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욱이와 몸싸움을 하고 난 후 아이들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우상 보듯이 했다. 나는 수학 시간을 빼고는 몸을 만든다는 이유로 푸시업을 하고 각종 도구를 사용하여 몸만들기에 전념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사나운 꼴이라고 하더니 기욱이와의 싸움 이후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역시 남자들의 시선에서는 싸움이 최고다.
나는 기욱이와 아주 열심히 잘 다녔다. 기욱이는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글빨이 좋았다. 일명 연애편지라고 해두자. 기욱이는 이성에 관심이 많아서 어떤 여중에 이쁜 학생이 있으면 꼭 봐야 하는 그런 친구였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가을바람은 불어오고 기욱이는 "야 그 명성여중에 깔쌈하게 이쁜 애 있다고 하는데 이름이.. 응 이희주.. 너 알아?"
나는 "모르지, 내가 어찌 알겠냐?"
기욱이는 "한 번 가볼까?"
나는 "아니 여중 앞애?'
기욱이는 "멋있지"
그렇게 기욱이를 따라 명성 여중으로 갔다.
여중은 여중이라 그런가 다 예뻐 보였다.
그렇게 시작된 기다림 끝에 이희주를 볼 수 있었다.
기욱이는 머뭇거리지 않고 "야 이희주"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희주는 모른 척하고 지나갔고 갑자기 기욱이는 이희주에게 뛰어갔다. 나도 덩달아 뛰었다.
희주는 "너 뭐야?"
기욱이는 "어 나 기욱이 , 너 보러 왔어"
희주는 "아니 그러니까 뭐냐고 , 나 보겠다는 애들이 연필 한 다스야. 그러니까 꺼저줄래?"
웃는 건지 비웃는 건지 모르게 그렇게 잠깐 사이에 희주는 멀어져 갔고 거기에 분한 기욱이는 "야 내가 잘해 줄게"라는 말을 뒤통수에 했지만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자 기욱이는 "야 이 돌아이야, 내가 잘해준다고"라고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이날 이후 나의 삶은 바뀌었다. 진욱이의 발바닥이 되어서 찐따의 삶을 살게 되었다. 진욱이는 이때부터 무슨 사랑에 대한 유명한 구절이 있으면 다 적어 놓으라고 내게 시켰고 편지도 대필을 하게 했다. 평생 편지라고는 어버이날에 쓴 편지 밖에 없는 나는 그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야 여기 부분에서 눈물이 나와 줘야 하는데 아니다. 다시" 이렇게 철저하게 관리를 받으며 편지를 하루에 수십 통을 쓰면서 찐따의 삶을 사는 것을 비밀유지 각서라는 것을 통해서 일 년을 살게 된다.
아, 비밀유지 각서는 내가 진욱이의 삶을 살아주는 대신 비밀을 유지해 준다는 뭐 일종의 날림공사 식 유지인데 그래도 난 내 나름의 이미지 유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진욱이에게 내 삶을 발설하는 그 순간 대리 편지와 그동안 여자를 꼬시기 위해 했던 일들을 다 퍼트리겠다고 협박을 했다. 그랬더니 알겠다고 하면서 써 준 각서이다. 오히려 이 각서가 내 발목을 잡하서 눈이 높은 희주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 별짓을 다 해야 했다.
이제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다른 게 아니라 선물이다. 아무리 편지에 글빨이 안 선다고 해도 선물에는 안 넘어가는 여자가 없다는 검색을 통한 결과를 이야기했다.
돌아온 대답이 어이가 없다.
"그래서 내가 돈을 너에게 얼마나 줘야 하는데"
나는 "그거야 상품에 따라서 다르지. 그리고 솔직히 급한 상황에 돈이 문제냐?"
하지만 기욱이는 "학생이 무슨 돈이야"
라고 하는데 나는 "알겠어 그럼 없는 걸로"
그때 갑자기 내 가방을 잡으며 "그래 그럼 하자. 대신 네가 좀 마련 좀 해주라"
나는 "나 돈 없어"
기욱이는 "비밀유지 각서 잊었냐?"
순간 뜨끔했다.
결국 난 부모님께 학교 자습서를 사야 한다는 뻥을 치고 돈 3만 원을 받아냈고 제법 큰 문구점에서 반지를 하나 샀다. 그리고 작은 메모와 함께 희주에게 건네주기로 했다.
진욱이는 매우 마음에 든다며 웃음을 보였고 디데이는 다음 주 토요일로 하기로 했다.
