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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ul 18. 2022

돌아와 줘요, 꿀꿀이 슈퍼 최여사.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심수봉의 팬인 그녀, 늘 넉살 좋은 얼굴로 동네를 어루만졌던 꿀꿀이 슈퍼 주인아주머니. 이렇게 날이 더우면 서주 아이스크림은 늘 공짜였다. 부자였나고? 아니다. 가난했다. 남편은 마르고 아주머니는 꽤 덩치가 있으셨는데 아주머니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드시는 편이라 그걸 다 남편 탓이라고 말씀은 하셨지만 먹는 걸 좋아하시고 또 그걸 해서 돌리기도 잘하셨다.

지나간 복날, 난 복날이지만 닭을 먹지 않았다. 혼자 사니 복날이라는 개념보다 '아 더위 시작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던 꿀꿀이 슈퍼집의 초복은 정말 대환장 파티였다. 엄마들의 다들 한 마음 한뜻으로 "일찍 와라, 놀이터에서 놀지 말고 오늘 맛있는 거 먹는다" 이 말이면 대충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내가 5학년 때 즈음으로 기억한다. 무슨 닭을 사겠다고 각 집마다 돈을 분출을 했다.

엄마는 장롱 가장 높은 곳에서 손에 닿을까 말까 한 지갑에서 무려 만원을 꺼내서 꿀꿀이 슈퍼 아줌마에게 건네시며 "이거 진짜" 하시며 정말 애련한 모습으로 건네셨다. 그럼 아주머니는 "알지 알아, 그래서 내가 특별하게 이야기한 거 아니겠어, 날아  푸드덕. 아마 자기 키보다 더 클 거야.ㅋㅋㅋ"

난 그게 허풍 같았다. 그렇지만 엄마의 염원이 틀리지 않길 바랬다. 없는 집에서 만원을 내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날은 아빠의 자전거도 빨랐다. 다들 모인 꿀꿀이 슈퍼집 들마루에는 가마솥이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앉아서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가 나왔고 철 모르는 우리들은 공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른들은 잡아 온 닭을 보며 "실하다 실해, 그래 이렇게 닭을 키워야 해, 이게 닭이지" 하시면서 정말 좋아하셨고 꿀꿀이 슈퍼집 아주머니는 "아니 내가 특별하게 이야기해서 가져온 거야, 가니까 이미 사람들이 많이 있더라고" 사람들은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몇 마리의 닭을 가져오신 건지는 모르나 가마솥에 닭은 풍년이었다. 없는 살림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먹겠다고 기다리며 각자 집에서 가져온 반찬으로 또 손을 보탰다.


난 친구와 함께 공기놀이를 하고 꺾기와 돌려치기를 하면서 이미 공기의 달인이 되어서 왼손으로 하는 나에게 "야 넌 그냥 눈감고 해라" 하는 친구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했다.

꿀꿀이 슈퍼 아주머니는 "아이고 더워라 어른들은 맥주 마시고 애들은 사이다 마셔라" 하시며 내주시는 그 음료는 지금 내가 사 마시는 음료와는 급이 달랐다. 병으로 마시는 그 음료가 얼마나 맛있는지 엄마에게 그렇게 사달라고 해도 엄마는 "음료수 많이 마시면 치아 상한다" 하셔서 못 마셨는데 그날은 그렇게 마셨다. 콸콸 마시면 목까지 오는 그 알싸함에 "아 진짜 맛있다" 하면서 친구와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많이 마시지 말아라"하셨지만 어른들의 시선은 이미 술잔에 갔고 어떻게 고아진 닭은 큰 접시에 올려져 우리의 입맛도 당겼다.


뜨거운 닭에서 올라오는 그 연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노련한 아주머니들은 다리와 살을 분리했고 "애들부터 주자고"하시면서 최 씨 아저씨는 우리들에게 "많이 먹어라, 이것도 이때다. 한철이야" 하셨다. 그렇게 둘러앉아 우리는 먹었고 슈퍼집 아주머니는 우리들에게 사이다에 아이스크림을 그날은 무상으로 주셨다. 그래서 최 씨 아저씨는 "아니 이래서 거덜 나겠어" 하셨다. 그럼 아주머니는 "아이고 이렇게 거덜 나면 뭐 나는 거고 아니면 또 있겠지요" 하시면서 깔깔 웃으셨다.


