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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이맘 Jan 11. 2022

프롤로그 :  무럭무럭 자라는 너와 나

나는 내가 완벽한 엄마가 될 줄 알았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3년간 유치원 교사를 하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애정이 가득했고, 열심히 하였다. 그러나 교사 생활을 하며 나의 말과 행동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늘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한 20대 중반의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칠 정도로 성숙한 지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좀 더 성숙해지고 싶어서 유치원을 그만두고 아동 권리를 옹호하는 비영리단체로 이직을 하였다. 그곳에서 아동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을 하며 아이들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30대 초반이 되어서 결혼을 하고, 출산을 준비하며 나름대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아동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일하는 엄마이니 아이의 발달을 이해하고,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며 잘 키울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마다 살아가면서 이루어야 하는 과업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부모가 되는 그 과정을 당연한 순리로 받아들이는 나는 매 단계를 계획하였고, 감사하게도 큰 변수 없이 계획대로 단계를 밟아 나아갔다. 한편으로는 모든 계획에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예상한 것보다 괜찮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위로하는 나의 습관이 삶을 무던하게 지나 보낼 수 있게 도와준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주어진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출산을 준비하며 나는 아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준비된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자만심 가득한 생각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는 예정일이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활발한 태동을 보였고, 우리 부부는 당연하게 자연분만을 기다렸다. 예정일로부터 딱 10일이 지나고, 유도분만을 하기로 한 날 새벽 양수가 터지고 진통이 시작되었다. 이때만 해도 어쩌면 내 계획대로 유도분만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배 속에 있던 아이의 심박 수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제왕절개를 결정하지 못하던 나는 이대로는 위험할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결국 눈물을 머금고 응급으로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활발한 태동 때문이었을까? 아이는 탯줄을 3번이나 감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응급으로 수술을 진행한 덕분에 건강하게 태어났다며, 빠르게 결정하길 잘했다는 축하를 받으며 출산을 하였다. 정작 산모인 나는 마취가 깨고 친정엄마를 보자마자 제왕절개를 하였다는 사실이 억울하여 눈물 흘렸지만 말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자연분만을 준비하고 있었던 우리 부부는 이때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은 없는 건가?’ 우리 딸은 시작부터 내 인생은 엄마, 아빠의 뜻대로 되지 않을 거라며, 자신이 원하고 필요한 방법으로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며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것처럼 준비된 엄마라고 자신만만했던 나는 출산을 이어서 친정엄마는 1년 넘게 모유 수유했다고 했으니 당연히 나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모유 수유도, 손가락을 빨아서 어린이집의 모든 전염병에 다 걸리는 아이를 마주하는 매 순간 동공이 흔들리는 한낱 왕초보 엄마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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