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을 칭찬합니다.
아침 출근길에 문득 든 생각.
나중에 바다가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어?"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줘야 하나.
"아빠가 결혼하자고 엄마를 꼬셨어."
"어휴, 나도 몰라. 어쩌다가 내가."
라고 자연스럽게 나올 뻔한 대답을 삼키고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 내가 남편의 어떤 점에 이끌려 결혼까지 하게 되었을까. 그래서 오늘은 내 남편을 칭찬해볼까 한다. (이유는 그동안 너무 무심한 남편처럼 그려낸 것 같아서...?)
나는 선택적 비혼주의자였다. '선택적'이라는 말은 언제든 괜찮은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을 할 마음이 있으나 만났던 사람 중에 혹은 지금은 괜찮은 사람이 없기에 비혼을 결심했다는 '나만의 용어'이다. 연애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애와는 다르게 나에게 결혼은 크고 무거운 돌덩어리 같은 느낌이라 비혼을 오랫동안 주장했던 것 같다.
무릇 결혼이라는 것은 자유로운 나의 현재를 포기하고 내려놓을 줄 알면서 상대와 맞춰나가야 잘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포기하면서 그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할 매력점이 없으면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의 나의 괴짜이론. 나의 연애상대들을 돌이켜보면 나를 내려놓으면서까지 그들과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끝은 항상 헤어짐이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한 걸 보면 내 남편의 매력은 분명히 있긴 있다.
첫째, 내 남편은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인 줄 알았다.)
소개를 받아 연락처를 넘겨주고 만나기로 한 첫날.
전날 꿈이 뒤숭숭해서 이번 소개팅은 망하겠구나 하며 대충 준비하고 나가려는 나였다. 남편은 내게 차를 가져오냐고 물으며, 차를 가져오면 주차 자리가 넉넉하지 않으니 인근에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된다고 카카오맵 위치까지 첨부해서 알려주었다. 아직 만나기도 전이라, 과한 친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인상 깊었던 걸 보면 첫인상부터 꽤 친절한 사람이라고 각인했던 것 같다.
세 번째 만남에서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태원으로 데이트를 가는데 방지턱도 세심하게 넘어갈 정도로 운전을 너무 잘했다. 차가 막혀도 화내지 않고 속도도 내지 않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운전을 X같이 하는 사람을 보면 창문을 열고 기싸움을 하거나 분노를 표출하려고 해서 몇 번 싸운 적이 있었다. 싸우려거든 너 혼자 운전할 때나 싸우라고 내가 난리를 쳐대서 요즘은 잘 참는 중이다.)
둘째, 내 남편은 가정적이다.
내 남편은 술, 담배를 일절 하지 않는다. 술은 잘 못 마시고 담배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호기심 빼고는 입에도 댄 적이 없다고 한다. 이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회식이나 술모임이 2-3달에 한 번이나 있을까 말까 할 정도다. 술 약속이 없기 때문에 가정에 아주 충실하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고, 가족과 함께 하는 걸 좋아한다. 연애할 때는 함께 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가끔 혼자 있고 싶은 나는 조금 피곤했을 정도인데, 결혼하고 보니 이게 참 이렇게 장점일 줄이야.
셋째, 나를 먼저 생각해 준다.
내 남편은 내 승질머리가 더 대단해서인지 착하게도 본인의 성질을 많이 죽이면서 살고 있다. 나는 화가 나면 말로 따다다다 쏘아붙이는 스타일이다. 싸울 때마다 내 남편은 본인도 화를 내다가 결국에는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해 준다.
내 남편은 정말 착하다. 피부과에 턱수염 제모를 하러 갔는데, 얼굴이 쳐졌다고 투덜거린 내 생각이 나서 60만 원어치 회원권을 끊어 오는 남편이다. 내가 '돈도 없는데 왜 기분을 내려고 하냐'며 놀리면 '가서 리프팅레이저 맞고 탄력 찾아오라.'라고 응원해 주는 남편이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는 나를 더 생각해 준다. 일하랴, 애보랴 얼마나 힘들고 답답하겠냐면서 알게 모르게 나를 많이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남편의 마음이 너무 고마운 요즘이다.
넷째, 어른들에게 넉살이 좋다.
이게 내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한 집안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그 집안의 분위기를 살릴 수도, 망칠 수도 있기에 사람을 들이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편을 우리 엄마, 아빠에게 처음으로 소개한 날 정말 놀랐다. 분명 긴장해서 손바닥에 땀이 흥건한 상태였는데도 넉살 좋게 웃으면서 어른을 대하는 모습에 '결혼해도 되겠네.'라고 생각했다. 능구렁이처럼 구는 게 아니라 잘 웃고, 쫑알쫑알 말하는 남편을 엄마, 아빠도 정말 좋아하셨다.
실제로 청첩장을 돌릴 때마다 듣는 단골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는 왜 남편이랑 결혼했어?"
"우리 엄마, 아빠한테 잘하는 걸 보니까 가족이 되어도 좋을 것 같더라고."
+ 연애할 때는, 남편의 플레이리스트가 너무 좋았다. 나는 인디, 아이돌, 팝 가리지 않고 멜로디가 좋으면 노래를 듣는 편인데 연애 시절 남편의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모든 음악이 다 좋았다. 그때는 나랑 음악취향이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데이트용 플레이리스트가 따로 있었지 뭐야. 알고 보니 내 남편은 빅뱅 노래만 주야장천 듣는 사람으로 나와 음악취향이 아주 다르다.
살아보니 에효, 내 발등 내가 찍었지, 싶을 때도 가끔은 있지만 대체적으로 나는 참 결혼을 잘한 것 같다. 내 남편은 정말 귀엽다. 아기만 예뻐하지 말고, 본인도 많이 사랑해 달라고 투정도 부린다. 연애든 결혼이든 귀여우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거 다들 아시나. 서로 좋아하는 걸 해주고, 싫어하는 걸 하지 않으면서 사는 거, 그게 행복한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