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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Aug 10. 2022

우리 할머니의 영어는 매니매니 찹찹.

우리 할머니의 연세는 70이 넘어 80세가 거의 가깝다. 일제강점기를 거치신 분이시다. 그래서 많은 사연을 담고 계신다. 남들은 성격이 억세다고 하시지만 가까이서 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없는 살림에 동생만 6명을 거느리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그 힘든 삶을 사시다가 밭농사 논농사 마다하지 않으시고 결국은 그 땅을 밟지 않으면 안 되는 부자가 되셨다. 할아버지는 수의사셨다. 지금은 노인성 치매로 하루에도 열두 번은 울화가 치밀거나 사람을 식별하지 못하셔서 최근까지 할머니가 수발을 드셨지만 저러다 할머니까지 힘들어지신다고 할머니의 건강을 위해 할아버지는 병원에 모셔 있다.

물론 할머니는 반대를 하셨다. 병원이 자신만 못하다는 게 지론이셔서 엄청 싸웠다. 결국 할머니는 자식들의 의견에 백기를 드셨다.


난 할머니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다. 할머니는 음식에도 깐깐하시고 예의범절에도 깐깐하시다. 그리고 매우 인간적이시다. 할머니를 모르는 사람은 할머니가 그냥 예민하다고 하시는데 그도 그렇지 않다. 음식을 하시면 손이 크셔서 주변에 돌리시 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시면 누구보다 일찍 도와주신다.

이런 할머니는 영어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시다.


처음에는 난 귀를 의심했다.

썰은 이렇다. 내가 어렸을 때 밥을 잘 안 먹고 돌아다녔다. 그럼 할머니는 내 이름을 부르시며 "몽접아 매니 매니 찹찹" 하시며 죽을 내 입에 넣어주셨다.

난 그게 이상해서 "할머니 무슨 뜻이야?"라고 물으면 할머니는 "응 이게 영어여. 할머니가 일제 시대 때 배운 영어. 수많은 영어가 있는데 할머니는 이게 생각이 나는구나" 하시며 웃으셨다.


그리고 이 영어는 우리 집안의 공식 영어가 되어서 할머니는 흥이 나시면 식사를 하실 때 "자 다들 떡국을 매니 매니 찹찹" 하시면서 한술을 드신다. 며느리들은 웃음이 나고 우리는 "에이 할머니 그게 뭐야" 하면 할머니는 "할미가 다른 건 몰라도 이 영어는 확실히 기억 혀, 이 할미의 기억력을 시방 시험하는가?"

그때  손자는 "할머니 영어학원에서 못 들어본 거야"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그럼 그 영어학원 끊어"라고 하셔서 다 같이 웃은 적이 있다.


할머니 댁은 이제 동남아시아 여성이 많이 있다. 그래서 외국어가 일상적이다. 저번 용식이 할머니와의 일대일 선거전이 있은 후 동네에서는 물국수를 해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다 같이 먹었는데 외국인 며느리들도 참여를 해서 훈훈한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때 용식이 어르신의 며느리가 말레시아 여성분인데 할머니는 역시 그분에게 "매니 매니 찹찹"이라고 하셨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시면서 할머니는 결국 "많이 드시라고" 하니 그 여성분은 "아 알겠어요"라고 어색한 한국어 발음을 하시며  웃음으로 답하셨단다.

할머니는 어디서 매니 매니 찹찹을 배우셨을까?, 할머니께 다시 여쭤봤는데 할머니 기억에는 천막에서 일제강점기 때 배우신 영어라고 하신다. 그 수많은 대화 속에서 할머니는 그 영어가 계속 기억에 남는다고 하신다.

그래서 난 신기하다고 했고 할머니는 여전히 우리에게 뭔가를 먹을 때 "매니 매니 찹찹"이라고 하신다.


흥 많으신 우리 할머니 늘 "찹찹" 하시면서 음식을 만드시고 주시고 그래서 그럴까 우리도 이제는 "찹찹" 하면서 먹는다. 그럼 할머니는 그 모습이 좋으신지 "그래 많이들 먹어라" 하시면서 웃음을 보이신다.


영어 사전을 찾아봤다. 찹찹이라고 하니 "빨리빨리"였다.

그러니까 많은걸 빨리빨리, 라는 뜻인데 일제강점기에 배우셨으니 노동력을 빨리빨리 해라는 뜻으로 배우신 건지 아니면 시간 없으니 빨리 먹어라고 배우신 건지 잘 모르겠으나 있긴 있다. 참 신기했다.

할머니의 찹찹은 어떻게든 등록된 단어이긴 하다.


그래서 난 할머니에게 보여드렸다.

할머니는 웃으시면서 "내가 시방 너에게 거짓말하겠어" 하시면서 걸음을 재촉하셨다.

난 웃으며 "역시 우리 할머니라니께"

하며 할머니 옆구리를 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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