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집에 들어오시는 일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엄마는 술로 하루를 버티었고 어느 사이에 낯선 사람들이 우리 집을 장악했다. 학교를 다녀오면 늘 엄마 방에는 아주머니들 5명이 자기 집처럼 앉아서 화투를 치고 있었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무거운 공기를 깨트렸다. 공부를 할 수 없는 분위기였지만 그것도 적응이라고 날이 가면 갈수록 적응을 했다. 어쩌다 깨평을 주는 돈으로 용돈을 했고, 다 같이 시켜 먹는 자장면이 남으면 옆에서 얻어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았다.
그날이었다. 엄마는 한복을 차려입고는 아무 말씀 없이 쪽지를 남기시고 가셨다. 속으로 생각했다. 집을 나가려고 하시는 건가, 불안했다. 그날 나는 결국 엄마의 뒤를 밟았다.
엄마는 버스를 두 번이나 환승을 하셨고 충격이긴 했지만 엄마가 도착한 곳은 법원이었다. 겨울을 앞둔 찬바람을 맞으며 엄마는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2층을 거쳐 3층 한 방 앞으로 가셨다. 이런 가정법원 이혼서류를 앞두고 검사를 만나고 계신다.
우리 집안에 검사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엄마는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알 수 없었다. 최대한 귀를 벽에다 두고서 들으려고 했으나 들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한 아저씨가 "누구예요?" 정장을 차려입은 아저씨가 서류를 한 뭉치 들고 문제의 방앞에 섰다. 나는 "그러니까.. 저희 어머니가 저기 계시는데.. 저는 몰래.. 나와서.." 아저씨는 나를 이상하세 보시고는 "들어갑시다"
그렇게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저씨와 마주하게 되었다.
갑자기 들어가게 된 놀라운 상황에 엄마의 표정은 창백했다.
엄마는 "아니 네가 학교는 안 가고 왜?"
나는 "엄마가 쪽지를 남긴 건 초등학교 이후 처음이라.. 그리고 요즘 아빠 상황이 안 좋아서.."
검사 아저씨는 "아 네가 민철이구나, 이야기 많이 들었다."
알지도 못하는 아저씨는 씩 웃으시면서 내게 음료수를 건네시며 같이 들어온 아저씨에게 "계장님 우리 저 학생 음료수 좀 부탁드릴게요"
계장이라는 아저씨는 "네"라고 하시며 나가셨다.
"민철이는 그럼 고1인가?"
나는 '네"
검사 아저씨는 "나는 우정우, 아저씨는 검사고 아, 이렇게 이야기하면 좋겠다. 사법고시 알지? 그거 시험 쳐서 합격해서 여기 들어온 사람. 이거 공부하느라 꽤 힘들었지. 민철이는 법 좀 공부하고 싶니?"
뜻조차 이해가 안 된다.
"아뇨"
엄마는 "우리 민철이는 공부를 안 해서 아마 고시를 못 치를 겁니다. 제가 다른 게 아니라 애 아빠랑 가짜 이혼을 해야 우리 집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법을 일도 모르니 찾아뵙습니다. 도와주세요"
우정우 검사 아저씨는 "제가 해 드릴 수 있죠. 그런데 나중에 이게 발목을 잡아서 정말 이혼을 하실 수 있어요. 그런 거 마음에서 멀어지면 몸도 멀어진다고 부채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욱 해서 가짜 이혼을 하거든요, 그런데 진짜 이혼을 해서 애들하고도 멀어지고 나중에는 재혼을 다른 사람하고 해서 재산싸움을 해요. 신중하게 생각을 하시죠"
엄마는 "저야 생각을 많이 했는데 뻔한 집 살림에 이것밖에 답이 없어서요. 그래서 저도 어렵게 찾아뵈었네요. 저희 어머니가 우 검사님이 좋으시다고 이렇게 연결을 해주셔서.. 저희 어머니와 사촌 관계라고 하셔서 불쑥... 면목이 없습니다"
목이 타는지 물을 드시는 엄마에게 나는 "엄마 위장 이혼?"
