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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ul 20. 2022

사랑해요 , 선키스트 복숭아 통조림.

백도하면복숭아의 계절, 난 황도 백도하면 그냥 둘다 좋아한다. 이유는 어릴 때의 추억. 우리 집 근처에 복숭아를 크게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농협을 상대로 크게 밭을 넘기시는 분이 계셨다. 그리고 과실이 좋지 않으면 나머지는 동네 장사를 하셔서 우리 꿀꿀이 슈퍼 앞에서 큰 확성기로 "복숭아 사세요, 맛있고 튼실한 복숭아 사세요" 하며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복숭아 장사 아저씨가 오셨다. 


일단 이 아저씨가 오면 그날은 여름이라는 뜻이다. 아저씨는 흥이 많으셨다. 확성기에서 나오는 노래는 트롯이 전부였는데 알 수 없는 가사에 흥이 들어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잡았고 나같이 어린아이들은 그게 신기해서 아저씨 주머니에서 나오는 사탕을 받아 가며 "엄마 아저씨 오셨어" 하고 뛰어가면 엄마는 장바구니를 앞세우고 "가보자" 하시며 웃으시며 흥정을 하셨다. 


얼굴은 거뭇하시고 훤칠한 키에 입담은 누구와도 지지 않은 아저씨는 동네 매출에 혁혁한 공을 하는 노래로 아주머니들과 친하게 지내셨다. 별명이 참전용사 미스타리였다. 아저씨는 참전용사셨다. 그런데 다리에 총을 맞아서 절뚝이셨는데 평생 그것을 훈장으로 생각하시고 우리가 가면 그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이야기해주셔서 우리는 침을 꼴깍이면서 다음 편을 듣기 위해서 참고 참았던 이야기를 들었다.


한참 이야기가 무르익어 가면 아저씨는 "에이 안 되겠다 , 오늘은 여기까지" 이렇게 이야기하시면 동네 수철이는 "아저씨 이게 뭐예요. 다 이야기해주셔야지" 하면 아저씨는 "야 이놈아 복숭아 팔려고 왔지 이야기 팔려고 왔냐? 하시며 면박을 주셨지만 끝내는 좀 상한 복숭아를 건네주시면서 잘 먹어라" 하시며 아이들 머리를 만지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해였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전국에 재난이라고 했던 수해, 우리 동네도 다르지 않았다. 이러다 우리 집이 물에 뜨겠다 할 때 마침 고마운 비는 그쳐 줬고 우리는 손에 다 같이 물바가지를 들고 물을 퍼 날랐다. 다른 집들도 그랬다.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그렇게 허리가 휘는데 어느덧 오후를 향해 가고 각자의 집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을 때 왔다! 참전용사 미스타 리!

"왔어요 왔어 맛있는 복숭아 왔어요" 


난 "아저씨 저희 집 수해 날 뻔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심각한 표정을 하시고 동네를 한 바퀴 도시더니 "그렇구나 지대가 낮네" 하시며 다시 자리를 가시더니 나에게 바구니 20개를 주시며 하나씩 땅바닥에 두셨다. 난 그게 신기해서 "뭐하시게요?"라고 물었다. 아저씨는 "이렇게 사는 거다" 하시며 아저씨는 그 확성기 대신 트롯을 트시며 신나게 바구니에 복숭아를 담으셨다. 그리고는 내게 친구들을 모으라고 하셨다. 난 급히 달려가 친구들을 모아 아저씨가 부른다고 하자, 친구들은 "아 그 아저씨" 하면서 웃으면서 나왔다.


아저씨는 "민식이 나왔구나" 하면서 이름까지 다 외우시고는 "자 민식이 먹어라" 하시면서 바구니를 주셨다. 민식이는 어리둥절하면서 "저희 집 지금 돈이 없는데.." 하자 아저씨는 "보너스다 보너스" 하시면서 "인마 그냥 먹으라고 주는 거다" 하시며 그렇게 각자의 집에 복숭아를 돌리셨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다. 우리는 철없이 그렇게 받아 든 복숭아를 집에 들고 들어갔고 우리 엄마는 어디서 이런 복숭아를 받아 왔냐며 물으셨고 당연히 엄마는 돈을 내시겠다며 가셨지만 어느 사이 아저씨는 사라지셨다.


