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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파랑 Feb 26. 2023

계획대로,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것이 좋은가요?

사이판 체험다이빙


 다음해 1월 설연휴, 친구 바걍과 함께 사이판에 갔다. 서른이 넘은 5, 6년 차 직장인인 우리는 명절을 불편하게(?) 가족과 보내는 대신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보내기로 했다. 길지 않은 기간이라 여유롭게 휴양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욕심 많은 계획형 인간이다. 이것저것 사이판에서 해야 할 일들을 찾아내고 계획을 세우느라 바쁘다. 그리고 할 일들 중 하나는 친구를 설득해 체험다이빙을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야침차게 준비한 이 체험다이빙은 계획적이고 완벽주의 성향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수준의 활동이었다. 사실 사이판은 스쿠버다이빙으로 유명하다. 수중환경이 매력적이고 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어 전 세계 수많은 다이버들의 위시리스트에 있는 그런 곳이다. 물론 우리는 사이판 여행에서 다이빙이 주목적은 아니었지만 다이빙의 성지인 이곳에서의 체험다이빙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예약한 체험다이빙 업체는 우리를 근처 비치로 데려가더니 초록색 해초만 너풀거리는 바다로 안내했다. 인솔자대비 체험하는 인원도 너무 많아 보였다. 예쁜 파란 바다들이 지척에 널렸는데 도대체 왜 우리를 하필 여기로 데려온 것인가. 체험다이빙의 목적은 비다이버들에게 매력적인 바닷속 세상을 소개해주고 다이버가 되도록 유도하는 것일 텐데. 그 와중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버둥거리느라 바닥의 진흙같은 모래를 계속 건드리는 바람에 모래알갱이 흩날리는 모습만 원없이 구경했다. 그렇다고 가격이 저렴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활동 내내 똥 씹은 얼굴로(불행인지 다행인지 마스크와 스노클을 착용하기 때문에 표정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다이빙업체를 원망하며, 그리고 나의 선택을 후회하고 탓하며 어찌어찌 1시간여의 시간을 보냈다. 친구에게 예쁜 바다를 보여주지 못한 것도 너무 미안하고 아쉬웠다. 바로 이전의 다이빙을 홍해에서 했던 나의 기준이 너무 높았는지도 모르지만 그 부분을 차치하고서라도 정말 정말 너무했다.


 그런데, 반전! 


 체험이 끝나고 나서 나의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자 했는데 친구가 너무 재밌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왜 나 혼자 이 재밌는 걸 하러 다니고 더 일찍 자신에게 다이빙을 권하지 않았냐며. 당황한 나는 하고자 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의 미안함을 전하며 이것보다 더 예쁜 바다들 많으니 같이 또 보러 가자고 제안한다. 


 이 체험다이빙을 계기로 친구는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하여 다이버가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그리고 나의 태도를 되돌아본다. 과한 기대와 다른 대상과의 비교 때문에 내 눈앞에 있는 대상을 온전하게 즐기지 못했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아름다운 공간, 시간과 경험을 나의 예상과 다르다고 폄하해 버린 것이다. 세상 일이 다 계획대로 또는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님을, 그 뜻밖의 전개로 인해 새로운 경험과 감정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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