엄마는 눈을 노려보면 "입 다물어"
그렇게 우검사와 엄마는 절차대로 위장이혼을 준비했고 난 어이없게도 엄마의 아들로 상속을 받는 유일한 혈육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이혼을 받아들였다. 엄마는 그날 이후 더 이상 화투를 치시지 않으셨고 당연히 우리 집에서는 낯선 아주머니들이 오시지 않으셨다. 매일 아침 엄마는 아침상을 차리시고 어디론가 가셨고 저녁이 다되어서 오시는 엄마는 매우 피곤해하셨다. 어딜 갔다 오냐고 물으면 엄마는 "어딜 갔다 오면 넌 이해하니?"라는 말로 쏘아붙여서 더 이상 묻는 게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정해져 있다는 생각에 괜히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날이었다. 주말도 일을 하는 엄마 뒤를 밟기로 했다. 406번 버스를 타고 엄마는 미친 듯이 졸려서 잠을 주무시고 다시 환승을 해서 어디론가 향하셨다. 그리고 내린 곳은 공사판이었다.
허허벌판에 공사판에는 많은 인부 아저씨들이 있었고 그곳에서 살짝 꺾으니 작은 사무실이 보였다.
그때였다.
"왔네"
어떤 아주머니가 엄마에게 인사를 나눴다.
"어 왔지, 오늘은 몇 인분이야?"
아주머니는 "같지 뭐, 늦었어 빨리 하자고"
이런 엄마는 함바집에서 밥을 하는 사람이었다.
괜히 이상한 상상을 한 내가 죄송했다.
엄마는 쌀을 씻고 밥을 하시고 반찬을 하셨다. 겨울인데도 땀을 흘려 가시며 일을 하셨고 나도 모르게 "엄마"라고 불렀다.
매우 놀란 엄마는 "여기를 어떻게..."
나는 솔직하게 말을 전했고 엄마는 알겠다 하시며 "우리 아들"
자랑은 쏙 빼고 오게 된 경위만 말하게 되어 머쓱하게 된 상황에 다들 웃으며 "야 아줌마들이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그리고 그런 그런 요사시한 일은 아무나 안 해..ㅋㅋ"
나는 "그게 아니라 저희 집이 너무 힘들어서요"
한 아주머니는 "그래 알겠다." 하시며 갑자기 "우리 인력이 더 필요하지 않아?"
엄마는 얼굴을 찡그리며 "에이 우리 아들은 힘이 없어" 단칼에 자르셨다.
난 "저 해 볼게요"
"나 정숙이 아줌마, 여기 함바집에서만 20년 베테랑, 어때 여기 식자재 운반일인데 겨울방학일 거 아니야? 그럼 한 번 해봐. 내가 신 씨 아저씨에게 이야기해 둘게. 해보고 힘들면 그만두고"
정숙이 아줌마는 내게 일을 권하셨지만 내내 못 마땅한 엄마는 "그러지 마 , 이제 고등학교라 공부해야 대학을 겨우 가는 아들이야"
정숙이 아줌마는 "우리 아들도 그랬어. 잠깐 3시간 일한다고 대학 못 가지는 않아. 안 그래 아들?"
나는 "네한 번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학교 담임 선생님 사인을 받고 엄마와 함께 오전 5시에 일어나 함바집으로 가서 신 씨 아저씨와 농수산 가락 시장으로 가서 식자재 운반을 시작했다.
신 씨 아저씨는 처음부터 호의적이셨다.
"어 네가 민철이구나, 이야기 들었다. 나는 신길도, 친하게 해 보자"
환하게 웃으시며 악수를 청하셨다. 난 90도로 인사를 하고 같이 트럭에 올라탔다.