엄마와 동네 주민들은 꿀꿀이 슈퍼에 모여서 그 아저씨의 고마움을 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의논을 하셨는데 나중에는 그 아저씨가 참전용사이지만 홀로 사신 다는 걸 아시고는 다들 반찬을 해서 오실 때마다 손을 보태셨다. 아저씨는 그게 고마우셔서 "아이고 이거 받자고 오는 건 아닌데 고맙습니다" 하면서 받으시면서 영 어색해하셨지만 또 맛있어서 그 자리에서 식은 밥을 드셨다. 우리는 "아저씨 이야기해주세요"라고 하면 아저씨는 "그 이야기가 그렇게 나오는 게 아니야"라고 하면 우리는 시큰둥해서 돌아선다. 그럼 아저씨는 "다음에 해 줄게" 하며 웃으셨는데 그 미스타 리 아저씨는 오랫동안 우리 동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셨다.


엄마와 아빠는 복숭아를 오래 먹기 위해서 통조림을 만드셨다. 펄펄 끓는 가마솥에 넣어서 설탕을 넣어 통조림으로 만드셨는데 꼭 선키스트 병에다 하셨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내가 어렸을 때는 그 병이 그래도 나름 비싼 음료수 병이었다. 그래서 그 병에다 넣어서 조림을 해서 백도 황도 가릴 것 없이 하셔서 차갑게 넣어서 배가 고프거나 입이 심심하면 먹으라고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고된 노동이다.


없는 살림에 먹으려면 뭐든 노동이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야금야금 먹었다. 정말 달고 맛있는 통조림이 된 복숭아를 먹으면 과자도 필요 없었다. 당시에는 엄마가 집에서 아이스크림도 만드셨는데 그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과일이라 그런지 그 유혹은 대단했다. 


한 번은 너무 먹고 싶어 가족들이 다 자고 있는데 몰래 먹으려고 나갔다가 병 소리가 "뻥" 하고 나는 바람에 가족들이 일어나서 "아니 이 밤중에 뭐 하는 거야?"라고 아빠가 물으셔서 난감해했는데 아빠는 웃으시면서 "먹고 싶으면 말을 하지" 하시며 그 자리에서 난 아빠와 그 한 병을 다 먹었다. 물론 배가 엄청 불러서 자는 데는 힘들었다.


매해 일 년 농사를 짓는 것처럼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우리에게 통조림은 맛과 추억이었다. 미스타 리 아저씨에게도 맛보기를 드렸다. 아저씨는 맛이 좋으시다며 그 이유는 자기 과일이 좋아서 그런 거라고 하셨지만 난 내심 우리 엄마 아빠의 음식 솜씨가 깎이는 것 같아서 "우리 엄마가 잘하시는 거예요"라고 응수했다.

지나고 보니 난 꽤 쌀쌀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친구들과도 나눠 먹고 동네 사람들에게도 돌리고 그렇게 먹던 통조림은 내가 고등학교를 가고 그만두셨다. 그냥 슈퍼에서 사 먹는다. 그리고 이제는 자식들이 장가를 가고 각자의 가구를 이루고 있으니 직접 하시지 않는다. 난 그래도 그때의 과일의 맛이 생각이 나서 먹고 싶다는 말이 목에 까지 차지만 하지 않는다.


결국 난 지난주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  좀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과 비싼 것 두 종류로 해서 만들기로 돌입!! 품이 들어가는 음식, 땀을 내서 통조림을 한다는 게 선뜻 손은 가지 않았지만 설탕을 마시지는 말자며 조금만 넣자 했지만 음식의 간을 거의 하지 않은 우리 집의 특성상 난 결국 설탕은 최대한 배재하고 만들어봤다. 선키스트 병은 구하지 못했지만 그리고 그때의 맛은 아니었지만 올여름 내가 직접 만든 통조림은 아마 올해 여름의 대미를 장식할 것 같다. 동영상을 보며 얼치기로 만들었지만 나름 뿌듯한 결과에 엄마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냈고 엄마는 웃음으로 화답하셨다.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난 나름 만족하며 식빵과 함께 먹었다. 오래오래 두고 먹을 통조림에 벌써 므흣하다. 




선키스트 복숭아 통조림은 내 인생에서 여름에 팔 할은 차지한 음식이었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아마 많이 먹을 것이다. 사랑해요, 선키스트 복숭아 통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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