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에 사표 한 장은 품고 다닌다.

by 몽접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 아주 심각하게. 하루에도 열두 번은 울화통이 터지고 금요일이 되면 그나마 낳아지지만 토요일이 되면 마음이 우울해진다. 회사를 생각하면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관계에 답은 없지만 더 이상 호구로 살고 싶지 않아서 더 주먹을 꽉지며 사는 요즘이다. 사람은 왜 살아야 할까? 이 질문에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태어난 건 내 선택이 아니다. 그래서 난 내가 살아있는 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부지런히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번아웃이라 그런지 이직이 생각이 나서 잠시 쉬고 싶어서 여러 가지 파이를 생각하고 있다. 사람은 자기가 선을 그어 놓은 곳에서 벗어나면 힘든 법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 선을 깨 보려고 한다.


나는 초. 중. 고 모두 정확하게 학생으로 살았다. 문제없는 학생으로 그래서 재미없게 살았다. 대학을 가서 그 재미라는 걸 느끼려고 삐딱하게 살았고 그나마 숨을 쉬면서 살았다. 지금이 딱 그 선이다. 그 선을 깨고 잠시 쉬어서 살아 볼까 생각 중이다. 이직이 아니라 사표를 쓰면 어떻게 살까? 하다가 지인과 이야기를 하던 중 육체노동을 할까도 생각을 했다. 육체노동을 쉽게 봐서 한 생각은 절대 아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니 내 생각을 줄이기 위해서 몸을 괴롭히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류에서 벗어나 힘을 쓰고 단순 반복을 하면서 잠시 쉬어가자라는 생각에 휴직계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현실적인 방법이라 카드를 들어서 상담을 했는데 쉽지 않았다.


결국은 제자리, 그래서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지 나의 이 못나고 어리석은 분노에게 나를 자유롭게 해 줄지 몰라서 생각에 꼬리를 물어가며 살고 있다.

음식도 맛이 없고 물만 홀짝이며 살고 있다. 어제는 지인이 피자를 사주었다. 맛있다며 먹는데 쓰다.

모든 음식이 써서 먹을 수 없다. 스트레스가 쌓여서 폭발을 하면 남들은 음식을 그렇게 먹는다고 하는데 나는 반대이다. 결국은 그냥 뉴스를 멍하게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반복되는 일상에 갑자기 사표를 출력했다. 그리고 직접 써 봤다. 칸칸을 채우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이유는 뭐라고 해야 할지. 신변의 이유? 너무 단출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쉽지 않음을 알기에 역시 사표는 그림의 떡이다. 당장 내가 내일 사표를 쓴다면 한 달은 좋겠지만 그다음은 뭐 먹고살지 걱정을 할 내 미래가 그려지는 이유는 당연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겠지? 뭐 하고 지내니?라고 그러면 그때는 뭐라고 해야 하나 생각을 하면 뭐라도 하고는 있겠지만 그때의 내가 지금보다 나을까를 생각한다.

희번덕 거리는 마음은 마흔이 되어서도 고쳐지지 않아서 정말 스트레스이다.


아빠 엄마는 어떻게 정년퇴임을 하셨을까? 갑자기 생각이 났다. 분명히 사표를 쓰고 싶은 순간이 있었을 텐데. 그래서 난 잠시 그때로 돌아갔다. 가족이라는 틀에서 우리를 지키시려고 가셨을까? 그랬을 수도 누군가는 나에게 결혼을 하지 않아서 퇴사라는 카드를 생각할 수 있는 거라고 자식이라도 있으면 절대로 할 수 없다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준 직원도 있다. 그럴 수 있다.


자가에 사는 대기업 김 부장을 보면서 많이 웃고 많이 울었다. 별반 다를 것 없는 이야기를 보면서 사람들이 웃고 울었던 이유는 누구에게나 있는 이야기라서 많은 동감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그렇지 않을까 한다.

나는 오늘도 그림의 떡인 사표를 가슴에 품고서 내 사표는 내가 결정한다라는 위안을 삼으며 하루를 버틸까 한다.


내가 아는 선배가 사표를 썼었다. 그 선배가 사표를 낼 때 아주 멋있게 냈다. 사람들은 걱정을 했지만 선배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정리했고 주위에도 웃으며 자신의 사무용품을 나눔을 하고 파이어족을 외치시던 선배는 사표를 웃으며 내시며 "우리 거리에서 만나면 웃어요" 하며 정말 허리를 정직하게 펴시며 가셨다. 아주 치밀하고 밀도 있게 준비된 사표였다.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선배는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며 살았다고 다들 이야기했고 지금은 제주도에서 감귤 농장을 운영하며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살고 계신다. 가끔 연락을 드리면 웃으시며 제주도에 놀러 오라고 하신다.

인자하신 선배님이다.


그리고 내게 말씀하신다. 번아웃 아니, 쉬고 싶지 않아? 하고 끝에는 평생이라는 단어를 웃으시며 말씀하시면 나는 농담으로 농장에 취직시켜 주세요,라고 웃으며 되받아 친다. 그럼 선배는 좋지라고 하신다.

그래서 가끔은 제주도애서 살아가는 내 모습을 상상한 적도 있다.

친구가 제주도로 갔다. 그곳에서 글도 쓰고 요가 명상 학원을 열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친구는 서울에서 먹고사는 게 숨이 차다고 사표를 쓰더니 갑자기 제주도로 쉬려고 갔다가 아예 정착을 했고 올레길을 걸으며 자신의 삶은 자신이 결정하겠다며 제주도로 이사를 했다.


다시 선배, 그 선배님은 멋있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그래 저 모습이 맞아' 했던 때가 있었다.


나도 멋지게 사표를 쓰고 싶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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