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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은규 May 05. 2023

다시 해보는 것들

두 번째가 찐이야 

마제소바와 아부라소바

 

 마제소바를 처음 먹게 된 것은 재작년 여름, 서촌에서였다. 서촌에 유명한 마제소바집에 가보고 싶다는 언니를 위해 간 것이 시작이었다. 1시간 정도 웨이팅을 하고 들어간 가게는 생각보다 좁았다. 테이블 두어 개에,주방을 둘러싼 바 테이블이 다였다. 우리는 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분위기를 살폈다. 가게 안은 생각보다 시끄럽지 않았다. 다들 마제소바에 홀린 사람들처럼 코를 박고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공깃밥을 달라는 소리와, 맛있는다는 이야기 외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이러한 모습에 우리는 더욱 기대감이 커졌다. 얼마나 맛있으면 다들 이렇게 흡입을 할까? 우리는 기대감을 안고 마제소바 하나와 아부라소바 하나를 시켰다. 


 음식은 금방 나왔다. 파와 특유의 양념, 김으로 구성되어 있는 마제소바와 파로 전체가 덮여 있는 아부라소바는 비주얼이 예뻤다. 색감도 예쁘고 냄새도 고소하니 느낌이 좋았다. 드디어, 첫 입. 양념으로 쫙 덮인 면발은 입 안에서 부드럽게 넘어가며 감칠맛이 싹 맴돌았다. 서로 쳐다보며 눈빛으로 말했다. ' 오 괜찮은데?' 그것도 잠시, 세 입 정도를 먹은 우리는 얼른 사이다를 시켰다. 맛은 있지만 너무 느끼하고 물리는 맛이었다. 먹을수록 속도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면을 다 먹고 밥까지 비벼먹는지 신기했다. 그래도 밥은 더 맛있을 수도 있지 않냐는 언니의 말에 밥을 비벼 먹어봤지만, 느끼한 소스의 맛이 더 잘 느껴질 뿐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마제소바는 실망감을 안고 끝이 났다.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마제소바를 못 먹는다. 없어서 못 먹는다. 지금은 그때 그 사람들처럼 면을 5분 만에 흡입하고 밥까지 말아서 아주 야무지게 먹는다. 왜 이렇게 됐을까? 친구가 내 이야기를 듣고 마제소바는 두 번째가 찐이라며 제발 한번 먹어달라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번엔 대학로에 있는 마제소바집을 갔다. 웬걸? 너무 맛있었다. 두 번째 먹으니 느끼함에 적응이 되었는지 오히려 중독성 있었고, 물릴 때쯤 다시마 식초를 넣으면 훨씬 맛있다는 친구의 말을 참고해 먹으니 더욱 새콤하니 맛있었다. 그렇게 마제소바는 나의 최애 음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나에게 또 다른 두 번째 찐은 영화 '에에올'이다. 사람들이 너무나 극찬을 하여 기대를 한껏 품고 갔는데, 150분의 러닝타임과 정신없는 버스 점프로 인해 내 정신이 나가는 것만 같았다. 우리 모두 다정해지자라는 메시지는 마음에 들었지만, 그 메시지를 마주했을 무렵엔 난 이미 지쳐있었다. '에에올' 역시 사람들이 최소 2번은 봐야 한다는 말에 솔깃한 나는 재개봉 때 다시 보러 갔다. 웬걸... '에에올'의 복잡한 세계관을 어느 정도 알고 가서 그런지, 이 세계관을 바탕으로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았던 연출들도 보이고, 인물 한 명 한 명의 감정도 더 잘 느껴졌다. 덕분에 이 영화의 메시지가 확 와닿았고, 오히려 러닝타임도 더 짧게 느껴졌다. 한동안 내 다이어리에  "Please, be kind"이라는 대사를 적어놓을 만큼 푹 빠진 영화였다. 

  

  물론 두 번째라고 해서 다 좋았던 건 아니다. 운동할 때 첫 번째 세트는 별로 안 힘들었지만 2번째 세트부터 찐으로 힘들 때도 있다. 사람들이 진짜 중독성 있다고 해서 다시 들은 노래가 여전히 내 취향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의 공통점은 익숙함을 바탕으로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나의 취향과 생각들을 알 수 있게 해 줄 수도 있고, 예전의 실패의 경험을 성공으로 바꿔줄 수도 있다. 


 했던 것을 다시 시도할 때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시간이나 비용. 음식이나 영화 같은 것들은 시간과 비용만 생각하면 되지만, 내 인생에서 실패한 무언가를 다시 도전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만으로는 계산되지 않는다. 한번 맛본 실패에서 오는 두려움도 함께 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재수를 했고, 수업을 재수강하고, 남자친구와 재회를 하며 살아간다. 다시 한다는 것은 뭐든지 쉽지 않다.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익숙함이 어떨 땐 발목을 잡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이 있다면 무엇이든 다시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도전하는 것이 두려우면, 마제소바를 떠올리자. 두 번째가 찐이라는 마제소바처럼, 다시 한번 먹어보고 생각해 보겠다는 마음가짐처럼 가볍고 유쾌하게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다시 도전해서 발견하고 성공한 것들은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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