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사 생활이 힘들어서 내 얼굴에서는 무표정에서 무거운 말들을 겨우 삼키면서 일만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파? 혹은 무슨 일 있어?라고 묻는다. 그럼 나는 마스크를 일부러 쓰고 있어서 아니라고 하면서 고개만 저으며 정말 스몰토크도 하지 않고 있다.
요즘은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아주 예전에 읽은 책에 의하면 내가 생각하는 아주 좋지 않은 걱정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난 어렸을 때부터 애어른으로 살았기 때문일까 걱정이 많다.
무엇보다 미리 걱정을 하고 일을 대비해야 한다는 성격인지라 지인은 제발 그 완벽주의 성향을 좀 지워달라고 한다. 나도 알고 있다. 나도 완벽주의로 살고 있다는 걸 최근에 더 알고서 이런 나 자신이 싫어서 좀 버리려고 노력을 하는데 습관이고 몸에 베인 것을 어떻게 한 번에 버리겠는가 싶어서 너무 화가 난다.
하지만 이것도 동전의 양면이다. 그래서 받아 드리려고 노력한다.
내가 힘든 건 타인일까 아니면 나 자신일까? 처음으로 이 생각을 한건 내가 거절을 못하는 건 분명 나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이고 인간관계가 문제가 있는 것은 유독 나에게만 , 이라는 단어가 앞에 나오는 건 타인에게 시선으로 가니 나는 억울하네 라는 서술어가 붙으니 내 슬픔은 타인으로 향하게 한다.
그래서 하루에도 열두 번은 내 힘들어함은 누구에게서 오는 걸까? 를 생각한다.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이 감정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엄마는 평소 손해 보는 삶을 살라고 하셨다. 그러면 언제 가는 돌려받는 삶을 산다고 하셨고 당신은 그렇게 살다 보니 마음이 편했다고 하셨다.
어릴 때는 그렇구나, 했는데 글쎄... 한 번을 두 번을 이렇게 여러 번 반복을 하니 쉽지 않다.
그래서 내 태도가 문제인가를 깊이 숙고를 하고서 한숨 대신 크게 숨을 쉬지 않고 있다가 한 번에 휴 하고 숨을 내쉬며 다시 현실을 파악하고 다시 일을 하고 이러길 여러 번 하면서 원인을 찾아야지 하면서 일을 하고 퇴근길에서도 명상 음악을 들으면서도 포기가 안 되는 문제의 원인을 찾는 나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니 이건 병인가 싶어서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부처는 모든 일은 자기에게서 시작한다고 했다. 물론 종교적인 의미에서는 뭐든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제는 일기를 쓰면서 생각했다. 모든 일이 내게서 시작이라면 그래 좀 태도를 바꿔서 생각하고 버티기로 했다면 더 열심히 버티고 최대한 나 자신을 아끼며 살아야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일어나지 않을 불행이라는 이야기들은 시뮬레이션을 하지 않고 만약 내게 떨어질 이야기들이 있다면 현명한 판단을 해서 생각을 하고 그 생생각이란 한 번 두 번 세 번을 해서 그 유명한 생각을 세 번 하면 살인도 면한다는 깊은 생각을 사유하면서 나를 아끼며 살아보려고 한다.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이라는 딜레마에도 너무 깊이 생각하면 비교할 것 같아서 하루하루 채우는 삶을 살기로 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다는 정의에도 이제는 묶여 살지 않기로 했다.
결론은 없다. 인생은 알 수 없고 내 불행은 타인이 될 수 있고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50대 50이다.
분명한 건 나의 후의 행동과 사유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좀 편하게 살아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