드디어 토요일이 밝았다. 나와 진욱이는 희주를 만나기로 했다. 쉽게 허락이 될 리 없는 희주는 겨우 만나 주겠다며 자신의 집 근처에서 약속 장소를 잡았다.
나는 최대한 깔끔한 경양식 집을 약속 장소로 잡았다.
괜히 내가 떨렸다.
오후 2시, 오지 않는다. 희주는 곧 도착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주고도 30분이나 지각을 했다.
"야 뭐야?"
앙칼진 목소리의 희주에게서 나는 작은 선물을 꺼냈다.
희주는 요리조리 둘려보며 "아니 이거?"
손바닥에 올려보며 뜯더니 작은 반지를 보자마자 "으픕" 웃음에 박수를 치며 허벅지에 손바닥을 두드리며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어이없다며 마무 웃었다.
그때 진욱이는 "야 넌 그게 웃기냐?"
희주는 "어 되게 웃겨. 그리고 되겠구려"
진욱이는 "이거 구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때 희주는 "야 나한테 이런 반지 몇 개나 있을 것 같아?"
진욱이는 "아니. 이 반지 동네 문구점 뭐 그런 싸구려가 아니야"
희주는 갑자기 작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서는 작은 케이스를 열었다.
이런 '띠리리잉 띠리리잉' 어마 무시한 반지들이다.
그것도 같은 반지다.
난 속으로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욱이에게 뭐라고 말해할지 생각헀다.
희주는 "이래도 딴말이냐?"
진욱이는 "아니 그러니까 이게 유명하니까 많은 거지"
이렇게 돌려차기를 했다.
희주는 "야 너 옆에 이름 뭐냐?'
갑자기 나를 지목헀다.
"나는 김민철"
희주는 "야 나는 너 맘에 든다"
이런 뜻밖의 상황에 순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희주는 "아니 그렇잖아. 편지도 네가 써. 선물도 네가 사. 뭐든 네가 다 한 거잖아. 진욱이는 한 게 없는데 내가 어떻게 좋아할 수 있어. 내가 로봇이니? 그리고 나 너 옛날부터 좋아했었어. 너 찐따라고 할 때부터."
진욱이는 "야 선을 넘는다"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진욱이는 "그래 알겠다" 하고 가버렸다.
혼자 남게 된 나는 "나 너한테 관심 없어. 알다시피 나 진욱이 친구고 찐따라서 하라는 거 시키는 거 한 것뿐이야. 그러니까 다른 마음이 없었으면 한다"
희주는 "찐따일 때나 아닐 때나 넌 같구나. 인생은 말이야. 타임어택이다. 언제 어떻게 들어오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거든. 나 좀 잘 나가. 나랑 만나면 너 그 찐따인생 좀 줄여줄 수 있어"
순간 혹 했지만 뒷감당이 되지 않았다.
"아니 그래도.."
희주는 "그래 그럼 나 혼자 좋아했다고 애들에게 이야기할게, 어때? 나도 찐따 너도 찐따 같은 찐따끼리 잘 살아보자" 악수를 내미는 희주에게 나도 모르게 악수를 해버렸다.
그리고 그다음 날 진욱이는 학교 스탠드로 나를 불렀다.
"야 너 희주 좋아하냐?"
나는 "아니"
진욱이는 "아니 그럼 희주 그년 입에서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나는 "나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사실이잖아. 편지 선물. 내가 대필하고 대신한건. 거기에 마음이 흔들렸다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없고. 그런데 내가 싫다고 했어. 걱정 마."
진욱이는 "그럼 내가 네 밑으로 들어갈게. 희주 나한테 줘라"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된다.
"나는 그 친구 싫다니까"
진욱이는 "그년이 너를 좋아하니까 내가 너 대신 찐따를 할 테니까 그년이 나에게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좀 부탁해 줘"
어려운 이야기다. 나는 일단 "알겠어. 그런데 장담은 못해"
그날 오후 자율학습을 마치고 희주 학교로 갔다. 어떻게 알았는지 "야 네가 민철이구나, 희주가 너 좋아한다며 축하해" 하는데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많은 여자 아이들이 힐끔힐끔 나를 보고 지나쳤다. 역시 희주는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옆에 있던 진욱이의 표정이 일그러진 시작 했다.
나는 "일단 기다려봐"
얼마나 지났을까 그때 희주가 나왔다.
