네"라고 답을 하고는 교실로 가서 각자의 가방을 찾을 수 있었다. 교문에는 아무도 없고 기욱이와 나만 있었다. 그때였다.
어디서 휘파람 소리가 났다.
나는 뒤를 돌아봤고 그 소리는 기욱이었다.
갑자기 어깨빵을 하는 기욱이는 "야 우리 친하게 지내자" 하며 갔고 무슨 저런 미친놈이 다 있나 싶어서 보는데 계속 들리는 그 휘파람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 내 찐따의 첫 번째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