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을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시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시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대학을 입학했을 때 기형도 열풍이 불었고 인문 교양 프로그램에서는 생애를 조명하며 더 깊이 있게 시를 해석하려고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처음 이 시인에 글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쓸쓸함과 차가운 겨울에 느낄 수 있는 스산함에 대해서 촉각적 감상이 일차적이었다면 읽으면 읽을수록 살고 싶다는 인간에 대한 본능을 느꼈다. 시를 다 읽고 나서 평론도 읽었다. 기형도에 관한 일화도 있고 많지 않은 이야기들이 회자가 되면서 시를 평론하는 사람들은 해석이 달랐다. 난 시를 해석하는 부분에서는 그 사람의 생애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글과 삶은 다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몇 회독을 하고 다시 시를 읽었을 때는 매우 담담하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며칠 전 시집을 정리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시집을 읽고서 담담하게 읽는다는 건 나이가 들었다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시란 나이가 들어서 읽으면 또 맛이 달라진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이 시를 올려본다.
질투는 나의 힘, 마지막 행에 /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난 이 문장이 압권이라고 생각한다.
난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마도 내가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