"어이 희주"
희주는 반갑게 마주하며 "왔네, 마음을 정했나 봐. 내 말이 맞지?'
나는 잊지 않고 "아니 기욱이가 너 좋아해. 많이. 그러니까 생각해 봐"
그러자 희주는 화를 내며 "뭐라는 거야, 아 짜증 나. 앞으로 학교로 오지 마!!"
그렇게 휙 하고 바람같이 스쳐 지나갔다.
진욱이는 이미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진욱이와 나는 말없이 지냈다.
그 말없는 시간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인생이었다. 희주는 끝없이 나에게 이야기를 했고 나는 결국 희주와 만나기로 결정했다.
처음의 연애다. 소설책으로만 보던 연애는 내게 많은 것을 이야기하게 했다. 연애의 연자도 모르는 내가 해봐야 뭘 하겠는가. 그날이었다. 희주가 월미도가 가고 싶다고 해서 집에서 구글 지도를 얼마나 찾았는지 모른다. 결국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해서 밤을 새우고 월미도로 갔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내려 버스로 환승해서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이미 많은 인파가 있었다. 서울과 가장 가까운 바다였다.
"와 월미도다" 희주는 활짝 웃었다.
나는 "그렇게 좋냐?"
희주는 "그럼. 안 좋냐?"
희주는 아기 마냥 마구 뛰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둘러본 다고 마구 돌아다녔다.
저렇게 좋으면 진작에 오자고 하지 라는 생각에 므흣했다.
우리는 기구도 타고 근처에서 칼국수도 먹고 게임도 하고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
그렇게 저녁에는 집으로 귀가를 하고 집으로 바래다주는 길 희주는 내게 "나 전학 가" 갑자기 앞이 캄캄했다.
나는 "갑자기?'
희주는 "우리 아빠, 일 때문에 경기도로 이사를 가야 해서 더 이상은 힘들어서 가게 됐어"
나는 "그럼 우리는..."
희주는 "깔끔하게 쿨하게 끝!"
너무 쿨하다 못해, 차다.
희주는 "자 편지"
나는 떨렸다. 갑자기 온몸이 떨렸다.
희주는 "나중에 우리 대학 가면 다시 만나자. 그동안 고마웠어. 진욱이에게도 알려줘"
뒤도 안 돌아보고 들어가는 희주에게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민철이에게-
안녕 민철.
너 찐따인데 왜 만나냐 싶지?
나도 찐따였어.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일진이 되었지.
그러니까 나의 찐따의 시절은 키 160에 몸무게 100킬로.
웃기지?
여자들 사이에서는 돼지를 넘어서 흑돼지. 왜 흑돼지냐고?
내 얼굴이 좀 검잖아. 그래서 흑돼지.ㅋㅋㅋ
그러다 나는 독한 마음을 품고 50킬로를 감량하고 다시 태어나지, 신데렐라처럼 남자들이 다르게 보더라. 그래서 이놈 저놈 만나다가 일진을 남자친구로 두니 편하더라. 그래서 나도 따라서 일진이 되었고
담배나 술은 하지 않은 이유는 나의 훗날을 위해서.
종종 너의 찐따 이야기를 듣는데 다른 사람 같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늘 한 번은 봐야지 했는데 넌 몸이 좋은 아이로 있더라고, 아마 내가 살을 뺐던 것과 다르지 않았을까?.
고마웠어. 내가 진욱이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진욱이는 찐따를 모르니까.
잘 가 친구.-
이런, 편지에 찐따라는 이야기가 너무 나온다. 이미 이 여자는 나를 알고 있었다. 무서운 여자.
결국 진욱이에게 희주는 전학을 갔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진욱이는 나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진욱이 가방을 들어주는 다시 찐따의 삶으로 돌아가야 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운동하면 뭐 하냐?" 하며 놀렸고 다시 돌아온 찐따의 삶은 내가 다시 살아야 하는 말하지 않는 침묵의 삶이었다. 그렇게 내 중3의 세월은 갔다. 그리고 마지막 모의고사를 치르고 나는 근처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더 가열하게 운동했다. 하지만 문제는 가까이에 있었다. 집이 망했다. 아빠의 사업이 무너져서 엄마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았고 집도 은행에서 가져오라고 해서 언제 어떻게 길거리에 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두려움에 살아야 했다. 아빠는 술로 살았고 엄마는 잔소리를 하셨지만 공염불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쳤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건 많은 걸 의미했다. 학교에서 내어주는 급식이 반가울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