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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잇 부엉이 Jan 12. 2017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소고

중요한 걸 잃고 싶지 않다면

왜 내 삶은 항상 여유가 없냐고 불평을 하는 사람들을 본다. 금전적 여유는 차치하고라도 그냥 매사에 정신이 없고 바쁘다. 늘 바쁘고 버겁진 않지만 하루하루 곱씹어보면 뭘 했지 싶은 그런.

새해가 되면 좀 나아지겠지, 환경에 변화를 주면 나아질꺼야,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 보자.

달라질까?

십중팔구 달라졌다는 사람 못봤다. 성경에 등장하는 드라마틱한 삶의 (태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들을 살펴보다 보면 그것이 마음가짐의 문제, 환경 변화의 문제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다.

우리가 시쳇말처럼 '혁신'이라 부르는 이노베이션이 개별 사람의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된 이유는 아마도 잠재된 자아의식 속에 변화가 내 삶에 미치게 될 미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생각대로 움직여주기엔 기존에 천착된 삶의 무게가 지나치게 무거운 탓, 그리고 삶의 관성의 법칙처럼 그냥 흘러가는대로 자연스레 나를 내맡기고 싶은, 정말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는 이유의 복합적 영향의 결과물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변화와 혁신은 기존 것을 붙들고 있으면 있을수록 성공 확률이 낮아진다. 실패의 경험에서 전수되는 다름에 대한 각성, 다른 시각, 다른 접근과 시도가 켜켜이 쌓여야 그나마 성공에 도달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건 '왜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목적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변화의 방향성, 폭과 기울기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모세는 왜 변해야했는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애굽)으로부터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바울(이전의 사울)은 왜 변해야했는가. 유대인이 아닌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기존의 본인이 그토록 따르던 유대의 율법에서는 전혀 허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변해야하는가.

그 질문에 이젠 내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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