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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ul 22. 2022

제 직장의 환영식은 커피믹스로 했습니다.

복직했다. 한지 며칠 되었다. 역시 자리는 깨끗하다. 비품들도 그대로 달라진 건 없다. 사람들의 뜬금없는 환영식에 난감했다. 이렇게 내가 인싸였나 싶었다. 일단 원장실을 들렸다.

뭔가 묵직한 분위기 알고 보니 벽에 그림이 바뀌었다.

연구원장님은 서예를 하시는 분이다. 낙관을 찍어서 직접 작품을 만드시는데 바뀌었다.

여름이라고 수묵화를 한 점 걸어 놓으셨다.

잠시 주춤거리고 얼마 있지 않아 , 연구원장님이 들어오셨다.

난 인사를 공손하게 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하지만 연구원장님은 얼마 전 중국을 다녀오셨다며 차 자랑을 하실 요량으로 나를 앉으라고 하셨다. 어색한 자리이지만 난 최대한 웃으며 앉았다.


"그래 쉬어 보니 어때?"

연구원장님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난 "그냥 쉬는 것도 쉬는 사람이 하나 봅니다. 어려웠습니다."

연구장님" 하루 종일 책만 봤지?"

 난 "아뇨, 그냥 놀았습니다."

연구원장님"자네가? 아니지 아니지, 내가 아는 자네는 활자 중독자야, 늘 책을 읽고 있어서 아마 책을 보고 있는데 몰랐을 거야"

난 "사실 집 근처에 작은 책방을 운영하시는 분이 계셔서 그곳에 머무르는 시간이 좀 많았습니다. 보기 좋더라고요. 무료로 운영을 하시는데 부럽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기도 하고요"

연구원장님은 " 그렇지 좋지. 그런데 말이야. 책이 어떨 땐 발목을 잡아, 조심하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호랑이 사수가 들어오셨다.

난 눈인사를 하며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호랑이 사수는 "원장님 다음 주 콘퍼런스입니다" 하며 완성본 결제를 올렸다.


연구원장님은 웃으시며 "아니 이제 자네 팀이 완성이라 자네는 놀겠어?"

호랑이 사수는 "이제 쉴 것 같습니다. 하하"

난 그 웃음이 또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잠깐 쉬었던 뇌가 다시 돌아왔다.

이어진 폭탄급의 소리, "아 그러지 말고 이번에 같이 가, 출장"

난 "네?"


내 표정이 너무 안 좋아 보였는지 연구원장님은 "아직도 호랑이 사수가 무서워?"

난 "아니 저 방금 복직했는데요?"

연구원장님은 그게 뭐 대수냐며 "아니 뭐 그때도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했잖아, 뭐가 문제지?"

난 "아니 저.."

호랑이 사수는 "네 알겠습니다, 제가 정신 바짝 들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난 끌려 나갔다.


자리에 앉아서 지나간 내 일들이 떠올랐다.

생각하면 내가 왜 돌아왔는가를 떠올렸는데 다 내가 시작하고 내가 끝을 맺은 거다.

그런데 복직하자마자 콘퍼런스다, 가혹하다 못해 이건 뭐라고 형용할 수 없었다.

점심시간, 기수들은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내게 권한 건 믹스커피였다.

난 "아 지겨운데 그걸 또 먹어?"

동기는 "야 우리 이거 없었으면 여기 없어" 하면서 웃으며 내게 권했다.

난 "맞다 맞아"

하며 내게 산더미로 있는 자료들을 보며 내 자리가 복직이라는 인사를 하는 곳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 난 복직 했다.

그리고 처음 받은 선물이 믹스커피이다.


내가 사회생활하면서 물 다음 많이 마신 게 아마 믹스커피 아이스커피 일 것이다. 커피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나 할 때 즈음 연차가 생겼고 그때 즈음 난 슬럼프가 왔고 그때가 지나갔을 때 몸에 신호가 왔고 그리고 쉬었고 지금의 내가 있다.

다들 지겹다 하지만 비품실에 있는 다양한 믹스커피들은 늘 환영이다. 그래서 어떤 연구원은 "내가 어떨 때 보면 이 커피믹스 마시려고 다니는 거 같아"라고 자조 어린 이야기를 했다.

누구나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이야기를 했다. 나도 다르지 않다. 커피의 완성도는 정말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마시면 거짓말처럼 잠도 달아나고 단맛에 감정도 풀리고 앞으로 이 녀석과 또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나같이 노는 것도 못하는 사람은 일이 좋아요는 아니지만 엄마의 말씀 때문인가, 평생 성실하게 살아라를 노래를 부르셨다. 얼마를 버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벌고 어떻게 쉬는가가 중요하다. 성실하게 살아라를 말씀하셔서 이번 휴직 사건은 휴지가 되어서 반은 날아갔지만 난 그래도 후회는 없다.


반갑게 맞이해준 동기들에게 고맙고 내 자리가 있다는 게 고맙다.

그리고 연구원장님의 차가 감사하다.

다시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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