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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Feb 11. 2022

엄마가 보고 싶을 땐 김밥을 싼다.

겨울을 관통하고 봄이 온다는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도 겨울이다. 난 겨울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수족 냉증을 달고 살아서 겨울이 주는 즐거움에 아픔도 함께 하니 신은 참 공평하다. 대학을 미끼로 서울로 온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간다. 어떤 친구들은 직장을 버리고 공무원 시험을 쳐서 고향으로 갔고 어떤 친구는 자영업을 하겠다고 고향으로 갔다. 지난 설 명절 친구들을 만나 간단한 대화를 했다. 만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를 떠나 고향이 주는 의미는 참으로 컸다. 서울에 살면서 느꼈을 그 차이에 대한 서먹함이 없는 고향이야 어서 와,라고 반겨주는 그 마음이 좋아서 친구들은 얼마를 벌어도 상관없이 부모님이 해 주시는 밥을 먹으며 살고 있다는 것에 큰 점수를 주고 우리의 기억과 추억을 여전히 지켜주는 고향에 대해 이제는 갚으며 살아야겠다며 봉사활동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도 기회가 된다면 이제는 고향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커피잔보다 뜨거운 인사에 난 눈물이 났고 친구들은 "왜 울고 그래"라는 말로 위안을 주었다.

그리고 난 순간, '그래 나도 내려가자'라는 말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직업상 난 고향에 가도 할 일이 없어서 아마 간다면 자영업일 텐데 내 성격으로는 아마 얼마 못 버틸게 뻔하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김밥을 쌌다. 가난한 우리 집에서 김밥은 특별했다. 소풍이나 생일에나 먹었는데 언젠가부터 김밥은 일상이었다. 두 분 다 공무원이셨지만 아빠의 너그러운 마음에 그 당시 보증을 줄줄이 써주면서 사람들은 하나씩 연락이 안 됐고 우리 집은 경매로 넘어가기 직전에 외갓집에서 겨우 구해주셨다. 그리고 엄마 아빠는 투잡을 하셨다. 그러다 보니 집에는 늘 엄마 아빠는 늦게 들어오셨고 특별한 김밥은 늘 먹는 김밥이 되었다. 들어가는 재료야 뻔했다. 단무지 우엉 맛살이 전부였다. 처음에는 나와 여동생은 김밥이 맛있었다. 참기름에 들어간 밥이니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것도 일주일 한 달이 되면 질린다. 하지만 그걸 질린다라는 동사를 쓰기에는 부모님께 죄송했다. 엄마는 너무 바쁘면 썰어 놓고 가시지도 못해서 작은 엽서로 잘게 썰어서 먹어라라는 엽서로 대신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끼니를 때우고 살았다. 가난했던 우리에게 위로가 되었던 김밥은 이제 난 엄마가 보고 싶으면 김밥을 싼다. 


어느 동네나 하나씩 있는 천국으로 간다는 김밥 가게에 가서 한 줄 먹으면 더 싸다. 하지만 엄마가 보고 싶으면 엄마가 싼 것처럼 맛은 안 나지만 그래도 참기름 밥에 김 한 장 넣어서 재료 넣어서 돌돌 감아서 김밥을 먹으면 엄마가 옆에 계시는 것 같아서 좋다. 귀신같은 엄마는 전화를 해주셨다. "뭐해?" 목이 매여 "응 밥" 엄마는 "겨울에는 국이야, 국" 난 "응"이라고 끊고 속으로 '국 좋지 그런데 재료가 없고 귀찮네'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난 김밥을 썰어서 얼마나 먹은지도 모르고 먹으며 엄마를 생각하며 엄마는 어떤 심정으로 김밥을 싸셨을까? 잠시 추억에 젖었다. 가난했던 그 시절을 늘 "잘 버티자"하며 구호처럼 말하던 엄마는 지금도 아낀다고 바리바리 물건을 넣으시며 버리지 못한 습관으로 항상 집은 꽉 차있다. 추억을 생각하며 한 줄 엄마 생각하며 한 줄 그렇게 먹은 한 줄로 난 남은 김밥은 냉장고에 넣으며

엄마를 생각하며 다시 전화를 걸어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전화를 했다. 무심한 엄마는 "무슨.."이라고 하셨지만 목소리는 따뜻하셨다. 난 엄마가 그리우면 김밥을 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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