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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Feb 08. 2023

은행으로 가시죠!

때는 한참 추웠던 날이었다. 바깥 체감 기온이 영하 20도라고 뉴스는 도배를 하고 있었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나는 그날도 집에서 가까운 무인 커피가게를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우리 집에서 5분 거리, 그 자리에는 원래 문구점이 있었던 자리였다.


바로 앞이 초등학교라 딱 좋았는데 어쩌다 없어졌는지 갈 때마다 한자리에서 500원 넣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의 낭만도 사라지고 무인가게점이 들어섰다. 한동안 빈 공간으로 사람들은 저기에 뭐가 들어설까 했는데 무인카페가 들어섰다. 나에게는 낯선 공간, 그러나 사람들은 한 명 한 명 들어섰고 나도 자세히 읽어보고 이용하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는 현금은 결제가 안된다. 그래서 카드만 사용이 가능하다.


그날도 그랬다.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너무 추워서였을까 사람이 없었다. 난 속으로 '앗싸'를 외치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리고 지갑을 들고 나왔다.

이제 문제는 그다음 날 발생했다. 난 늘 아침에는 꼭 물 한잔을 마셔야 한다. 일종의 루틴인데 물을 마시지 않으면 너무 목이 말라서 일이 안된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빈통이다. 어쩔 수 없이 난 편의점으로 가서 물을 사기로 했다. 도착해서 익숙하게 물통을 계산하려고 보니 잔돈도 없고 지폐도 없다. 그럼 카드를 써야지 했는데 이런 카드가 없다. 당황한 나는 "죄송합니다. 카드가 없네요" 점주님은 "그런 경우 많아요. 찾아보시고 오세요"라고 서로 웃으며 헤어졌다.


난 순간 너무 아찔한 상황이라 집에 도착해서 전날에 입었던 옷과 가방을 뒤집어 봤다. 그러나 없었다. 이때부터 손이 떨렸다. 그 카드에는 단순히 몇십만 원이 들어 있는 게 아니었다. 다음날 적금을 들려고 몇백만 원이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난 일단 직장에 전화를 했다. 당일 결근 신청을 했다. 동료에게는 이야기를 했고 내용은 그냥 감기 몸살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온 방을 다 뒤졌다. 결국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난 한숨을 내쉬며 기억을 더듬었다.

마지막 카드를 언제 썼을까? 그렇다.

바로 무인 카페였다. 난 내질렀다. 급하게 갔다. 그런데 카드가 없다.

난 거의 울음이 터졌다. 그런데 폰 번호가 있었다. 그렇다. 운영자 전화번호였다.

난 급한 마음에 전화를 했다.


걸리는 신호음이 길어졌다. 발을 동동 거리며 기다리는데 남자분의 음성이 들렸다.

"여보세요"

난 "어.. 저기 어제 저 여기서 커피를 마시고 카드를 두고 간 것 같습니다. 혹시 카드가 있을까요?"

주인은 "보관 중인 카드가 있긴 있어요, 혹시 어느 회사일까요?"

난 "농협요"

주인은 "어디시죠?"

난"지금 무인카페입니다"

주인은"그러시군요, 제가 지금 가는 길입니다. 기다리시죠."

그렇게 지옥 같은 10분을 기다렸다.


주인분도 뛰어 오셨다.

"아이고 마음이 타셨겠다."

난"네.."

주인분은 "여기에 가끔 카드를 두고 가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 저희도 이렇게 cctv를 달아 놓고 보기도 하고 그렇죠."

난 "네"

주인아저씨는 카드를 보여주셨다.

그랬다.

"저 이거예요"

아저씨는 "저기 앉아서 이야기 좀.."

난감했다.


아저씨는 "뭐 드실래요?"

떨리는 마음에 난 "아니 전 생각이 없어서.."

아저씨는 "그럼 아메리카노를.." 하시며 나에게 권해주셨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사실은 몇 주 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여기에 카드를 놓고 가신 분이 계셨죠. 그래서 그분이 카드 주인이라고 드렸죠. 믿고 드린 거죠. 그런데 얼마 안 있다가 카드를 놓고 갔다고 전화가 오는 거예요. 그때 카드는 하나였거든요. 그래서 무슨 말씀이냐, 카드를 주인에게 드렸는데"

난"네"

주인아저씨는 음료수를 드시며 "너무 당황스러워서 제가 말씀을 드리니 자기가 진짜 주인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진짜라는 사람이 확인도 안 하고 카드를 넘겼다고 화를 내더라고요. 그런데 반전은 정말 제가 주인이 아닌 사람에게 준거죠. 전 믿고 드린 건데. 그때 제가 은행에서 확인을 했었어야 했는데 못한 거죠.

그래서 죄송하지만 저랑 은행에 가주셔야 할 것 같아요. 저야 믿죠. 그런데 저도 경험이 있었던 터라"


난 "네"

그렇게 난 그 주인분과 같이 은행에 갔다.'

그리고 은행에서 간단한 절차를 밟고 내 것임을 인증을 받았다.

주인분은 "번거로우셨을 텐데 감사합니다" 하시며 악수를 청하셨고 난 감사하다고 역시 악수에 진심을 담아 인사를 드렸다.


주인분은 "이 무인카페 하면서 별별일이 있네요"

난"이렇게 찾게 돼서 정말 좋네요"

주인분은 "그러게요. 아이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렇게 난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날은 정말 힘이 다 빠졌다.

뭘 해도 안 될 것 같아서 이불을 동동 싸매며 어제의 일을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난 이제 무인카페를 이용하지 않는다.

악몽을 다시 복귀하고 싶지 않아서다.


난생처음으로 내 카드를 확인하려고 은행을 가고 마치 내가 돈을 훔친 것도 아닌데 경찰서를 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장님 말씀도 일리가 있었다. 결국은 카드를 찾았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에 결국 그날은 엉엉 울었다. 사장님은 그게 맘에 걸리셨는지 내가 집에 도착했을 즈음에 다시 한번 전화를 주시고는 "감사했어요, 그리고 다시는 카드 잃어버리지 마세요" 하시며 전화로 응원을 해주셨다. 살면서 참 많은 일을 겪는데 나 같은 경우는 잘 안 잃어버리는 쪽이다. 지금 사용하는 카드 지갑도 10년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카드를 놓고 오니 사람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싶어서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습관이 하나 생겼다. 늘 지폐를 챙기는 일이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카드는 아직 내게는 불편하다. 그래서 오늘도 지폐를 몇 장 챙겨서 계산을 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끔찍한 악몽이지만 뭐든 경험은 버릴 것이 없다고 그 일을 이후로 꼼꼼하게 지갑을 챙기는 일상이 되었다.


아, 그 무인카페는 더 잘 되고 있다. 그래서 흐뭇하다. 내가 겪은 일 이후로 더 많은 감시 카메라가 달렸고 음료수도 다양해졌다. 그러나 아직은 현금결제가 안 돼서 못 가고 있지만 언젠가 현금결제가 된다면 맛있는 음료수를 먹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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