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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Nov 11. 2024

우리 집은 방문판매의 성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싶은데 우리 집은 방문판매원들의 성지였다. 

특히 출판사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지였다. 


예를 들면 금성 출판사 같은 경우는 한 달에 한 번씩 와서 새로 나온 전집이 있으면 엄마에게 제일 먼저 오셔서 "어머니 이게 새 책인데 정말 좋습니다. 그림 보시면 참.." 하면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엄마는 옆에서 자세히 보시면서 "이번에 새로 나온 거예요?"라고 다시 말씀을 하셨고 아저씨는 "제가 여기 한 두 번 옵니까?" 하면서 이야기를 끌면 엄마는 "잠시만요" 그렇게 내가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 어느 사이에 집에 아주머니들이 정말 많이 오셨다. 


그리고 다들 책을 구경하셨고 아저씨는 이렇게 쌀쌀한 날씨가 되면 " 어머니 차 한 잔 부탁드립니다"라고 시작을 하시며 얼마나 책을 잘 팔았는지 그날 가져온 책을 거의 다 팔았다. 엄마는 매의 눈으로 "이건 사야 해" 하시면서 어딘가에 갔다 오셔서 "이걸로 살게요" 하시면서 책을 사셨다. 


그날 저녁에 아빠는 "오늘 책을 샀네" 물으면  엄마는 "방판 왔는데 약간 세일해서 샀어요. 아니 애들이 책을 많이 읽어야지. 텔레비전도 없는데 뭐라도 접해야지 안 그래요?" 아빠는 "그렇긴 한데 저번에 책 산건 다 읽었어?"라고 물으면 우리는 "응"이라고 답을 했다.


사실이었다. 우리 자매의 별명은 '집거미'이었다. 밖에 나가 놀지 않고 집에서 뭔가를 해서 친구들이 "놀자"라고 이야기해도 책이 더 재미있어서 "우리 같이 책 보자"라고 권해서 친구들이 얼떨결에 책을 보면서 시간이 흘러 같이 라면을 먹는 일이 잦았다. 그러면 그 친구 어머니가 엄마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일이 많았다.


우리 집은 방문판매의 성지가 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왁자지껄했고, 엄마는 방문판매를 하는 곳에 가시기도 했다. 부엌살림을 하는 곳은 또 다른 집이었는데 그곳에 가면 프라이팬부터 요리기구를 통해서 빵도 만들고 쿠키도 만들어서 엄마는 가실 때마다 "신기한 거 많아" 하시면서 우리에게 미리 밥을 해 놓고 자리를 비우셨다. 어쩌다 프라이팬을 들고 오시면 우리는 "샀어?"라고 물으면 엄마는 "아니 공짜"라고 웃으셨다.

그렇게 손에 든 프라이팬은 정말 귀해서 정말 명절이나 돼야 볼 수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방문판매 아저씨는 우리 집에서 책을 많이 파셨던 아저씨였는데 이제 그만 그 일을 못하게 되었다고 인사를 하러 오신 아저씨였다. 엄마는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고 아저씨는 몸이 안 좋아서 그만하게 되었다며 재고로 남은 책을 우리에게 감사의 답례품으로 주고 가셨다.

엄마는 건강하시라고 인사를 하셨고 그 이후로 그 아저씨는 볼 수 없었다.

어쩌다 닮은 아저씨를 보면 그때 아저씨가 기억이 나서 '건강하시겠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요즘은 방문판매가 없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시대이다. 그때는 그랬다. 사람들을 모아 놓고 판매를 하던 아날로그 시대말이다. 그래서 옆자리에 누가 앉았고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 인지도 알아서 때로는 불편했던 그 시대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살았던 꿀꿀이 슈퍼집이 있던 동네는 서로를 아껴가며 살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렇게 쌀쌀해지면 날을 잡아 배추 전을 해서 동네 사람들 잔치를 했고 먹기 힘든 콜라를 무한대로 풀어서 아이들에게 먹거리를 주시던 아주머니는 "가을에는 모두가 행복하다" 하시던 아주머니는 돌아가셨다. 


내 유년의 기억에 있었던 방문판매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은 지금 뭐 하고 계실까? 궁금하다.

지금 나는 중고서적을 찾아다니면서 책을 사고 있다.

그나마 있는 중고서적도 발길이 줄어들어서 폐업을 하고 있다.

안타깝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현실인 것을.

열심히 책을 보는 가을이 되려고 노력을 한다.

잠시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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