아저씨는 "나도 너처럼 아들이 있었지, 그런데 너보다 그러니까 5살 많구나. 지금은 군대에 있어. 까까머리 군인, 지금 군대에 있는데 이 녀석이 이제는 어른이 됐지. 고등학교 때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속을 그리 썩이더니 그래도 이제 철이 좀 들었다고 편지도 쓰고 그런다"
나는 "좋이 시겠어요"
길도 아저씨는 "좋지, 부모는 자식 때문에 사는 거야. 자식 아니면 이 이른 아침에 배달은 왜 하고, 부모는 그렇거든. 처음에는 물론 아내가 예뻐서 결혼을 하지. 그런데 그게 얼마 안 가. 다 자식이 태어나면 그 의무감. 그 의무감으로 이렇게 새벽부터 일어나서 일을 하고 먹여 살린다 라는 생각밖에 안 한다. 너도 이게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나중에 장가가면 이 아저씨 이야기가 떠올를 거다. 허허허"
나는 "아저씨 저희 집은 사정이 있어서 부모님이 가짜 이혼을 하셨어요"
길도 아저씨는 순간 말을 멈추시고는 "그렇구나, 그런데 에이 걱정 말어. 내 친구 중에도 사업하다가 망해서 그런 친구 있는데 금방 성공해서 알토란 새끼 만나서 다시 잘 살아. 걱정 말아" 손에 핸들을 꺾으시며 나를 다독이셨다.
가락시장까지 다 오니 경매가 한창이었다.
아저씨는 내게 차 안에 있으라고 하시고 어디론가 가셨다. 그리고 20분 후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민철아 여기 5번이라고 적힌 곳으로 와라"
수많은 인파를 물리치고 간 곳에 이미 아저씨는 많은 물건을 경매로 입찰을 해 놓으셨다. 나와 아저씨는 물건을 담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와 사람 많네"
길도 아저씨는 "오늘따라 사람 엄청 많다. 요즘 경기가 안 좋다 안 좋다, 해도 사는 사람 많은 걸 보면 꼭 그러지는 않은 것 같다"
나와 아저씨는 함바집에 도착해서 물건을 정리하고 나니 벌써 9시 , 아주머니들은 "아니 오늘 좀 늦었네"
"아니 사람이 좀 많아야지, 그래도 최대한 온 거야" 길도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의 대화는 이어졌다.
엄마가 나를 찾았다.
"너 계속할 거니?"
나는 "아직은 좋은데?"
엄마는 한숨을 쉬며 "공부는 안 해?"
나는 "할게 하면서 할게, 솔직히 나는 엄마가 집에서 술 먹으면 가슴이 답답했어. 그런데 여기서 일하니 속이 뻥하고 뚫리는 기분이야. 엄마는 모르지.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됐어. 그만하자. 다 지난 이야기.."
엄마는 더 이상 채근하지 않으셨다.
겨울방학 내내 나는 길도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일을 배웠고 이게 내 첫 번째 아르바이트가 되었다.
새벽시장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서로 다른 물건을 경매하지만 같은 목적의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왜 사냐고 스스로 생각하며 삶의 의지를 묻겠지만 경매 시장에 가면 너무나 빠른 말들을 이해하며 자신의 삶의 여정을 물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사는 게 재미없는 사람은 경매시장을 가면 살아 있음을 느낄 것 일고 확신한다. 고등학생 생활은 그저 그랬다. 내 성적은 딱 중간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고 나는 겨울만 되면 길도 아저씨와 수산시장을 시작으로 경매를 다녔다. 새벽에 일어나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늦게 일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낳았다. 그렇게 마지막 고3은 길도 아저씨에게 공부를 해야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잠깐 쉬었다.
우리 학교는 성적을 복도 게시판에 붙여 놨다. 그래서 누가 몇 등을 했는지 알 수 있는 구조였다. 처음에는 폭력적이라는 생각에 학교에 반감이 들었다. 따지기도 했다. 돌아온 대답은 "억울하면 공부해"라는 말이었다. 학생인권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인권은 공부를 하고 따지는 거란다"라고 따박따박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 공부 못하는 내가 죄인이다'라는 생각에 자괴감 마저 들었다.
마지막 모의고사를 치르고 이제 수능이 남았다. 수능까지 딱 40일 진정성 있게 공부를 하고 싶어서 근처 독서실을 다니기로 했다. 엄마는 잘 생각했다며 매우 만족스러워하셨고 주위 친구들도 다들 스터디카페를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디데이 10일 때였다.