가장 대미의 포인트는 노래자랑이었다. 나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의 춤추기 실력이 있으면 어른들은 재롱으로 보시고는 주머니에서 잔돈을 주시면서 "학교 끝나고 사 먹어라" 하고 주셨고 나처럼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들은 보면서 부러워하니 모른척하고 어른들은 "옆에 있었으니 같이 먹어라 "하시면서 공짜처럼 그렇게 돈을 주셨다. 난 받을까 말까 하고 망설이면 엄마는 "받아도 괜찮다" 하시면서 눈을 찔끔하셨다.

아빠도 "그래 받아라" 하셨다. 그렇게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면 이제 어른들 차례, 흥이 많은 아빠는 얼떨결에 사회를 보시고 엄마는 "자기는 좀.." 하면 아빠는 "이럴 때 사회를 보고 흥도 잡고 그러는 거지" 하시면서 사회를 보셨고 꿀꿀이 슈퍼 아주머니는 "그래 그러자고" 하시면서 흥을 돋우셨다.

노래를 한 소절씩 부르면 빈 접시에 젓가락에 숟가락 하나씩을 장착하고 하나둘씩 두드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점수는 아이들의 고함소리로 했는데 사실 점수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점수 더 받는다고 다리 하나 더 먹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저 그렇게 어렵게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어울려 사는 것이었다.


마지막 대미는 꿀꿀이 슈퍼집 아주머니 슈퍼스타였다. 심수봉을 사랑하는 아주머니 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부르셨다. 번번이 불러서 난 속으로 또 부르시겠지 했는데 참 신기한 건 부르실 때마다 다르다는 거다. 그래서 난 "참 신기하다, 그때는 감정이 이렇지는 않았는데"라고 하면 엄마는 "노래는 그때그때 다른 거야"라고 힌트를 주셨다.

그날도 "지가 한 소절 하겠십니더, 지는 다들 아시겠지만 심수봉 팬입니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잘 부탁하고 박수 많이 쳐주이소" 그렇게 남녀 할 것 없이 박수를 치면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노래를 부르셨다. 그러면 잠잠한 분위기에 노래에 취해 술을 드시는 분은 고개를 끄덕이셨고 여자들은 흥에 취해 고개를 흔드셨다.


난 그 분위기가 신기해 구경을 했다.

이런 꿀꿀이 슈퍼집 최여사가 얼마 전 심장 수술을 하셨다. 슈퍼집을 닫는다고 말들이 많았다. 이제는 나이가 있으니 닫으라는 사람과 아니다, 추억이니 노는 것도 일이라고 열고 있으라는 사람과 말이 많았다.

결정타는 그녀의 자식들이었다.

자식들은 엄마가 슈퍼문을 닫길 바랬다. 힘들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최여사는 "내는 아직 힘이 있다" 하시며 문을 열었다. 그러다 갑자기 심장이 안 좋아 잠깐 문을 닫았는데 사람들은 그 빈자리가 너무 허전해서 울었다.

이제 병원에서 퇴원하시고 다음 주부터 문을 다시 연다고 하셨다.


가난한 시절 내게 아무 내색 없이 "왔나, 오늘은 콩나물?" 하시면서 콩나물을 사면 눈깔사탕을 주시면서 "많이 먹어라" 하셨던 최여사, 난 그 최여사님이 그립다.

요즘은 다들 대형슈퍼이다. 그래서 동네 슈퍼가 없다. 아니면 편의점.

아, 아들들은 편의점으로 전향하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셨다. 그 감성에 그 시절이 그립다고 하루에 천 원을 팔아도 괜찮다고 , 이제 자식 다 결혼했는데 더 벌어서 뭣 하겠냐고 그냥 이렇게 동네 사람들하고 웃고 지내고 싶다고 고집해서 슈퍼집 아니 동네를 꽉 잡고 계셨다. 난 그 마음이 고마워서 고향에 가면 늘  인사를 드린다.


병원에 계신다는 연락을 받고 갔더니 초췌한 모습을 하신 아주머니는 뭐하러 왔냐며 역시 큰 손답게 병원에 작은 냉장고에서 먹을 것을 마구 주셨다.

난 "아니에요"라고 했지만 역시나 "무슨" 하시면서 난 "슈퍼 하셔야죠"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그럼 " 하시면서 웃으셨다.


난 사람들이 많았고 웃을 수 있었고 없이 살았지만 서로를 보듬고 살았던 그때가 참으로 기억에 많이 남는다.

누구 하나 아프면 다들 자기 일처럼 나섰던 그때 그 시절이 없었다면 내 글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돌아와주세요, 꿀꿀이 슈퍼 최여사님.


https://youtu.be/uRU58V_59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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