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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an 17. 2024

엄마는 내 나이에 자식을 둘이나 키웠네.

소멸과 생성의 수수께끼.

나이가 들면서 어떻게 늙어야 하는가가 고민이 된다. 어릴 때 그러니까 중학교즈음일 것이다. 라디오를 즐겨 들었다. 내가 사는 지방에는 딱 3곳에 라디오가 전파되었는데 내가 들은 라디오는 kbs관현악이 가장 많이 나오는 라디오 주파수였다. 아무 대사가 없는 관현악을 들으며 공부를 하면 일자무식인 내게는 그저 몰입이 되어 눈물이 나 웃음이나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었고 가끔 사연을 읽어 주는 형식에 프로가 나오면 나는 웃었다. 그 웃음은 기대였고 불안이었다.


라디오 디제이는 이렇게 말했다. " 음... 저는 서른인데 아무것도 해 놓은 게 없어서 걱정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주셨어요. 똑똑히 기억한다. 나는 그때 나이 중학교, 그때 나의 생각은 아마도 나는 서른이면 세상에서 희로애락은 넘어갈 것이고 문학에서 보는 사람들의 구경거리들에 인생사 접어가며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른이면 멋진 커리우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른이 되기 전 29살 난 하나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고 흔히들 말하는 계란 한 판은 그렇게 채워져 나갔다.


며칠 전 조카의 학교에 갈 일이 있었다. 여동생이 부탁을 했다. 조카가 요즘 학교 등원을 하고 체육관을 가야 하는데 아파서 집에 가야 하니 부탁을 한 것이다. 나도 여의치 않아서 반차를 쓰고 조카 학교를 갔다. 운동장에서 뛰어나오는데 조카를 보니 다른 학부모는 내가 조카에 부모인 줄 알고 말을 걸어온 부모도 있었다. 난 웃으며 조카라고 했다.


조카는 많이 아파했고 결국은 밥을 먹고 잠이 들며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나는 어떤 노인이 되어야 할까. 학교 앞에는 젊은 부부도 있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셨다. 속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모습을 생각했다. 내가 저분들 나이까지 살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노인으로 살아야 할까. 평소 생각이라면 나는 그저 푼푼한 편한 할머니로 늙고 싶을 뿐이지만 별다른 일이 아닌 것에 아직도 화를 내고 희로애락에 자유롭지 못하니 나이 듦이 쉽지 않다.


 박완서 선생님에 글  소멸과 생명의 수수께끼에서는

나도 늙어가고 있고 곧 노인 소리를 듣게 되리라는 걸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자주 의식하게 되고부터인 것 같다. 행복한 노인도 슬프긴 마찬가지이다. 특히 노인잔치나 관광 여행이나 장수 무대 등에 나와 활짝 웃는 노인을 보면 더욱 슬퍼진다. 노인들이 너무 천진해서, 그리고 그들의 행복이 일시적이고 어딘지 내보이기 위해 과장된 것처럼 보이는 게 슬프다.


나는 엄마를 보면 이런 감정이 든다. 엄마는 늘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하신다. 그리고 희생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자처하시는 모습을 보면 언제까지 살아야 엄마라는 직업을 놓을 수 있을까, 를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 모습을 보면서 늙음이라는 단어에서 나도 엄마처럼 그저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자연의 순리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분개하거나 슬퍼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늙는다는 것은 그리 단순하지 않기에 많은 것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나라 말에 나이가 들면 자신에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래서 지금부터 나이 듦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쓸쓸함 그리고 침묵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공허함에 대한 늙음에 대해서 좀 더 고찰해보려고 한다.



지금 인용한 책은 박완서 선생님 책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라는 에세이집에서 글을 썼습니다.

개인적으로 박완서 선생님 정말 좋아합니다. 글을 쓰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늦게 등단하여 글을 쓰셨고 뒷심 있는 작가로 알리셨죠. 그래서 전 남자작가들이 말하는 장편소설에서 뒷심이라는 단어를 박완서 선생님에게서 봤습니다. 물론 저 같은 얼치기는 감히 엄두도 못 내지만요. 박완서 선생님의 글 에세이는 정말 착하디 착한 글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화를 낼 수 없는 글을 화도 있지만 그것을 어찌하면 잘 풀어서 글을 써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글이었습니다. 에세이란 작가에게 매우 희소성이 있는 글이라고 들었습니다. 소설을 쓸 때 에세이에 언급되는 부분이 들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일부러 에세이를 꺼리는 작가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박완서 에세이를 보면 그런 부분들이 있습니다. 왜 싱아라는 부분을 언급했는가, 에 대해서도 아주 솔직 담백하게 쓰셨습니다. 이 책을 보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글을 썼는지 매우 자세하게 인생에 한 편을 볼 수 있습니다.

바쁜 새해 시작인데 에세이 한 편으로는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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