"그래 당신이 그렇게 될 줄 알았어. 그래 우리 이혼을 하자고, 그런데 처음 조건은 이게 아니었잖아"
엄마의 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나는 우리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사업도 당신이 조언을 했었지. 나는 그 사업을 하고 싶지 않았어. 잘 생각해 봐. 내 인생에서 당신이 내 삶에 얼마나 깊숙하게 관여했는지. "
이건 아빠의 목소리다. 그렇다. 아빠가 집에 왔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가려고 발을 떼었는데 목소리는 서로가 싸우는 목소리다. 그때였다. "나 여자 있어"
엄마는 "미쳤어!!!"
아빠는 "당신도 해외에서 몇 년 살아봐. 외로워. 그리고 이제 내 삶을 찾은 것 같아. 그 여자 임신 했어. 내 아이를 가졌다고. 이제 당신도 당신의 삶을 살아"
엄마는 "너 그러자고 나보고 위장 이혼 하자고 꼬드기고 그래도 나는 널 믿어 진짜 , 나는 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처음부터 너 나 이용했어"
아빠는 "나도 처음에는 이렇게 될 줄 몰랐어. 그런데 어쩌니 사업은 망했고 오갈 곳 없는 나를 받아 준 여자를 그럼 버리니?"
엄마는 "그럼 나와 민철이는 바보니? 민철이는 앞으로 아빠 없이 지내니?
아빠는 "민철이 이제 성인이야, 그러니 걱정 마. 남자들은 군대 갔다 오면 정신 차려. 그리고 나 없어도 민철이 잘 컸잖아. 당신이 잘해줘서. 그러니 이제 그만하자"
엄마는 "당신 미쳤구나? 그래 알았어. 그럼 이 집 우리에게 넘겨. 그리고 양육권도 내게 넘기고. 앞으로 나 죽었다고 오지도 말고. 민철이 결혼식에도 오지 마. 우리 일에는 절대 관여하지 마. 나는 우리 민철이만 보고 살 거니까. 알겠지?"
아빠는 "알겠어"
엄마는 장롱을 열더니 뭔가를 내놓으셨다. 그렇다. 그때 검사에게서 받은 자료들이었다.
"찍어"
아빠는 "여기" 이렇게 간단하게 끝날 인연이었나 싶게 아빠는 미련 없이 방문을 열었다.
"민철아"
아빠가 나를 불렀다.
나는 "아빠 가세요. 엄마는 제가 모실게요. 엄마 말씀처럼 이제 저 부르지 않으셨음 해요. 저도 사람이라 싫어요. 저와 엄마 정말 열심히 버티며 살았거든요"
아빠는 "미안하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은 상대를 지킬 수 있을 때나 쓰는 거예요"
엄마는 "가라고" 아빠의 등을 밀었다.
그렇게 가버린 아빠의 빈자리에서 엄마는 "민철아 밥이나 먹고 오자"
처음으로 엄마와 외식을 했다. 엄마는 뭐가 그리 배가 고프신지 음식을 4가지나 시키시고 중국집에서는 서비스로 군만두를 주신 것까지 다 드셨다. 엄마와 나는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서는 그것도 모자라 나와서는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또 먹었다. 엄마는 "민철아 우리 잘 살자"라고 하시며 내게 팔짱을 끼며 둘도 없는 모자관계를 형성했다.
이렇게 따뜻한 엄마였나 싶었다. 내가 중학교 찐따로 살았을 때도 학교 한 번 찾아가지 않은 독한 엄마였고 고등학교 때도 힘들었지만 뭐가 힘드니라고 물어본 적 없는 엄마였다. 그런데 엄마가 이렇게 나오니 나는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좋았다.
그날은 정말 평온하게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수능을 치렀고 결과는 경기도 근처의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생각한 것보다 점수는 잘 나왔지만 서울권이 아니라 다소 실망했다. 하지만 엄마는 학교가 중요한 게 아니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