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하지 않는 것이 먼저겠지만,
셋째 날, 담당 다이브마스터가 일정이 생겨 다른 다이브마스터와 함께 활동하기로 한다. 센터 앞바다에서 활동한 지난 이틀과 달리 500여 미터 떨어진 바다의 산호 재배지를 청소한다. 여전히 비치 다이빙이라 핀 신느라 버둥거리지만 이전 다이브마스터와 달리 나를 잡아주거나 기다려주지 않는다. 쿨하게 물에 떠서 나를 지켜볼 뿐이다. 저기요, 허우적거리는 제가 안 보이시나요? 하긴 내가 여기 펀다이빙 하러 온 것도 아니고 한 명의 다이버로서 역할을 해야 하니까. 섭섭하지만 이내 마음 다잡고 할 일을 한다.
첫 날 보았던 것보다는 조금 더 큰 산호들이 재배지 틀에서 열심히 성장 중이다. 고운 모래들과 각종 생물들에서 나왔을 배설물 등등이 엉켜 산호의 성장을 방해 중이라 산호 주변을 청소해 줌으로써 그들을 돕는다. 혹여나 다칠 새라 조심조심 칫솔로 불순물들을 털어낸다. 다이빙이 익숙해지기도 했고 조용한 바닷속에서 묵묵히 솔질을 하고 있자니 이런저런 상념이 떠오른다.
외형은 우리가 흔히 아는 식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지만 동물이라 분류되는 이 생명체가 죽어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어쩌면 식물 같은 형태여서 이들의 죽음이 덜 괴롭고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덜 죽이고 새롭게 살려내려고 하지만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지구 여기저기서 이런 노력들이 행해지고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생명을 빼앗은 것도,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것도 인간이다. 생명을 빼앗는 인간이기만 하던 나도 이제는 생명을 불어넣는 인간이 되고 싶어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산호 주변 청소를 마치고 다이브마스터가 내 남은 공기의 양을 확인하더니 소박한 펀다이빙 시간을 갖는다. 펀다이빙을 위한 포인트가 아니라 화려하거나 볼거리가 다양하지는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기한 생물들이 많다. 손대면 쏙 말리는 해초류도 재밌고, 새끼손톱 1/10 크기의 투명몸을 가진 새우 무리도 너무 귀엽고, 뱀처럼 바위 구멍을 유유히 통과하며 지나가는 물고기도 신비롭다.
점심 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2차 다이빙을 한다. 이번엔 재배 중에 부서지거나 틀에서 떨어져 나간 산호들을 글루를 이용해 다시 붙여주는 작업을 한다. 깨끗이 청소한 틀 위에 예쁘게 다듬어준 산호의 위치를 새롭게 잡아준다. 하얀 찰흙 같은 접착제를 조물조물거려서 부드럽게 만들어 산호를 틀에 고정시킨 후 접착제에 압력을 가해 눌러준다. 시간이 지나면 접착제가 단단해지면서 산호가 틀에 붙어 있을 수 있게 된다. 조류를 거슬러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며 작업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 맨손으로 작업하느라 손이 엉망진창이 되긴 했지만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 것이 더 중요했다.
산호 붙이기 작업이 끝난 후엔 주변에 방치된 쓰레기를 줍기로 한다. 원래의 용도를 알 수 없이 변형된 쓰레기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밥그릇, 일회용 기저귀, 담뱃갑 등등 어쩌다 이 바닷속에 있게 되었을까 의심스러운 것들까지 모래 바닥 혹은 돌틈에서 수없이 발견된다. 쓱 지나칠 땐 몰랐는데 마음 잡고 찾으려니가 쓰레기만 보이더라. 지구 어딘가에서 시작된 긴 여행을 이곳에서 마친 쓰레기들이다. 보람되면서도 뭔가 착잡해지는 기분으로 활동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