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 인간관계는 정말 좋았다. 그냥 친구들과 학교에서 놀았다. 흙모래 운동장에서 고무줄을 했고 누가 누가 더 높이 고무줄을 할 수 있느냐가 권리를 가진 놀이를 하면서 나는 매일 그렇게 뛰어다녔다. 얼음 땡 놀이를 하면서 쉼 없이 뛰면서 살았던 그 시절은 동네가 우리를 키웠다. 지금처럼 봄기운이 완연하게 올 때 즈음이면 그래도 춥다며 꿀꿀이 슈퍼 아주머니는 따뜻한 호빵을 우리들에게 주시며 감기 조심하라고 하셨다. 추운 것도 아닌데 괜히 훌쩍이는 콧물을 훔치며 서로를 보면서 웃었고 그러다가 각자 집으로 가서 뜨끈한 밥을 먹는 시간에는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쫑알쫑알 이야기를 하면 어느덧 자야 하는 시간, 하루가 너무 빨라서 섭섭했다.
그러다 10대 후반으로 가면서 나는 고등학교 때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그냥 굳이 친구라는 단어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 흐르는 대로 살아보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그럼 마음 맞는 친구가 친구면 되는 거지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다 보니 내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친구는 학년에 한 명으로 족했다. 이 친구들은 대학교 때도 연결이 되어서 찐 친구가 되었다.
대학을 가서는 더 심했다. 중고등 단 한 번도 사춘기를 겪지 않았는데 대학에서 사춘기를 겪고서 나는 정말 혼자 다녔다. 친구가 밥을 먹자고 해도 그냥 혼자가 편해서 응 , 그래하면서도 혼자 다녔고 그러다 2학년 때 과가 결정이 되고 나서 그때는 친구와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밥을 먹었다. 여기까지는 평범했다.
그리고 서른이 되면서 우리는 각자 흩어지고 밥 먹고 산다는 이름하에 연락은 뜸해지고 결정적인 사건은 결혼이었다.
결혼은 분명 축하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여전히 연락을 하는 친구도 있지만 결혼을 하면서 헤어진 친구도 있다. 모르겠다. 처음에는 결혼해서 힘들구나 하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중에는 친구가 너무 힘들어지니 듣는 나도 힘들고 마땅한 대책이 없으니 내가 해줄 것도 없고 이래저래 멀어졌다.
그러다 안 좋은 소식을 들으면 결혼을 못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또 들어주는 건데 답은 될 수 없으니 뫼비우스띠였다. 결국은 친구도 그걸 알았을 때는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계속 이야기해서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인생은 혼자 사는 삶인지라 스스로 떠났다.
뜨문뜨문 연락을 하지만 그때마다 웃는 이모티콘을 나에게 보내주면 맞기를 바란다.
40대가 되고 나니 친구가 없다. 자랑이냐고 하면 자랑은 아니다. 그런데 확실한 건 있다. 결이 비슷한 사람은 남는다. 그래서 정말 나와 비슷한 사람은 남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찌하든 헤어진다는 거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더 많다. 그래서 내게 힘을 주신다.
가끔 물어본다. 삶이 힘들다. 사는 게 뭔가요? 답 없는 질문을 하면 경쾌하게 웃으시며 말씀을 주시는데 그게 그렇게 힘이 된다. 나도 안다. 삶에는 해답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어찌하든 내 삶에서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40이 되면 이성이든 감성이든 조용해지고 어디에도 부단히 조용해져 멋진 어른이 될 줄 알았다.
무슨 , 난 여전히 감정에 충실하고 이성에는 혼돈이 오는 나이이다.
철이 없다.
그래서 속상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책을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군가는 책으로도 결핍을 채울 수 없다고 한다. 알고 있다. 하지만 책이라도 읽지 않으면 각성 혹은 반성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끝내 놓을 수 없는 책을 사랑한다.
40대에 친구는 그냥 나 자신이다. 그래서 나 자신과 부단히 싸우고 화해를 하면서 산다.
너무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는다. 많다고 해서 그게 부러운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해서 쓸쓸해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럴까? 이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 그런가 보다이다.
타협일 수 있다. 하지만 빠른 타협은 아니다.
그래서 누가 40대 이후의 인간관계는 어때?라고 물으면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편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난 극 내향형 인간이다. 그래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